사랑을 갈구하다 왜곡돼버린, 처절한 감정의 밑바닥
가사를 읽다 #05. 이소라 - Tears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싱어송라이터들이 많다. 이적, 김동률, 조규찬, 장범준... 그들은 모두 자신이 만든 곡에 직접 노랫말을 붙이고 노래를 한다. 그러나 본인이 프로듀서이면서 전곡의 가사를 본인이 쓰지만 작곡에는 참여하지 않는 뮤지션이 있다.
바로 이소라다.
그녀가 가진 음악적 내공과 무게감을 생각하자면 스스로 곡을 쓸 법도 한데, 그녀는 결코 작곡에 욕심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프로듀서로서, 작사가로서 앨범 전체에 자신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투영한다. 그녀의 가사 속 주인공들은 주로 이별을 앞두고 있거나 이별을 이제 막 겪었거나 혹은 이별을 겪고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힘들어한다. 이런 '슬픈 사랑의 노래'는 여성의 마음을 너무 일상적이지도 않게 그러나 너무 과장되지도 않은, 청자들이 각자의 이별의 감상에 푹 빠질 수 있게 만드는 언어로 그려낸다.
그런 곡들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바람이 분다>가 있을 것이다. 이별 후의 헛헛한 마음과 그 헛헛함 마음에 불어드느 풍경이 영상처럼 그려지는 곡. 그러나 오늘은 이미 유명한 <바람이 분다> 대신 같은 앨범의 1번트랙을 차지하고 있는 <Tears>를 읽고자 한다. 이소라의 기존의 가사들답지 않은 직설적인 표현이 낯설기도 하지만 그만큼 더 고통스럽게 들리는 사랑노래. 사랑이라는 것이 낭만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존심을 버릴 만큼 치열한 일이라는 걸 그리는 노래. Tears.
좁고 어둔 방 거울 속에 나
그늘진 얼굴 참 못생겼어
이렇게 못나 혼자 남아
아직도 너를 그리워해
이렇게 나만 서럽게 남아
반기지 않는 전화를 해
화를 내도 그게 좋아 나를 울려도 돼 그래
너의 관심을 다 내게로 돌려줘
아무 말이라도 좋아 나를 비웃어도 좋아
너에게만 그래 오 나의 그대
동굴 같은 방 먼지 같은 나
이렇게 못나 나 혼자 남아
오늘도 먼저 그리워해
이렇게 나만 서럽게 남아
다시 또 먼저 전화를 해
화를 내도 그게 좋아 나를 울려도 돼 그래
너의 관심을 다 내게로 돌려줘
아무 말이라도 좋아 나를 비웃어도 좋아
너에게만 그래 오 나의 그대
거울 속에 나
참 못생겼어
좁고 어둔 방 거울 속에 나
그늘진 얼굴 참 못생겼어
= 빛이 들지 않는 방. 좁은 방 속 침대와 냉장고의 실루엣이 어슴푸레 보일 듯 하다. 그 어둠 사이 화장대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자가 있다. 방 안에 내려앉은 어둠보다 더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그녀의 얼굴. 그녀는 그렇게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한다. '나 참 못생겼다...'
그녀는 왜 불도 켜지 않고서 거울을 바라보고 있을까. 왜 자신을 못생겼다며 자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못나 혼자 남아
아직도 너를 그리워해
이렇게 나만 서럽게 남아
반기지 않는 전화를 해
= 그녀는 어두운 방 속에 혼자 남아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렇게 그리워한지 오래되었는데도 그 사람은 오질 않고, 그녀는 아직도 마냥 그리워하고 있다.
혼자서만 사랑하고 있는 그녀는 서럽다. 서럽게 남아있다. 그의 마음은 떠났는데도 그녀는 혼자서, 서럽게, 이 좁고 어두운 방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혹은 그저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마음에, 남자가 자신의 전화를 반기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에게 전화를 건다.
화를 내도 그게 좋아 나를 울려도 돼 그래
너의 관심을 다 내게로 돌려줘
아무 말이라도 좋아 나를 비웃어도 좋아
너에게만 그래 오 나의 그대
= 잔잔했던 피아노 반주에 둔탁하고 무거운 드럼과 디스토션이 입혀진 기타가 들어오면서 그녀의 극단적인 감정이 드러난다.
그녀는 그의 무심함이 싫다.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아무런 감정도 없어보이는 그의 무심함이 너무나 싫다.
그래서 차라리 자신에게 화를 내달라고, 울려달라고 한다. 의미없는 말이라도 상처를 주는 말이라도 자신에게 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이렇게 매달리는 자신을 비웃어도 좋다고 한다. 아무래도 좋으니 그저 자신을 봐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그녀는 사랑스런 눈빛과 달콤한 말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것을 기대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다. 이제는 그저 한마디 말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만이 남았다. 증오든 혐오든 비웃음이든 좋으니 모든 관심을 자신에게 돌려주기를. 무관심 속에 내버려두지만 않기를.
그녀가 원래 이렇게 누군가에게 매달려 비뚤어진 관심이라도 가져주기를 갈구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직 그의 마음만, 그의 관심만 되찾고 싶어한다. 그만이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나의 그대'이 때문에.
동굴 같은 방 먼지 같은 나
= 빛이 들지 않는 캄캄한 방. 동굴처럼 어둡고 쓸쓸한 방. 그리고 그 방안에는 남자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먼지처럼 하찮은 존재같은 거울 속 그녀.
이렇게 못난 나 혼자 남아
오늘도 먼저 그리워해
이렇게 나만 서럽게 남아
다시 또 먼저 전화를 해
=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연인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그 원인을 남자에게서 찾지 않는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그의 마음을 그의 변심을 욕해도 될 텐데, 그저 자기가 못생겨서, 자기가 못나서 혼자 남아있는다고 여긴다. 미련하리만큼 바보같으면서도 그만큼 애절하게 관심을 갈구하는 그녀의 마음.
오늘도 그녀는 그보다 먼저 그를 그리워한다. 그는 그녀를 그리워하지 않기에 언제가 되었든 그녀는 그보다 먼저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한쪽으로 한참 기울어버린 저울 위에서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
이토록 사랑하는 마음을 보이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관심에 쌓이는 서러움. 하지만 그녀는 또다시 그에게 전화를 건다. 그가 반기지 않을 줄 알지만 그는 결코 그녀에게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이 없기에, 오늘도 그녀가 먼저 전화를 건다. 그저 받아만 주길, 받고서 아무 말이라도 해주길 바라면서.
화를 내도 그게 좋아 나를 울려도 돼 그래
너의 관심을 다 내게로 돌려줘
아무 말이라도 좋아 나를 비웃어도 좋아
너에게만 그래 오 나의 그대
= 남자의 무관심에 그토록 오래토록 방치되어왔는데도, 그래서 남자에게 화라도 내줬으면 좋겠다고 아무 말이라도 해달라도 갈구할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녀에게 이별을 할 마음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가사 속 어디에서도 그녀가 이별을 염두하고 있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녀에게 그와의 헤어짐은 애초에 배제되어 있다. 어떻게든 그와 함께 할 것이기에 그녀는 그의 관심이 필요하다. 화를 내든 울리든 비웃든 간에 자신은 바라봐주고 있다면, 자신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더이상 비참해질 수 없을 지경에 이르른 그녀의 간절함.
거울 속에 나
참 못생겼어
= 격정적으로 관심을 갈구했던 그녀의 마음 속 태풍이 서서히 잦아든다. 정신을 차려보니 여전히 거울 속에는 그늘진 얼굴이 보인다. 사랑을 받지 못해도 어쩔 수 없는 못생긴 얼굴. 사랑을 주지 않는 사람을 원망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부족함만 탓하는 그늘진 얼굴.
이소라의 노랫말은 언제가 구슬펐다. 그리고 그 노랫말은 이소라라는 음울한 악기를 타고 더욱 구슬픈 이야기를 노래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그녀의 가사들이 깊은 슬픔을 서정적인 낱말들로 꾸며 그 애절함마저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그렸다면, <Tears>는 그것을 내려놓고 극단에 내몰린 사람의 처절한 마음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내어놓았다. 질척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제 살점을 숨기지 않고 내놓은 것이다. 그 핏망울이 너무 적나라해 당혹스러우면서도 그 처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듣는 이까지도 미간을 찌푸리고 그 마음을 동조하며 듣게 되는 노래. 이소라답지 않지만 이소라만이 내어놓을 수 있는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