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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수박 Sep 13. 2022

일당백, 다채로운 감투의 역할

초보 리더의 성장기 투.

작지만 의미 있는 배에 올라타 선장이 됐다.

호기롭게 가장 맨 앞줄에 서긴 했는데, 아니 맙소사. 아니 이런 것까지 해야 한다고?


중간관리자일 때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중요하게 살피지 않았던 것들이,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모두 제 몫이 되니 매번 짜릿하게, 그저 놀랍게, 새로운 일들의 도전의 연속이다.


오늘은 새롭게 주어진 나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나를 둘러싸고 벌어진 다채로운 역할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기획은 해봤지만, 출연까지는 좀...."

실무자형 리더는 이럴 때 참 고달프다.

일당백 역할이 내 몫인지라, 남는 역할은 늘 나다(허허)


 최근 아주 중요한 행사를 거하게 치렀다.  수십 명의 기관장들이 참여하고, 현장에는 100여 명의 사람들, 온오프라인 동시 송출로 인해 방송국 카메라와 중계석과 유튜브 중계 등으로 현장은 정말 떠들썩했다.


전날까지도 최종 시나리오를 고치고, 행사 당일에도 변동되는 참석자들로 인해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잡고, 최종 리허설을 진두지휘하는 것까지는 그래 내 몫이려니.


여기서 끝이면 좋으련만, 그다음 내 역할은?

무대에 올라 소파에 착석하고 마이크를 붙잡고 토크콘서트  주인공이 됐다.


사업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 누구? (나)

참가자들에게 사업 설명을 하려면, 누가 가장 적당한가? (그것도 나)

생방송이라고 하니, 온라인 송출이라고 하니까 다들 부담돼서 무대에 못 오르겠대요. 누구 없을까요? (왜 다들 저를 쳐다보세요....)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가 꺼리는 그 자리에 앉게 됐다.


이인자일 때는 몰랐다. 세팅 끝내 놓고 절대 시간 넘기면 안 된다, 여기까지 말하셔야 한다, 보스에게 몇 번 주지 시키고 현장만 챙기면 됐는데.

현장 챙기고 한숨도 돌리기 전에 두 번째 역할을 부여받았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시도조차 안 해볼 그 자리에 앉아있다.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잡아본다. 카메라 의식하지 말아야지..


그러니까 나는, 외부에 이렇게 전면에 나서는 게 꽤나 어색한 사람이고 힘든 사람이다.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기에,  되도록이면 뒤에서 핸들링하는 역할 정도가 내 그릇 크기였다.


그런데 별 수 있나. 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고, 누구라도 나서야 하는데, 가장 맨 앞줄에 서 있는 사람이 나니까. 행사 전날까지 너무 긴장돼서 심장 소리가 요동쳤다.


온라인 중계 중인데, 실수하면 어쩌지?

나 말 빠른데. 긴장돼서 입에 모터 다는 거 아니야?

가뜩이나 리액션도 크고 웃음도 많은데, 엉뚱한데도 웃음 터져서 사람들 당황시키면 어쩌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갖은 상상을 해댔지만, 현장에서는 들썩이는 어깨를 부여잡고 긴장한 티를 안 내려 어찌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행사는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좋은 반응 속에 잘 마무리됐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나름의 데뷔 무대를 가졌고(엄마야),

이렇게 끝인 줄 알았던 방송 출연이 또 한 번 예기치 못하게 다가왔다, 쿵쿵쿵.


이번엔 공중파다(와우).

거기다 생방송, 무섭게 대문짝 하게 <대담>이라고 적힌 방송 구성안을 받았다.


잠깐 고민이 들었다. 못하겠다는 마음이 80% 올라왔는데, 나머지 10%는 그간 안 해본 거 도장 깨는 심정으로 함 해봐? 그리고 나머지 10%은 저번에도 나름 선방했는데, 이번에도 나를 함 믿어볼까? 그렇게 마음에서는 격렬하게 8대 2가 싸워댔다. 승자는?


다시 말하지만, 나는 주목받는 게 힘든 사람이다. 그런데 카메라가 나를? 그러니까 화면 가득 내 얼굴만 이 따시만 하게 나온다고요?(눈을 감고 싶다)


그러나, 처음부터 의미 없는 심적 갈등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업에 대해 공중파를 통해 소개하고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고, 신문기사 몇 건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영상매체인 데다, 사업 하나하나를 다 우리 언어로 소개할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좋은 기회를 걷어찰 수는 없었다. 홍보라면 늘 메말라했던 지라 덥석 물었고, 내부에서 누가 나갈지 결정하기로 한 터.


그렇다. 예상한 대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처음부터 선택지란 없었다. 그렇게 출연자로 낙점되었고, 마침내 결전의 날이다.


방송국에 도착했더니, 어머, 얼굴 화장을 고쳐주고 머리를 매만져 주신다. 하늘을 향해 힘껏 솟아있는 잔머리를 눌러주시고, 무너져 내린 얼굴 화장도 말끔히 해결해주신 금 손.


이렇게 얼떨결에 방송 출연이라니. 과거의 나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상황이고 일이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이니 평생 안 해볼 경험들을 이렇게 하나둘씩 쌓아간다.


실수에 대한 걱정도 잠시, 이왕이면 우리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싶어 메시지에 집중해본다.


작가님의 말처럼 초등학교 4학년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어려운 언어를 모두 거둬내고 사업의 진짜배기 이야기만 남겨둔다.


또박또박, 천천히.


사람들 앞에 자꾸 나서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내 강점과 약점이 동시에 드러난다.


설득하는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가고, 상대의 반응에 따라,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 써야 할 언어들을 정성껏 골라내는 건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간다.


상대가 후킹 될만한 요소들을 맥락 안에 넣어두고, 상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우리의 이야기에서 주어는 내가 아니다. 그다.

 

그렇게 몇 번을 골라낸 언어를 사람들 앞에 펼쳐놓는다. 고개를 끄덕여주는 누군가를 보면 마음이 놓이고, 아무 반응조차 없는 누군가의 미동 없는 눈썹엔 힘이 빠지기도 한다.


에둘러 말하기보단 정곡 법이 잘 먹힌다. 할 수 있는 건 자신 있게 말하고, 부족한 건 함께 해달라고 손을 내밀어 본다.


방송을 준비하며, 동료에게 '나 나가서 실수하면 어쩌지?" 했더니,

지난 몇 개월 동안 늘 하던 말이잖아요. 눈감고도 줄줄 나올 테니까, 걱정 말아요. 여기서 망쳐봤자 말 빠르게 하는 거 말곤 없어요.


아니 이런 특효약을 봤나. 맞다. 누구를 만나든 생소한 사업에 대해 설명하느라 영업왕처럼 버전 1,2,3으로 말하던 지난날의 나요.


그렇게 생각하니 신기하게 불안이 잠잠해진다. 실수해봤자 말 빠르게 하는 거밖에 없다 이거지 뭐.


그래서 현장에서는 최대한 입을 크게 벌리고, 또잇또잇 발음에 신경써가며 말을 했더랬다.


그렇게 나의 길고도 짧은 10분, 방송 데뷔전은 무사히 끝났다.


이게 끝은 아니겠지, 다음엔 또 어느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아야 할지도 모른다.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의 연속인데, 그것또한 내 역할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어쨌든 하게 된다.


어찌됐든, 새롭게 할 수 있는 것들에 2개나 추가됐다.


아직도 내가 경험할 많은 일들이 내 앞에 남았다는 게, 두렵기도 하고, 조금은 신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연말쯤엔 또 얼마나 생경한 경험들로 나를 가득 채워졌을지


경험한 모든 것들을 잘 기록해둬야지.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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