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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수박 Feb 15. 2023

치앙마이, 단골가게가 생기다.

치앙마이 한달살이

일정에 쫒기는 관광은 질색인지라 어디를 가더라도 진득하니 동네를 휘적휘적 돌아다니고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의미에서 이번 치앙마이 한달살이는, 안성맞춤! 여기서 종일 하는거라곤 아침마실, 늦은 오 마실.


핑강을 끼고 아침산책을 하면 하루가 즐겁다. 그 아침에도 조깅하는 사람도 많고, 그 아침에도 널브러져 있는 걸인도 있고.


몇년새에 도로가 너무 쾌적해졌다싶었는데. 이른아침 산책하며 도로청소를 굉장히 빠르고 세심하게 하는 분들을 봤다, 이 나라도 그렇구나 여러모로.



집에서도 잘 안먹는 아침인데 이상하게 여행만오면 아침을 챙겨먹고 싶어진다.


치앙마이게이트에는 새벽상인들을 위해 아침9시께까지 잠깐 열리는 아침장이 있다. 이곳의 발견도 우연히다. 여행객들에게 아주 유명한 반베이커리를 갔다가, 오픈시간에 맞춰갔음에도 문열기도 전에 줄선 사람들로 인해(졌다 졌어...) 겨우 빵 하나를 건지고 늘상 가던 길이 아니고 새로운 길로 가보다가 발견했다.


다들 손에 뭘 하나씩 들고 나오길래 홀린듯 들아갔고, 좋아하는 찰밥(5밧) 한 덩어리와 팟타이(20밧)를 포장해 나오며 얼마나 신나던지. 짧고굵게 주로 포장해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일반 로컬식당에 비해서도 현저히 저렴했다.


나중에 알게 된건데, 태국에서는 집에서 밥을 잘안하고 이렇게 포장된 음식을 사먹는 문화가 흔하다고 한다. 그래서 노점식당들도 많고 포장해서 판매하는 곳들도 많은가보다.


뭐든 지역에 대해 더 알게되면 한걸음 더 가까워지고 친근해진다.



최근엔 나름 일기를 쓸만큼 소소한 기쁨도 있었다.


여행지에서도 단골이 될수있다!


나는 과일광답게, 하루 중 가장 많은 저작활동이 과일씹기다. 구아바, 망고, 수박, 파인애플은 거의 아침점심저녁으로 먹어대느나 내 위는 쉴틈이 없고..


날이 더우면 과일가게로 직행이다. 한국사람들이 사랑에 마지않는 땡모반(태국식 수박쥬스)은 여기서 어느정도냐면,


 여행초반에 최상의 과일쥬스 가게를 찾느라 매일 다르곳을 갔을때 일이다. 땡모반 하나를 주문했더니 그분이,


"한국에는 수박이 없니?왜 다들 수박주스만 찾아? 다른과일도 맛있는데 한국인은 수박주스만 달래"


하하. 그 시럽넣은 태국식 수박주스가 시원하고 달달한것이, 한국에서는 수박쥬스라고 안하고 땡모반이라고 부른다고 막 주절주전하고 싶었으나,


"우리도 수박있지.여름도 있는걸. 태국수박이 유난히 맛나" 하고 말았다.


남다른 한국인의  땡모반 사랑.  그후엔 과일쥬스집에 가면 신중히 고른다. 요새는 망고다.


매번 과일집을 탐하다 드디어 입에 쏙맞는 집을 찾았다. 얼음을 다 갈아서 얼음씹는 맛도 없고, 시럽도. 진짜 과일맛 아닌던가!


망고, 수박을 쥬스로 반갈아 먹어봤는데 오호라. 여기가 찐이다.



줄서며 막는 쿤깨주스바는 애저녁에 제쳐둔지 오래. 아침저녁으로 참새가 방앗간 가듯 오가며 갔다.


그러면서 속으로만 생각했다. 여행지에서 열번도 넘게 오면 이거이거 단골아닌가? 혼자만 느끼는 내적친밀감. 이분들에게 나는 무수히 많은 손님 중 하나겠지 뭐.


나름 그렇게 나만의 단골가게를 만들고, 진짜 매일매일 드나들었더니 쥬스가 넘쳐흐를듯이 주시는게 아닌가.


이것은, 신호인가. 단골에 대한 마음?ㅎㅎ


여행지에선 별거아닌일도 시그널이 되고, 신이 난다. 별거아닐 작은 호의에 기분이 좋고 배려받는 날엔 더 열심히 감사인사를 하게 된다.


그러다 이제 치앙마이를 떠나던 날. 마지막으로 과일쥬스를 먹으러갔다. 내심 서운해져서 갈때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작별인사를 하고싶었는데, 이날따라 손님이 너무 많았다.


너무 바빠보여 별말없이 앉아 쥬스를 마시고, 쥬스컵을 반납하고 가려는데 사장님이 한번도 그런적없었는데 "씨유"라고 인사를 해주는게 아닌가.


아. 나만의 단골이 아니었어!! 알고계셨구나 내 찐사랑을.


마지막날 사장님의 인사는 감격그자체였다. 물론 열손가락 다 접고도 남을만큼 자주 갔기에 얼굴을 알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평소와 다른 인사에 새삼 감사했다.


여행지에서 단골이 된다는건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이다. 생경하고 낯선 도시에서 친근하고 갈곳이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그 도시를 사랑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매일 숙소로 귀가하며 들리던 구아바 가게 노점, 천밧짜리 바꾸고 물 사느라 아침저녁 출근도장 찍던 세븐일레븐은 또 어떠하든가.


치앙마이를 떠나려니 모든것이 아쉬워 좋아했던것들을 나열해봤더니 정말 끝도 없었다. 이 도시는 나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아낌없이 다정하게 내어줬구나.

짐을 싸고, 다시 공항으로 간다.


방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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