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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수박 Aug 30. 2023

치앙마이에서 로마로, 여름에서 겨울나라로 껑충

여름과 겨울, 두 계절을 캐리어에 품다


치앙마이 한달살이를 마치고, 나는 유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삼십대의 끄트머리였고,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온 나에게 벅찬 선물을 주고 싶었고, 무엇보다 터전을 옮기는 문제까지 겹쳐 나는 여러모로 쉼이 필요했다. 스스로 정해 놓은 탈출구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치앙마이 한달살이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낯설지만 익숙한 곳을 향해 떠나왔던 것이었고 남은 한 달은 영감을 주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사실 유럽 어디든지 좋겠단 생각을 했으나 태국에서 바로 이동해야 하다보니 이동편의를 고려해야 했고, 계절도 나름 신경 쓰였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가장 먼저 떠올렸으나 태국에서 포르투갈로 넘어가는 경로가 쉽지 않아, 최종적으로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결정했다.


여름과 겨울을 캐리어에 품다

여름나라 한달살이를 끝내고, 늦가을(혹은 초겨울) 유럽으로 한달살이를 떠난다는 것은, 두 계절을 캐리어에 품는 것과 같다.  여름옷과 겨울옷, 가을옷, 여름샌들과 겨울신발 등이 24인치 캐리어에 꽉꽉. 빈틈없는 캐리어에 태국의 귀여운 코끼리 인형도 눈을 질끈 감고 외면했거늘, 배가 터질 것 같은 캐리어를 앞에 두고, 하나둘씩 여름과 이별을 고한다. 치앙마이에서 줄기차게 신어댔던 나의 여름샌들과 함께 여름을 내려둔다. 코끼리바지와 원피스, 리넨바지도 아쉽지만 여기서 끝. 돌아갈 땐 겨울을 그득 담아가야지.


전 세계 1등 공항이라는 수완나품 공항에서 갇혀버린 3시간


코로나가 완화되던 시점인지라 공항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태국에서 로마로 가는 직항이 없어 카타르항공을 타고 도하공항으로 경유하여 가는 일정이었다.


공항이 번잡할까 싶어, 4시간 전에 도착하였으나, 정말 지옥을 경험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데 라인 정리를 해주는 직원이 겨우 1명, 심사대를 통과하기까지 꼬박 1시간 30분을 그 좁디 좋은 곳에 갇혀 줄을 서야 했고 땀과 사람들의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불쾌한 공기 속에 무례한 이들이 새치기를 하고, 소음이 쏟아져 나오고. 어후.


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비행기를 탔다. 카타르 항공은 정말 널찍하고 쾌적했다. 경유지인 도하공항에서는 2시간 30분의 여유시간이 있었기에 공항을 조금은 찬찬히 둘러볼 수 있겠다 기대했거늘, 아뿔싸.


도하공항이 그렇게 클 거라 생각하지 못했고, 새벽시간에 비행기가 만석일 지도 몰랐지. 새벽 2시께 공항에 도착했으나 경유편 게이트가 바로 뜨지 않아 모두들 우왕좌왕하게 하더니, 게이트가 열리고 부지런히 걸어도 걸어도 닿지 않은 그곳.


혹여 도하공항에서 경유를 하신다면 최소 3시간을 염두에 두라고 정말 적극 권하고 싶다.


공항이 상상 이상으로 넓었기에 게이트를 찾아 정말 오랫동안 걸어야 했다. 이 정도면 실내셔틀 운영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속으로 얼마나 궁시렁댔는지 모른다. 게이트 안내판이 심지어 친절하지 않아서(아니 왜 이렇게 베베꼬아놓는지 정말 이해하지 못한 사람...._) 이쪽이 맞나? 계속 의심하며 가야했다.  


어쨌든 그렇게 경유편 항공에 무사히 탑승. 한두명쯤은 한국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나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모두 서양인이구나. 새삼 섬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작아지자 부러 허리를 곧게 펴 앉았다. 괜히 기죽지 말자.  


그렇게 또 7시간을 날아 새벽 6시가 넘은 시각, 공항에 도착했다. 18시간 만에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왔다.


로마공항이라기에 잔뜩 기대했는데 각보다 아담한 사이즈에 놀랐다. 부지런히 사람들을 따라 가본다. 다행히 직관적으로 안내표지판이 돼있어 길은 헤매지 않고 금세 택시 타는 곳까지 왔다.


택시비가 살인적이라 많이들 익스프레스 버스나 기차편을 이용하지만, 나는 너무 지쳤고 편히 숙소로 가고 싶어 고민 없이 택시를 선택했다.


찬 공기가 훅 들어온다. 공항과 비행기에 갇혀있다 맡는 바깥냄새는 시원하고 상쾌했다. 날은 쾌청했고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퍼졌다.


로마다!! 을 향해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어후, 좋아!!!!!!!


배정받은 택시기사를 향해 큰 목소리로 '올라'를 외친 나. 그리고 돌아온 그의 대답, '차오'.

그랬다. 나는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뭘 실수했는지 몰랐다.


고맙단 이야길 하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좋은 여행 되렴, 차오"를 외치는 게 아닌가.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어설픈 유럽인사 대신 땡큐를 외치고 핸드폰을 켜 검색을 했다.


올라는 스페인 인사였고, 차오는 이탈리아 인사. 그러니까 나는  동양인이 이탈리아인에게 스페인어로 인사한 사람이 됐다.


공항에서 급하게 캡처해 온 유럽알뜰팁을 슥슥 읽은 게 화근이었다. 도움이 될까 싶어 사람들의 후기에서 필요한 부분만 슥슥 캡처해놓다 보니, 이탈리아인지 스페인인지 구분이 안 됐던 것. 허술하기 그지없는 나. 


숙소 체크인 시간까지는 아직 한참이었지만, 이 새벽시간에 갈 곳 없던 나는 일단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섰다. 짐이라도 맡길 요량이었다.


유럽에서의 첫 숙소이기에, 나의 첫인상이 곧 숙소일 테니까, 나는 정말 유럽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을 갖다 대며 무리하게 좋은 숙소를 잡은 과거의 나를 칭찬한다.  


오전 7시도 안 된 시각이었기에,  조심스럽게 물었거늘 너무나 정중하고 매너 있게 그리고 배려받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는 게 아닌가.


'오느라 너무 고생했을 텐데, 코너 돌아서 있는 여성게스트룸에서 일단 세수라도 하라고 안내해 주었고, 너의 소중한 짐은 우리 안전장치가 있는 룸에 보관 중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여기 라운지 어디서든 쉬어도 좋으니 마음 편히 있길 바란다. '


감사하다고 절로 90도 인사가 나왔다. 땡큐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나는 정말 세수가 하고 싶었고, 이 시간에 문 연 카페도 없었고, 너무 피곤해서 푹식한 소파에 앉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로마 너는 정말 사랑이구나. 한시간 정도 라운지에서 소파에 몸을 맡긴채 쉬다가 이시간쯤이면 카페들도 문을 열었겠거니 하고 나왔다.


설렘반, 소매치기에 대한 두려움 반, 낯섦에 긴장한 채 골목 사이사이를 걷다보니 카페보다 먼저 만난 트레비분수. 숙소에서 5분도 안되는 곳에 트레비분수가 있었지.


정말, 로마에 온 게 실감이 났다.


로마 트레비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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