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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말레 Feb 14. 2020

내 꿈은 포켓몬 트레이너


이제 보니 지가 쓴걸 지가 좋아요 눌렀네.


Oh My... 새벽 5시에 이런 글을 썼다니...


20대의 시작점에 난, 스스로를 감성적 표유류라고 칭했다.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었지만,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엔 내가 생각하는 마음을 적어두거나 녹음해놓기 일쑤였다.


괜히 혼자 눈물을 흘려보려 멍하니 슬픈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고,

아이팟을 손에 꼭 쥐고 하루 스물네 시간 음악에 취해 지내던, 스무 살 무렵.


글을 쓰기 어려울 땐 녹음을 하곤 했다. 혼자 불 꺼진 방안에 누워 핸드폰에 속삭이며.


다음날 혹은 며칠 뒤, 내가 녹음한 걸 확인할 때마다 예외 없이 소름이 돋곤 했다.

잠결에 푹 잠긴 듯한 내 목소리가 뭐 같았다. 마치 거울보고 코카시안 미남들이 나오는 면도 광고 진지하게 따라 하는 내 모습을 들킨 것 같달까.


그래서 내가 썼던 글과 음성메모들은 대부분 내 손으로 다음날 아침 바로 삭제한 것이 많지만,

위 포켓몬스터 글은 페이스북에 유일하게 올렸던 글이라 부득이하게 아직 소장하게 됐다.


나는 포켓몬스터를 굉장히 좋아했다. 20세기 최고의 캐릭터는 명실상부 피카츄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10년 여가 지난 지금도 변함없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포켓몬스터 게임이 가끔 떠올라 다시 찾아 할 정도였고, ‘포켓몬스터 골드 버전’ 같은 경우는 내 기준 20세기 최고의 게임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내 어릴 적 꿈은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는 거였다.

내가 다니는 놀이터와 길가에 포켓몬이 뛰어다니고 날아다니지 않는 현실이 속상했다.

이 나비가 강아지만큼 크면 어땠을까?

저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고민으로 하루를 보내던 난,

좋아하지도 않는 빵을 억지로 먹어가며 공책 한편에 포켓몬스터 스티커를 모으곤 했다.


순수했던 시간이 지나 점차 나이를 먹으며 포켓몬에 대한 내 사랑이 나도 모르게 식어버렸다. 아니. 잊혀졌다.

여섯 마리의 포켓몬을 어떻게 하면 데리고 다닐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난 이제 지갑에 6만 원이 더 중요해졌고, 로켓단보다 무서운 생활비와 공과금을 고민하게 됐다.

.

.

.

호주 산불이 크게 났다. 

작년 9월부터 꺼지지 않는 산불은 이미 이리저리 치이며 살고 있는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내 삶이 먼저니까. 내가 앞일이 더 중요했으니까. 무시했고, 흘려버렸다.

 

그러던 중, 온통 불바다에 자신이 불길로 걸어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한 코알라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기사를 통해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난 그때 코알라의 걸음걸이와 뒷모습을 생전 처음 봤다.

사진에서만 보던 코알라는 항상 나무에 걸터앉아 잠들어있었기에, 낯설었다. 

코알라가 저렇게 걷는구나. 생각보다 느리구나.


그런 코알라의 뒷모습에서 어릴 적 내 전부였던 포켓몬이 겹쳐 보였다.

내가 그렇게 공생하고 싶어 했던 포켓몬이 사실은 우리 주변에 동물들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울컥 눈물이 났다. 10억 마리라는 숫자가, 외면한 내가 부끄럽고 미안했다.


부족하지만. 지갑 속 6만 원을 기부했다.

가랏, 몬스터 볼! 의 마음으로. 한 마리라도 포켓볼에 들어가 편히 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띵-띵- 띠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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