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쎄요. 코리안 패밀리. 코코넛 주스 먹어요.
삼부자는 두 시간 동안 전쟁 박물관을 관람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오전 10시였지만 해가 뜨거웠다. 저절로 땀이 흘렀다. 나는 땀이 많다. 한국에서도 여름만 되면 땀과의 전쟁인데, 베트남에서는 더 치열한 전쟁이었다. 아들은 나를 닮았다. 아니 나보다 땀이 더 많은 것 같다. 어린아이들처럼 키가 작으면 콘크리트 바닥에서 끓어오르는 지열에 더 가까워 더 덥다고 하던데, 아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모두 큰 모자를 썼다. 땀을 최대한 배출하기 위해 샌들을 신고 운동복 재질의 반바지를 입었다. 아버지는 오늘도 까만 긴바지에 양말을 신었으나 나는 더 이상 잔소리 하지 않았다. 옷은 자기가 알아서 입는 것이다.
삼부자의 다음 목적지는 통일궁이었다.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데 들어가는 입구를 못 찾아 헤맸다. 그때 세 남자의 옆으로 코코넛 지게를 맨 한 남자가 지나갔다. 아니 지게도 아니었다. 기다란 대나무에 한쪽 끝에는 코코넛이 든 바구니, 다른 한쪽에는 잡동사니를 넣은 박스를 매달아 놓고 한쪽 어깨에 얹어 들고 있었다. 나는 잽싸게 남자를 붙잡고 구글 맵을 보여 주며 물었다.
"신 짜오. 디스? 징덕럽? (Dinh Độc Lập) 웨얼 이즈 엔터런스?"
남자는 영어를 잘할 줄 몰랐지만 우리가 통일궁 입구를 찾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듯했다. 남자는 웃는 얼굴로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코코넛 지게를 들고 앞서 걸었다. 관광객이 많은 통일궁 앞에 가서 코코넛 주스를 팔 계획인 것 같았다. 우리는 남자의 뒤를 졸졸 따라가다가 문득 서로 눈을 마주쳤다.
"아버지, 코코넛 주스 한 잔 할래요? 아들 어때? 더운데 한 잔 할까?"
"그래 먹자 코코넛 주스. 카페에 들어가는 것보다 이렇게 먹는 게 더 좋지"
"저도 먹을래요."
나는 앞서 가던 남자를 다시 불렀다. "코코넛"이라고 말을 하자마자 남자에게 화색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우리 삼부자가 코코넛 고객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것 같았다.
"안녕하쎄요. 코리안 패밀리. 스위트 코코넛 주스 "
남자가 코코넛 위 부분을 칼로 잘라 빨대를 꽂아주며 말했다. 영어를 못 하는 줄 알았던 것은 우리의 착각이었다. 관광객을 많이 상대해 본 고수는 그 사람의 느낌만 봐도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안다. 그는 고수였다. 그는 웃으며 내 어깨에 코코넛 지게를 얹어 주었다. 지게를 들고 사진도 찍고 체험해보라는 것이었다. 꽤 무거웠다. 이제 꽤 구도를 잡을 줄 아는 아들에게 핸드폰을 주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한국 사람 중 코코넛 지게를 들어본 사람은 몇 없을 거라 생각하니 우쭐해졌다.
내가 코코넛을 몇 개 달라고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벌써 세 번째 코코넛을 열고 있었다. 사람이 세 명이니 세 잔을 팔아야겠지. 벤탄시장에서의 바가지가 생각나 급히 그를 제지하며 얼마냐고 물었다.
"한 개에 5만 동"
그는 한국말로 가격을 말해주었다. 2,500원. 휴. 안심했다. 3개를 사도 10,000원이 안 되니까 괜찮다. 베트남 물가 치고는 싼 것이 아니지만, 세 남자가 길거리에서 목을 축이며 생 코코넛 주스를 빨아먹는데 이 정도는 쓸 수 있었다.
세 남자는 코코넛을 하나씩 들고 '짠'을 했다. 아버지는 "저 친구 장사 정말 잘한다. 고수다. 기분이 딱 좋게 해 주잖아"라고 했다. 아들도 생전 처음 마셔보는 코코넛 주스의 맛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역시 여행의 재미는 예상 못 한 작은 이벤트다. 더위가 물러가는 시원함이었다.
장사 고수 코코넛 아저씨는 세 남자에게 추억을 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