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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담 Sep 06. 2024

<프롤로그> 불청객

잘못 찾아온 손님


  미나리는 피를 맑게 한다, 버섯은 항암식품인 만큼 영양가가 풍부하다 등 어떤 음식에 어떤 영양분이 있는지 무슨 효능이 있는지 난 초등학생 때부터 질리도록 들었다. 학창 시절엔 아침에 일어나서 늘 위에 좋은 요구르트 한 잔, 여름엔 콩물을 간식으로 챙겨 다니고 늘 집엔 긴 시간 우린 보이차가 냉장고에 구비되어 있어 기름진 음식을 먹고 한 컵씩 마셨다.


 박여사는 우리 가족 건강지킴이였다. 그뿐 아니었다. 스스로 당신의 몸 챙기길 얼마나 악착같이 하셨는지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시작한 에어로빅, 근래 들어 최근까지도 요가를 즐겨했다. 가벼운 산책을 하지 않으면 몸이 무거워 찌뿌둥하다고 하셨다. 내가 다이어트를 할 적마다 ‘하루에 한 시간씩만 좀 빠르게 걸어봐. 나처럼 살이 찔 틈이 없다고.’ 하셨다. 60 다 돼 가도록 162cm, 53kg을 유지하셨다.


  나에게 엄마는 늘 이런 자기 관리 잘하고 강하고 멋진여성상으로 남아있다. 우리 가정이 여러모로 어려울 때에도 엄마의 생활력과 경제력으로 다시 일어서길 몇번이었다. 언제까지고 엄마는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연세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져도 박여산 늘 유쾌하고 강할 거라고 여겼다.


  내가 둘째를 낳고 어느 날인가부터, 엄마는 조금씩 아프다 하셨다. 원래 우리 아기들을 보러 오기로 한 날이었는데 목이 너무 아파 못 오겠다 하셨고, 가벼운 식사 한 끼 하기로 한 날에도 힘들어서 좀 쉬어야겠다고 하셨다. 난 그냥 엄마가 귀찮아서 그런 줄만 알았다. 왜 그 땐 엄마는 큰 병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지, 엄마에게 너무 컴퓨터를 오래 봐 그런 게 아니냐 어쩌냐 잔소리를 늘어놓았었는지. 참 못됐다.


  그러다 건강검진 중 엄마의 혈액수치에 이상이 있다는 소견을 들었고 점점 떨어지는 백혈구와 호중구 수치에 대학병원 몇 군데를 찾아가 골수검사까지 받아보았으나 원인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다 끝내 병명을 알게 됐다. 골수이형성증후군이란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불청객의 정체를 정확히 알기까지 일 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진단을 받고,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희귀 암환자 등록을 했다. 병명에 암이라는 단어가 없어서 그래도 충격이 덜 했는데 마음의 준비를 할 틈을 주지 않고 덜컥 우리 모녀를 데리고 가 희귀/난치성암환자 등록을 시켜주고는, 어떤 혜택들이 있는지 알려주었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엄마를 힐끗 살펴보니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 날만큼은 같이 있고 싶었으나 토끼같은 내 새끼들때문에 엄말 혼자 두고 집으로 와야만 했다.


  잘못 찾아온 게 분명해 보였다. 중간중간에 엄마가 아픈 적이 있었더라면. 응급실에라도 가거나 입원을 한 적이라도 있었더라면. 아니면 너무 힘들어서 쓰러져 누워있었던 적이 라도 있었더라면 덜 억울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박여사에게. 사실 병명을 안지 일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엄마가 낯설다. 한 시간만 걸어도 힘들어 앉아있고 싶다고 하는 엄마가 너무 낯설다.


 여기까지가 우리 모녀 이야기의 시작이 되겠다. 잘못 찾아온 불청객을 감사의 제목으로 여기기까지의 여정을 적어 나가보려고 한다.



# 우리 박여사는 그럼에도 씩씩하고 유쾌하여 지금도 웃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멀쩡한 게 입이라도 있어 전화로 수다라도 마음껏 떨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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