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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희 Apr 26. 2017

잘란잘란 특별활동, 스쿠버 다이빙 클래스

아빠와 두 남매의 발리 이야기, Green School 이야기 12

7학년에 속한 첫째 아이의 시간표에 특이한 과목명이 적혀 있었다. 잘란잘란Jalan Jalan. 길(way)이라는 뜻이다. 인도네시아 주소를 보면 거리 이름 앞에 어김없이 잘란Jalan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그린스쿨에서 잘란잘란은 선택형 특별활동 시간을 뜻한다. 매주 수요일 오전을 다 할애한다.


잘란잘란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은 실로 다양하다. 문학, 사회, 과학, 수학, 스포츠, 예술 분야의 다양한 활동들을 선택할 수 있다. 많은 경우 한 텀 동안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 형태로 운영된다. 바이오버스Bio Bus팀이나 바이바이 플라스틱 백Bye Bye Plastic Bags팀처럼 학생들이 주축이 된 NGO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어떤 프로그램은 학부모에게도 개방된다.


Bio Bus 팀은 리뉴얼 에너지를 연구한다. 스쿨버스는 여기서 나온 바이오디젤을 연로로 쓴다. (c) Green School


아이가 첫 번째 텀에 선택한 프로그램은 무려 스쿠버 다이빙이었다. 더운 것 싫고, 땀나는 것 싫고, 게다가 중력을 견디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는 아이에게 물속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어 보였다. 한국에서 수영을 1년 정도 배웠는데, 발리에서도 늘 스노클링과 다이빙을 하고 싶어 했다. 수영은 매일 할 수 있었지만, 우붓의 집에서 바다까지 가려면 한 시간 정도 소요되었기 때문에 자주 나가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스노클을 할 수 있을 만큼 잔잔하고 깨끗한 바다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에코비치의 파도를 너무 좋아했지만 집에서 한시간 거리라서 자주 가진 못한다. (c) 이성희


스쿠버 다이빙 수업은 사누르Sanur의 다이빙 학교에서 진행된다. 수요일 아침에 학교에서 모여서 학교 버스를 타고 다이빙 센터에서 수업을 하고 오는 일정이었다. 오전 7시에 학교에 도착해야 한다. 평소 등교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시간이다. 첫째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 동안 둘째 아이를 집에 혼자 둘 수도 없고, 그렇게 하더라도 아침 식사와 등교 준비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래서 딸의 프랑스 친구 엠마Emma 가족에게 카풀을 부탁했다. 엠마의 집은 뉴꾸닝에서 10분 거리인 페네스타난Penestanan이다. 여기도 뉴꾸닝만큼 그린스쿨 가족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모두 우붓에 속해 있다.


드디어 다이빙 수업 첫날이다. 5시 30분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엠마네 집까지는 스쿠터로 가기로 했다. 열대 지방이라도 아침 공기는 서늘하다. 좁다란 골목길을 지나자 탁 트인 논이 펼쳐졌다. 새벽 공기를 가르고 달리는 기분이 그만이었다. 엠마의 아빠 알렉스Alex를 만나 아이를 차에 태워 보내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집집마다 아침 준비하느라 피어오른 연기가 도로 위로 흩어졌다. 거기에 옅은 안개가 보태졌다. 입자마다 아침 햇살을 머금고 빛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아이도 수요일 아침의 스쿠터 드라이브를 꽤나 좋아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둘째 아이는 이미 옷을 입고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기 전에 오늘 아침의 일정을 얘기했는데 아이가 잘 이해한 것 같았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고 학교로 향했다. 바쁜 수요일이다.  




첫째 아이가 스쿠버 다이빙 클래스에서 서류를 한 뭉치 받아 왔다. 사전 지식을 묻는 건지, 시험을 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스쿠버 다이빙 관련 질문들로 가득 찬 종이가 무려 여덟 페이지였다. 스쿠버 다이빙 인증 기관인 파디PADI의 다이빙 라이선스를 위한 테스트 문제였던 것 같다. 영어로 작성된 문제와 예시를 해석해 주고 답을 고르라 했는데, 알 턱이 없다. 배운 거나고 물어보니 안 배운 것도 많단다.



물속에 들어갔을 때 우리 몸에 나타나는 변화들, 다이빙 장비의 기능과 사용법, 그리고 안전한 다이빙을 위한 규칙들이 적혀 있었다. 다이빙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필요한 내용들이었지만, 안전하게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데 필요한 내용들도 많았다. 아이에게는 영어 공부도 되었다. 아이와 문제를 같이 풀다 보니 나도 다이빙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딸과 취미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발리에 있는 동안 북부의 아멧Amed이나, 길리Gili섬, 코모도 국립공원 등을 여행하면서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를 많이 지나쳤다. 둘째 아이가 너무 어려서 같이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가 어려웠고 딸은 그걸 많이 아쉬워했다. 하지만 스노클링을 하며 들여다본 바닷속의 모습은 상상을 넘어선 경이로움을 안겨다 주었다.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화려한 바다의 모습이 실제였구나 하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잘란잘란 수업의 결실로 아이는 가장 기초 단계의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아이는 다이빙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 부모의 섣부른 욕심이겠지만, 진로를 선택할 때 해양생물학을 고려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란잘란 수업을 통해서 아이는 바다에 대한 자신의 관심사와 열정을 발견했고, 기본적인 수준의 스쿠버 다이빙 역량을 쌓았다. 그리고 해양생태계라는 넓고 깊은 세계에 눈을 열기 시작했다. 교육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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