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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희 May 24. 2017

그린스쿨 학부모회, GSPA

아빠와 두 남매의 발리 이야기, 그린스쿨 이야기 14


전망 좋은 방, 요가 스튜디오

학교 뒤쪽 대나무가 우거진 숲 안쪽으로 아름다운 계곡이 흐른다. 그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그린스쿨 요가 스튜디오가 있다. 학교 건물 중 유일하게 대나무가 아닌 목재 기둥을 사용한 건물이다. 아이들은 거기서 요가를 배운다. 그린스쿨 가족들을 위한 요가 교실이 열리기도 하고, 외부 사람들을 대상으로 요가 클래스가 진행되기도 한다. 세계 각지의 교사들이 참석하는 워크숍을 할 때도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그린스쿨 학부모회Green School Parents Association가 거기서 모임을 갖기도 한다. 


요가 스튜디오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 가끔 아이들이 몸을 담그기도 한다. (c)이성희


요가에 열심인 그린스쿨 엄마들이 가장 자주 찾는 건물 중 하나지만, 나는 GSPA에 참석하면서 처음 와 봤다. 월요일 오전에 요가 스튜디오에서 GSPA 모임이 있었다. 넓은 마루에 둥글게 둘러앉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니 둥근 원은 두 겹 세 겹이 되었다. 


학부모회 모임에서는 학교의 운영에 관한 부분, 특히 아이들의 학교 생활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안들을 주로 얘기한다. 학교 주방과 카페에서 파는 음식 얘기는 단골로 다뤄지는 주제이고, 투어 등 탐방객이 많다 보니 수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어서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문제도 자주 등장한다. 특별한 행사의 기획이나 방향성을 놓고 토론하기도 한다. 시행하기로 한 일들의 경과를 공유하기도 한다. 


학기 초 GSPA에서는 Culture Awareness라는 주제로 발리의 문화를 소개하는 시간이 많았다. 발리 전통 의상 입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c)이성희

 


만국 공통 근심, 입시

오늘 주제는 학교의 대학 입시 지원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람들이 영어로 빠르게 주고받는 얘기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는데, 하이스쿨 고학년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만이 좀 많은 것 같았다. 나는 한국에서 공부의 양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터였고, 아이들도 아직 어리긴 했지만 관심을 갖고 대화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새롭고 다양한 경험, 그리고 더 좋은 교육 여건을 찾아 이곳까지 왔어도 대학 입시라는 관문 앞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 왔던지 모두 같은 고민이다. 사립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선진국 공립학교에서는 카운슬러 선생님들의 역할이 무척 두드러진다. 그런데 부모들의 고민은 그린스쿨은 그러한 기능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아직 설립된 지 10년이 채 안되었고, 졸업생을 배출한 지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아직은 입시 지도의 역량이 좀 약한 것은 사실이다. 또 한편으로는 시험과 입시 위주의 교육을 탈피하고, 자기주도적이고 창의적인 교육 환경을 찾아 그린스쿨까지 찾아와서 입시 역량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조금 모순된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대학 입시와 진로 설계 카운슬링 역량을 갖추는 일은 그린스쿨에서도 무척 중요하다. 그린스쿨의 발전은 사실 이곳을 졸업한 학생들의 사회적 기여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부모로서 경험하기로는, 학생들에게 있어서 그린스쿨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도 엄청난 행운이다.  입시 지도 이전에 근본적으로 아이들이 자아를 발견하고, 더 넓은 세상과 문화와 환경에 눈을 뜨면서, 어떤 일을 어떤 목적으로 해야 할지 자신의 입장을 선명하게 세워갈 수 있는 기회를 누리고 있다. 이것만큼 중요한 학교의 역할이 또 있을까.  


<넘나들며 배우기>를 읽으며 공교육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c)이성희


마침 아내가 한국에서 보내 준 <넘나들며 배우기>를 재미나게 읽고 있다. 빅픽처 컴퍼니와 메트스쿨의 설립자이자 이 학교의 초대 교장이었던 엘리엇 워셔의 책이다. 공교육 체계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교육의 혁신적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 좋았다. 무엇보다 현장의 얘기라서 더욱 와 닿았다. 관건은, 학교나 학원의 흐름에 맡기는 것보다, 아이들이 주체가 되고 부모는 유연한 지지자가 되어 아이들의 진로탐색과 기초 역량 습득을 위한 기회들을 꾸준히 경험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린스쿨에서 보고 듣는 많은 이야기들과 맞물려서 책의 내용이 이후에 나 자신과 가족과 아이들의 교육 코디네이션에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의미로 가득한 월요일

GSPA의 공식적인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정기 회의이지만, 공식, 비공식으로 여러 모임과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기도 한다. 버스를 빌려 발리의 전통 가구점, 공예품 쇼핑을 하는 투어를 다녀오기도 한다. 특히 월요일 오전은 미닝풀 먼데이Meaningful Monday라는 이름의 세미나를 열고, 학부모가 관심을 갖고 있거나, 자녀 교육과 관련된 주제를 함께 나누기도 했다. 한참 교육학적 신경과학(Educational Neuroscience)이 이곳에서도 화제가 되면서 강사가 초청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 내가 관심을 갖고 참여했던 것은 제3문화권 아동(TCK, Third Culture Kids)을 주제로 몇 주간 열린 세미나였다. 세미나라기보다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대화에 가까웠다. 


제3문화권 아동은 부모의 고국이나 모국어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을 의미한다. 이민 가정의 자녀들이나, 주재원, 선교사, 해외에서 근무하는 군인 자녀 등 여러 경우가 있다. 이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언어 장벽을 포함하여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혼란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이 주제가 오래전부터 다뤄져 왔던 것 같다. 


그린스쿨에서도 이 주제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학생들 중 약 10%의 현지 아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제3문화권 아동이기 때문이다. 처음 한국을 떠나 살면서 우리 두 아이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아이들이 다 얘기하지 않은 일상 속에는 낯선 환경에서 낯선 언어와 문화와 부딪치면서 겪었을 어려움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부모들 자신이 TCK로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경우도 많았다. 유럽 쪽에서 온 가족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의 인생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이 주제에 관한 문제와 해답을 부분적으로나마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참여의 가치

학기 초에는 많은 학부모들이 GSPA의 정기 회의에 참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평균 스무 명 정도로 유지되었다. 바쁘거나 아얘 무관심한 경우도 있었는데, 내 경우에 가장 큰 걸림돌은 영어였다. 궁금한 것도 있었고,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하거나, 한국의 상황을 소개하고 싶은 경우도 있었다. 용기를 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고, 참석한 부모들도 충분히 배려해 줄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러기엔 에너지가 너무 부족했던 것 같았다. 이곳에서 머물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이런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과, 아니면 못했거나, 발리 주변의 다른 섬 지역으로 여행을 더 많이 하지 못한 것이다.


전교생이 모이는 어셈블리에서도 유치원 꼬맹이부터 고등학생들까지 기회만 있으면 질문을 한다. 보르네오섬에 본부를 둔 NGO에서 오신 분이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90분의 긴 강의를 마치고도, 질의응답 시간으로 거의 한 시간을 더 보냈다. 우리나라에서 참 보기 드문 장면이다. 


학교나 직장에서 개방적인 환경에서 자유로운 질문이나 토론의 기회가 많지 않다. 조직의 문화가 그렇게 굳어져 왔다. 그래서 참여라는 가치에 공감을 하지만 소극적이다. 특히 해외로 나오면 언어 장벽이 한 겹 더 쳐진다. 그걸 극복해 냈을 때 개인과 공동체가 누리는 풍요로움의 크기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곳의 독특한 환경과 교육 철학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성원으로서 누리는 그린스쿨의 진면목은 실은 이 참여의 힘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가 스튜디오 (c)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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