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두 남매의 Bali 이야기, Green School 이야기 10
발리 주민의 90% 이상이 힌두교도이다. 명목상의 종교가 아니고 그들의 의식과 삶에 아주 깊이 스며들어 있다. 발리의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인 녜삐데이Nyepi Day는 힌두교 사카 달력의 새해 첫 날이다. 이맘때 쯤에는 어디를 가도 큰 명절을 맞는 부산함이 느껴진다. 지역 시장은 더욱 정말 볼만하다. 녜삐를 앞두고 다양한 축제와 행사가 벌어진다. 그리고 당일에는 모든 공공 기관 뿐 아니라 상점이 문을 닫는다. 심지어 공항이 문을 닫고 비행기도 뜨지 않는다.
학교도 명절 준비로 부산하다. 오늘은 수업이 없고 학급별로 만든 오고오고Ogoh Ogoh 퍼레이드를 한다. 오고오고는 악령을 상징하는 커다란 인형이다. 녜삐데이 전날 밤에는 동네별로 만든 오고오고를 들고 나와 행진을 하고 의식을 치른다. 의식이 끝나면 오고오고를 태워 없앤다. 이 의식은 발리에서 볼수 있는 힌두교 문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오고오고를 얼마나 크고 무섭게 만들었는지 동네별로 은근히 경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이 힌두교 전통을 교육 목적에 맞게 재구성해서 활용하고 있다. 둘째 아이의 학급에서 오고오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서 부모를 초청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아이들 교실을 둘러 보았다. 아이들은 세 팀으로 나눠서 발표를 했고, 부모들은 각 팀을 투어 형식으로 돌며 아이들의 발표를 들었다.
아이들이 만든 오고오고의 이름은 스켈레톤Skeleton이었다. 한 팀은 스크린에 그림을 띄워 오고오고에 대한 소개를 했고, 또 한 팀은 스켈레톤이라는 제목의 노래와 율동을 가르쳐 줬다. 다른 한 팀은 뼈에 대한 설명을 들려줬다. 정말 재미난 시간이었다. 커다란 오고오고를 만들면서 아이들은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고, 창의력과 팀웍을 발휘하고, 사람의 골격을 공부하고, 노래와 율동을 지으며 끼를 발휘하고, 부모들에게 발표까지 한다. 공부라는 단어가 이 모든 활동을 표현하기엔 얼마나 빈약한 단어인지!
발표를 마치고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학교의 모든 아이들과 학급별로 만든 오고오고들, 그리고 학부모들로 가득찼다. 드디어 오고오고 콘테스트의 시상식이 열렸다. 시상의 이름도 창의적이고 다양했고, 상을 받은 오고오고들도 상에 걸맞는 특징과 주제를 담고 있었다.
드디어 행진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굵은 대나무를 격자 모양으로 엮은 받침대 안으로 들어가 양손으로 대나무를 붙들고 오고오고를 들었다. 크기에 비해 정문이 너무 좁아 담 위로 넘겨야 했다. 프라이머리 스쿨 학생들은 오른쪽 길로, 미들스쿨 학생들은 왼쪽 길로 행진했다.
조용하던 동네가 아이들의 함성으로 들썩들썩한다. 원래의 오고오고 행진은 악귀를 물리치는 의식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린스쿨 아이들의 행진은 아름다운 지구를 위협하는 불의와의 싸움이다.
그린스쿨은 국제학교였지만 지역 학교 이상으로 발리의 전통과 문화를 학습에 녹여내는 역량이 뛰어났다. 이 학교에 대해 알아보면서 지역성을 강조하는 교육 철학에 점수를 많이 줬는데, 과연 그 가치관이 어떻게 구현이 될지는 무척 궁금했었다. 오고오고 퍼레이드를 보면서 그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둘째 아이와 같은 반 아이의 학부모인 코망은 발리 출신이지만, 그린스쿨에서 아이가 배우는 발리의 문화를 자신도 아이에게 배운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학교를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얘길 했다.
행사가 끝나고 오고오고를 중앙 건물 로비에 전시해 놓았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모두 폐품을 재활용한 것들이다. 노 팜오일No Palm Oil이라고 적힌 문구는 아이들이 세상에 보내는 메시지같다.
진짜배기 오고오고 퍼레이드는 녜피데이 전날 밤 마을 곳곳에서 펼쳐진다. 한달 전부터 마을 회관이라 할 수 있는 반자르Banjar마다 오고오고를 제작하느라 부산하다. 마을 청년들이 주도가 되어 만든다. 지역으로부터 기부를 받기도 한다. 누가 얼마를 기부했는지 커다란 현황판을 만들어 회당 입구에 설치하기도 한다. 동네마다 경쟁이 심하다. 좀더 크고, 좀더 무섭게 만들어야한다. 오고오고의 형상은 사람인지 동물인지 뭐라고 형언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남성과 여성의 특징들도 마구 뒤섞여 있다. 괴물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다.
오늘부터 사흘간 녜삐 명절 휴일이다. 학교도 쉰다. 예상 외로 많은 상점들이 오늘까지 문을 열었다. 사흘간 거의 집에서만 지내야하기 때문에 준비할 것이 많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와 음식들도 잔뜩 사 두었다. 먹을 것 만큼 중요한 것이 인터넷이다. 집에 인터넷 사정이 안 좋아 따로 와이파이 송수신기를 샀다. 데이터를 충전하러 플리아탄Peliatan 쪽으로 갔는데 거기는 이미 길을 막고 세리모니가 한창이었다. 우리 동네 오고오고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큰 것이 도로 가로 나와 있었다. 아이가 닭백숙이 먹고 싶다하여 근처 마트에 들렀는데 고기가 별로 안 좋았다. 좀 더 큰 빈땅수퍼마켓Bintang Supermarket으로 갔다. 거기는 대목을 준비한 듯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식품들을 준비해 놨다. 녜삐를 준비하러 왔는지 평소보다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장을 보고 와 보니 아이들은 이웃에 사는 현하네 놀러가고 없었다. 그린스쿨의 몇 안되는 한국 가족인 현하네는 얼마 전에 우리가 예전에 살던 집으로 이사를 왔다. 지금의 우리 집과 네 집 건너 이웃이다. 이사 온지 얼마 안 되어 짐이 다 정리되지 않았지만, 엄마가 있어서 그런지 훨씬 사람 사는 집 같다. 한국에서 온 그린스쿨 패밀리를 이웃으로 맞이하다보니 아이들이 좋아한다. 우리말로 지껄이며 놀 수 있는 친구가 생겨서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저녁 때 현하네 가족과 오고오고 퍼레이드를 구경하러 나갔다. 마을 축구장에 이미 세 개의 커다란 오고오고가 나와 있다. 최대한 혐오스럽게 흉칙하게 만들어야 제맛이기 때문에, 인형들의 인상이며 모습들이 가관이다. 본격적으로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먼저 가장 어린 아이들이 작은 오고오고를 메고 나와서 춤을 추는 동안 한쪽에서는 전통 타악기 연주인 가믈란gamelan 악단이 열정적으로 타악기를 연주했다. 첫 팀이 물러가면 좀 더 큰 아이들로 구성된 다음 팀이 좀더 큰 오고오고를 메고 나와 또 춤을 추고 들어간다. 그렇게 순서대로 가장 큰 어른들의 오고오고까지 춤을 추고 나면 행진을 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길목마다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새해를 맞아 악귀를 쫓아내는 의식이다.
오고오고 퍼레이드는 발리에서 경험한 가장 격정적이고 인상적인 행사였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마을 사람들이 나왔다. 골목마다 사람들이 가득 찼다. 경찰이 교통 정리를 한다. 하늘에는 드론이 날고 있다. 현하네도 나왔고, 시먼Simeon과 트리나Trina 부부도 만났다. 동네 축구팀의 코치 마데Made도 만났다. 동네 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