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두 남매의 Bali 이야기, Green School 이야기 11
둘째 아이는 발리에 오기 전에 일주일에 하루씩 축구 클럽에 다녔다. 발리에서도 축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지가 아이에게는 중요한 관심사였다. 열대 지방에서 무슨 축구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동네마다 축구장이 있어서 신기했다. 1년 내내 아침저녁으로는 기온이 선선해서 공차기 딱 좋은 날씨였다. 실제로 해 질 녘에는 축구장마다 아이들이 맨발로 공을 차며 뛰어놀았고, 유니폼을 갖춰 입고 경기를 하는 어른들도 많았다.
발리에서 살 집을 구하러 뉴꾸닝Nyuh Kuning이라는 마을을 둘러볼 때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중 하나가 동네 한가운데 자리 잡은 운동장이었다. 잔디까지 깔리고 꽤 넓은 축구장이었다. 집에서는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였다. 둘째 아이가 집과 학교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주말마다 아침에 축구 교실이 열렸고, 거기서 운동하는 것이 둘째 아이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모이는 아이들 중에는 그린스쿨 학생들이 두어 명 있었고, 한국에도 잘 알려진 쁠랑기스쿨Plangi School 학생들도 꽤 많았다. 절반은 현지 아이들이다. 코치 역시 현지인이었는데 호텔에서 일하시는 분이며, 어쩌다 아이들 몇 명과 시작한 축구가 규모가 커지면서 코치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둘째 아이가 처음 축구 교실에 참석하기 시작했을 때는 쟁쟁한 아이들이 많았다. 스페인 출신 두 형제를 포함해서,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에서 온 아이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온 마르코Marco라는 아이는 키는 작았지만 발이 빠르고 드리블이 현란해서 유럽 프리미어리그 선수를 보는 듯했다. 유럽 아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현지 아이들 비중이 늘어나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이 학년도 높고 키도 큰 탓에 둘째 아이는 적잖게 주눅이 든 채로 축구 교실을 시작했다. 공격에 가담하지 못하고 후방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는 때도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골맛을 좀 보고, 자신감이 붙으면서 어느새 에이스 중 하나로 인정을 받게 됐다.
뉴꾸닝 축구팀은 다른 동네 축구팀과 자주 시합을 했고, 덴파사르Denpasar나 사누르Sanur 쪽으로 원정 경기를 나가기도 했다. 평소 연습할 때는 참 엉성해 보였는데, 다른 도시 아이들과 시합을 하면 전적이 꽤 좋았다. 발리 아이들 몇 명은 승부근성이 대단했다. 우리 아이는 플레이면에서는 다소 소극적인 편이었는데, 위치 선정이라든가 팀플레이를 시도한다든가 하는 모습을 보니 머리를 많이 굴리는 편인 것 같았다.
둘째 아이는 학교에도 늘 축구공을 가지고 다녔다. 입학식 때 나눠 준 쌀자루를 재활용해서 만든 에코백에 공을 넣고 다녔는데, 책가방보다 그게 더 익숙한 모습이 되었다. 학교 도착하면 수업 시작하기 전에 공을 찼다. 점심시간에도 공을 찼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는 공을 좀 더 차고 가겠다고 우기고, 누나는 빨리 집에 가자고 보채는 바람에 아빠는 중간에서 적잖게 스트레스도 받았다.
학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방과 후 프로그램이 나왔다. 악기, 그림, 운동, 춤, 그리고 다양한 프로젝트 활동으로 가득 찬 일정표를 보니 아빠로서 가슴이 설렐 지경이었다. 그런데 첫째 딸은 집에 빨리 가고 싶으니 방과 후 활동을 신청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고, 둘째 아들은 수요일에 있는 축구 교실 하나만 신청하겠단다. 이 문제를 갖고 몇 개월간 아이들을 들들 볶았으나 결국 나는 두 손을 들었다.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들에게 무엇을 억지로 강요하는 건 아니다 싶었다. 그런데 한 아이만 방과 후 활동을 하다보니 아이들 귀가시키시키는데 문제가 생겼다. 두 아이를 따로 귀가시키느라 학교에서 25분 거리의 집까지 두 번 왕복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딸아이를 카풀에 태워 먼저 집으로 보내기도 했다.
아이에게 너무 축구만 하는 게 아니냐고 잔소리를 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만 두었다. 둘째 아이에게 축구는 영어 이상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기초 수준의 영어도 힘들어했던 아이가 발리와 그린스쿨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축구가 결정적이었다. 동네에서는 현지 아이들과도 공을 차며 잘 어울렸고, 학교에서는 둘째 아이의 위력적인 슈팅을 막는 것이 아이들 사이에서 대단한 도전거리로 받아들여졌다. 학년을 불문하고 공만 있으면 아이는 누구와도 함께 어울렸다.
방과 후 스포츠는 3개월의 텀이 끝나면 다른 종목으로 바뀐다. 일 년에 네 종목을 배운다. 그리고 4주 간 목요일마다 다른 국제학교들과 시합을 벌인다. 아이들은 한 번의 홈그라운드 경기와 세 번의 원정 경기를 치렀다. 첫 원정은 발리아일랜드스쿨BIS에서 열렸다. 그린스쿨 포함 세 학교가 참여해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
서 있기도 어려운 뙤약볕이었지만 아이들은 정말 열심히 뛰었다. 더위에 지치지 않도록 전후반 30분 정도의 짧은 경기가 몇 번 치러졌고, 이기고 지기를 반복했다. 순위는 다음에 열리는 경기까지 합산해서 가리기로 했다. 아이들은 점수나 순위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저 공을 차는 게 즐거울 따름이었다.
경기 내내 집에 혼자 있는 첫째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는 이웃에 사는 1학년 아이 루나Luna와 씨앗을 심으며 가드닝 놀이를 하고 있었다. 같이 노는 모습이 참 예뻤다. 쉴 새 없이 종알대는 루나 모습이 첫째 아이 어렸을 때 모습 같았다. 남매가 일정이 다르다 보니 첫째 아이가 혼자일 때가 많다. 둘째 아이의 원정 경기에 따라다니다 보니 더 그런 일이 자주 생긴다. 그런데 첫째 아이는 나름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바로 옆집에 귀여운 동생이 있어서 더 다행이다.
한 주가 지나고 디아미카 스쿨Dyatmika School에서 두 번째 원정 경기를 가졌다. 둘째 아이가 속한 2학년 그룹이 6대 0으로 완승했다. 아이는 수비를 맡았는데, 상대팀의 공격 기회를 그때그때 차단해 줘서 팀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아이에게 상을 주고 싶어서 한국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우붓 시내에 있는 밥이야Babiya라는 분식 스타일의 한국음식점이었다. 아이들이 비빔밥, 김밥, 떡볶이를 골랐다. 맛은 우리나라 음식만큼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떡은 너무 물러서 씹는 맛은 없었지만 양념 맛이 아주 그만이었다. 떡볶이를 추가하고, 거기다 밥을 시켜서 비벼 먹었다.
마지막 원정 경기는 다시 발리아일랜드스쿨에서 열렸다. 오늘따라 학부모들이 많이 따라왔다. 아이는 중앙 수비수였는데, 지난번처럼 대담하게 잘 막아 주었다. 아이가 자리를 비우면 항상 수비에 구멍이 생겼다. 축구팀 코치를 맡은 밤방Bambang 선생님이 아이에게 수비수 포지션을 잘 지켜달라고 주문하는 게 보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아이들의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날 저녁에는 삼겹살로 몸보신을 했다.
아이가 축구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억지로 시키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아이가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 좋아는 했지만 실력은 너무 어설펐다. 좋아하는 것을 잘 하도록 돕기 위해 이런저런 코치를 해 주려 했으나 아이는 그걸 싫어했다. 자세 교정이며 팀 플레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쳐 주고자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이도 부모 마음에 욕심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 같았다.
아이는 정말로 축구를 좋아했지만, 옳은 축구보다 즐거운 축구를 원한다는 걸 깨닫고는 잔소리 같은 코칭을 그만두었다. 대신 같이 놀아주고, 축구하는 것을 지켜봐 주고, 많이 칭찬하고 응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틈만 나면 공을 찼고, 엄마가 사준 책을 읽으며 혼자 자세를 연습하기도 했다. 영어든 인도네시아어든 TV에서 축구 방송이 나오면 눈을 떼지 않았고, 길거리 광고판에 축구공이 나오면 항상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다 보니 처음보다 축구가 많이 늘었다. 다리에 힘도 생겼고, 높이 뜬 곳을 쉽게 잡아낸다. 더 이상 벌 떼 축구에 가담하지 않는다. 드리블을 시도하고, 멋지게 팀플레이를 이끌기도 한다. 잔소리를 빨리 그만두길 잘 한 것 같다. 무엇인가를 스스로의 결정으로 해 나갈 때의 성과라 생각한다. 공부를 하는 것도, 꿈을 실현해 가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