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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희 Apr 21. 2017

경계에 선 두 영장류,
사람과 오랑우탄

오랑우탄을 찾아 떠난 보르네오섬 탐험기

두 아이가 다니던 인도네시아 발리의 그린스쿨Green School에서 지난 해 다뤄진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보르네오섬의 산불이었다. 막대한 면적의 열대 우림을 잿더미로 만들고, 서식하던 야생 동물과 지역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했던, 짙은 연기가 바람을 타고 싱가포르까지 넘어가 항공기 운항까지 중단시켰던 그 산불이다. 


이 화재가 몰고 온 비극의 한 가운데 오랑우탄이 있다. 멸종 위기의 이 영장류는 정글에서 일어난 화재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이다. 그린스쿨 아이들이 캠페인을 위해 그린 포스터마다 불타는 숲에서 겁에 질린 오랑우탄의 모습이 등장한다. 아이들에게 죄책감과 절망감을 심어줄 수도 있으니, 이런 그림 그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려다 학교측으로부터 괜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캠페인도 좋지만 아이들의 인식 속 오랑우탄이 너무 불행해 보인다. (c) Green School /  Kids Cut Palm Oil


두 아이의 마음 속에 그려진 오랑우탄은 동물원 우리에 갇힌 무기력한 모습, 그리고 참혹하게 불에 그을려 신음하는 모습 뿐이다. 이게 늘 마음에 걸렸다. 아이들에게 진짜 오랑우탄을 경험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느 새 하나의 열망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과 함께 보르네오 섬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전세계에서 오랑우탄이 서식하는 곳은 수마트라와 보르네오 단 두 곳. 모두 인도네시아에 속한 섬이고, 발리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국내선 항공기로 갈 수 있는 곳이다. 발리에 머물고 있는 동안이 아니면 언제 가 보겠나 싶어 보르네오섬 여행을 추진했다.

발리에서 보르네오섬까지 거리는 가깝지만 직항편이 없어서 수라바야를 경유해야 한다.


발리섬의 덴파사르를 출발해 자바섬의 수라바야로 날아가서 다시 보르네오섬 중부 칼리만탄 지역의 팡칼란분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보르네오섬에 다다르자 비행기 창밖으로 광활한 밀림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시야엔 끝없이 넓은 팜palm농장이 들어왔다. 이거였구나. 이 농장을 조성하기 위해 그렇게 불을 질러 댄 것이다. 싱가폴과 말레이지아를 뒤덮은 연무, 연기로 신음하는 지역 주민들, 불타 숨진 오랑우탄들… 마치 어떤 재난 현장에 들어선 것처럼 마음에 긴장감이 몰려왔다.


정글 대신 펼쳐져 있는 것은 야자유를 생산하기 위한 팜palm 농장이다. (c)이성희


공항에서 만난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3박 4일을 지낼 배에 올랐다. 여행의 시작은 강 위에서 드려진 예배였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노래하고 로마서 8장을 살펴 봤다.


“그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하리라는 소망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신음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피조물만 아니라 성령의 첫 열매를 받은 우리들 자신도 속으로 신음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우리 몸이 구속될 것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날의 가족 예배는 영주댐 건설로 위기에 처한 내성천에서 드렸던 예배에 이어 두 번째 ‘강 위의 예배’였다. 흰수마자가 헤엄치지 않는 내성천, 오랑우탄이 살지 않는 보르네오섬은 아담과 하와가 떠난 에덴이다. 그렇게 죄와 죽음의 증상은 피조 세계를 신음하게 하고, 결국 파멸의 끝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건 사람일 거다.

두 곳 모두, 사악한 정치와 파렴치한 자본이 할퀴고 간 곳이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그 위기의 땅에서,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 주시는 위로와 치유의 힘을 경험했다. 그 시간의 추억들이 회개와 회복의 의지를 새롭게 하라는 메시지처럼 여겨졌다.


동물원에 갇혀 있지 않은 오랑우탄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물론 나도 보고 싶었다. (c) 이성희

보르네오섬을 찾았던 건 야생의 오랑우탄을 보기 위해서였으나, 우리가 만나고 온 친구들은 엄밀히 말하면 야생은 아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오랑우탄들은 야생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거나, 야생의 오랑우탄 커뮤니티에서 사실상 배척된 친구들이다.


팜 농장 개간을 위해 벌목을 하고 숲을 태워버리는 과정에서 수많은 오랑우탄이 서식지를 잃고 떠돌거나, 화상과 부상을 입은 채 구조되었다. 이 오랑우탄들은 보호 센터에서 치료와 훈련을 받고 야생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많은 경우 야생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사람의 주변을 겉돈다. 이들은 사람이 공급하는 먹이에 의존하고 있다. 


오랑우탄들이 시간에 맞춰 피딩센터로 몰려들고,  사람들은 오랑우탄을 보러 모여든다. (c)이성희


그러니까 우리 가족은 나흘간 세 곳의 오랑우탄 피딩센터Feeding Center를 둘러본 것이다. 밀림 파괴의 피해자인 오랑우탄은 야생과 문명의 경계에서 살 길을 찾았고, 그곳은 일부의 지역 주민에게 일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려고 수많은 여행객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경계에 선 오랑우탄은 그대로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강변의 작은 마을 꾸마이Kumai는 오랑우탄 정글투어를 위한 하우스 보트house boat들로 가득하다.



이런 공생적 구조가 자연스럽게 생겨날 리가 없다. 많은 연구 기관과 동물 구호단체가 위기의 오랑우탄을 위해 정글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우리가 방문했던 캠프 리키Camp Leakey는 비루테 갈디카스 박사Dr. Birutė Galdikas의 오랑우탄 연구 기지였다.


그 캠프는 고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Dr. Louis Leakey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는데, 그는 오랑우탄의 비루테 갈디카스, 침팬지의 제인 구달Jane Goodall, 고릴라의 디안 포시Dian Fossey 등 세 여성 동물학자의 멘토였다. 그래서 이 세 명에겐 리키의 천사들 Leakey’s Angels 또는 유인원(primate)이라는 단어를 본 따서 더 트라이메이트The Trimates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캠프 리키에 그려진 오랑우탄의 가계도에는 우리가 만났던 우두머리 톰Tom의 어릴 적 사진이 걸려있다. (c)이성희


에코 투어Eco Tour라는 근사한 타이틀이 붙긴 했지만, 보르네오에 오랑우탄을 보러 가는 것은 관광이다. 하지만 하우스 보트 운영회사들은 이런 관광이 지역과 오랑우탄을 팜오일 자본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호소한다. 공정하지 않은 경제구조 속에서 여행이 얼마나 공정해질 수 있을까. 여행이 얼마나 ‘공정’한지는, 공정여행으로서 여행 상품의 완성도나 이미지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한 구조에 저항하고, 균열을 만들어 내는 충격(impact)의 크기로 평가되어야 한다.



사실은 그런 균열이 시작되는 곳은 우리의 인식, 의식(awareness)이다. 나도, 아이들도, 한국에서 보내 준 허니버터칩과 짜왕에 열광하지만, 거기엔 오랑우탄의 눈물이 섞여있다. 오늘날, 단 하루라도 팜오일palm oil이 들어가지 않은 식품을 피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슬픈 것은, 무기력한 소비자는 그런 구조에 저항할 힘도, 대안도 없다는 거다. 진실을 아는 건 대단히 불편한 일이다.


강을 따라 여행하던 중 긴코 원숭이 무리를 만났다. 보르네오 섬에서만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이다. (c)이성희


이런 곳으로 가족 여행을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은 어떠한 죄책감과 절망감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품어주고, 느끼고 경험하게 해 주고, 감동시키고 즐겁게 해 준다. 자연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니, 충분히 사랑할 수 있겠다는 ‘고백’을 받아내는 놀라운 힘이 있다. 자연은, 창조주가 자기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그대로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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