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두 남매의 Bali 이야기, Green School 이야기 ⑥
"뿌따따따따따"
경운기 엔진 소리가 마을을 흔든다. 지나간 자리마다 시커먼 논흙이 드러난다. 황금 빛깔을 자랑하던 논은 얼마 전에 농부에게 쥐어 뜯겨 알곡을 다 빼앗기더니, 이제는 기계가 할퀴고 간 자리마다 검은 속살을 드러내고 말았다. 창밖으로 널찍하게 펼쳐진 들판은 금세 검은 땅으로 변해버렸다. 이 요란스러움은 새로운 시작의 서곡이다. 공허한 들판은 풍년을 꿈꾸는 알곡들의 꿈자리이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서너 달이면 이곳은 다시 황금빛 곡식으로 가득 찰 것이다. 거의 반 년을 쉬는 우리나라의 논과는 달리, 이곳은 추수가 끝나자마자 논에 물을 대기 시작해서 흙이 물을 품기 시작하면 냉큼 갈아엎는다. 금세 못자리가 만들어지고 모를 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이삭이 패기 시작한다. 이렇게 일 년에 세 번, 용어도 생소한 3모작이다. 발리의 논농사는 이토록 숨 가뿌다.
어린 시절 사회 시간에 열대 지방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얘길 들었었다. 꽤 오랫동안 하나의 지식으로 머리 속에 남아 있었고, 그대로 하나의 편견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을 보면 '의외다' 하는 생각이 일어나곤 했었다. 이제 그 낡은 지식을 버릴 때가 되었다. 일 년에 세 번 벼를 수확한다는 게 여간 부지런해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분들이 일하는 모습이 그렇게 전투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우붓 시장에서 파는 풍경화 속 장면 그대로다. 서너 명이 드문 드문 서서 손으로 일을 한다. 저 넓은 논 일을 언제 다 마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문득문득 창밖을 바라보면 어느 새 빈 논은 가지런히 심긴 모로 채워졌다. 등굣길에 알곡으로 가득 찬 논을 보면서 나왔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추수가 다 끝나 있기도 했다.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는 일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결국 일을 다 해 내는 모습이 신비로웠고, 자연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을 치르듯이 살지 않아도, 우리의 내면에 영적, 지적, 정서적 자양분이 쌓이고, 목표한 일을 해 내고, 그렇게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 순리일 듯한데, 우리 사회는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벼가 자라고 농부들이 알곡을 거둬들이는 모습은 흔하디 흔한 이곳의 일상이지만, 그 모습을 1년 가까이 지켜보는 동안 나와 아이들은 몸과 마음의 숨을 고르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시간은 심신을 추스르면서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경작해 나갈지 배우는 시간이었다. 창밖의 논 풍경은 말없이 우리에게 인생수업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발리에도 기후변화의 여파가 만만찮다. 우기가 늦게 시작하고 일찍 끝났다. 현지인들도 비가 너무 안 와서 걱정이라고들 했다. 건기가 되면 그린스쿨의 운동장은 아침마다 스프링클러가 바삐 돌아간다. 잔디로 덮여 있는 동네 축구장은 꽤 오랫동안 누런 빛깔이었다. 집주인 아저씨도 매일 아침 정원에 물을 뿌렸다. 그런데 논에는 항상 물이 풍부했다. 농수로에는 물이 끓기지 않았다. 이 물이 어디서 왔을까. 그 답은 발리 섬의 지형에 있다. 발리의 북쪽 중심부에는 3,000미터가 넘는 아궁산과 킨타마니 고원이 자리 잡았고, 열대 우림으로 뒤덮여 있다. 숲은 우기에 퍼붓는 빗물을 품어서는 하천을 따라 연중 고르게 흘려보낸다. 높은 산 위에 3개의 큰 호수가 있다. 발리 사람들은 스박크라고 불리는 관개 시설을 만들어 호수에서 흘러나온 물로 남쪽 땅을 적시도록 했다. 댐을 쌓고 물을 가두는 대신, 숲을 보존하고 혈관 같은 농수로를 통해 온 땅에 물을 공급하는 모습은 참으로 지혜로워 보였다. 어디서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수로가 집 앞의 논까지 닿는다. 조그만 수로에서 또르르 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어느새 환경의 일부가 되었다. 농부는 물길을 막았다 텄다 하면서 논의 물을 조절했고, 물이 채워진 논은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오리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볏짚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지붕을 비롯해 바구니와 종교의식을 위한 장식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용할 수 있는, 코코넛 잎사귀와 같은 양질의 재료가 풍부하기 때문이리라. 벼를 수확할 때는 이삭만 베어 간다. 알곡만 떨어진 길쭉한 볏짚이 논에 그대로 남아있다. 가지런히 꽁지만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논과 사뭇 다르다. 알곡을 털어낸 터럭들은 논 한가운데서 불태운다. 바람이 이쪽으로 불기라도 하면 집은 연기로 뒤덮인다. 방 안으로 재가 날아들어오기도 한다. 수천 년을 이어온 이분들의 생활양식이니 민원을 제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 년에 몇 차례의 이벤트로서 있는 그대로를 즐길 수밖에 없다.
터럭 태우기가 끝나면 논에는 다시 물이 채워지고, 농부는 논바닥을 이삭만 잘려나간 벼 줄기와 함께 기계로 갈아엎는다. 이날은 백로들의 잔칫날이다. 진흙 속에 숨어있던 우렁이며 곤충들을 잡아먹으려고 온 백로들로 눈이 부실 정도다.
흙덩어리가 부서지고 논에 찰랑대던 물이 잔잔해질 즈음에는 대규모 오리 부대가 투입된다. 농부가 아침마다 오리를 풀어놓으면 온 동네가 꽥꽥 소리로 요란하다. 오리들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주둥이로 논바닥을 들쑤신다. 우렁이와 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고, 진흙에 엉킨 풀뿌리를 집어 먹기도 하는 것 같다. 수십 마리의 오리는 땅을 고르게 하고, 해충과 잡초를 없애주고, 똥오줌으로 거름을 대주기도 한다. 그리고 둘째 아이는 담장 밖의 오리들이 인기척에 놀라 내빼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몇 번이고 소리를 지르며 오리들을 골탕 먹이기도 했다.
해 질 녘에 농부가 오리들을 집안으로 들이고 나면, 잠시 정적이 흐르는 듯 싶다가 이내 개구리 소리가 시작된다. 이곳에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는 개구리 소리 때문에 잠을 잘 들었다. 거기다 개코와 찍짝이 울어대는 소리까지 가세해서 한밤중에는 그야말로 동물들의 합창이었다. 나도 아이들도 그 소리를 즐겼다. 잠자리에 누워서 아이들과 소리를 구분해 보자고 했다. 어떤 동물인지는 모르지만 대략 여섯 가지 소리를 찾아냈다.
발리의 농부들은 논에서 나온 것은 알곡만 가져간다. 나머지는 그대로 논으로 돌려준다. 알곡만 따고 쭉정이는 논바닥에서 태운다. 남은 볏짚은 그대로 갈아엎는다. 오리를 풀어 흙을 고르게 하고 배설물로 거름을 삼는다. 수로를 따라 수백리를 흘러 온 물은 풍부한 무기물을 공급한다. 일 년에 3모작을 하더라도 땅심이 약해지지 않는 것은 땅의 기운을 소진시키지 않아서 일거다. 그 논에서 사람들은 쌀을 얻고 온갖 새와 동물들은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다. 논에 깃든 공존의 기술이 감동적이다.
2층 발코니에 앉으면 논의 광경이 펼쳐진다. 아이들은 거기서 간식을 먹고, 게임을 하고, 그림을 그렸다. 일요일엔 셋이 둘러앉아 조촐한 예배를 드렸다. 예수가 광야에서, 초원에서, 그리고 해변에서 사람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가르치실 때, 그 말씀은 각각의 풍경 속에서 가장 적절한 비유와 표현의 도구를 이용했을 것이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논의 모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생명력으로, 풍성함으로 빛나던 논의 모습은 나와 아이들의 내면의 풍년에 관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학기 첫날을 앞둔 주일에 요셉의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7년의 풍년 동안 다음 7년의 흉년을 대비했던 제국의 총리는 그의 일가족은 물론, 이집트 왕실과 그 나라의 국민들, 그리고 주변 국가의 굶주린 사람들을 기근으로부터 구해 냈다.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요셉이 절대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하나의 꿈과 계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력은 그 계시를 이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어졌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반대로 가르친다. 돈과 권력을 얻는 것이 성공이라 정의하고, 그것이 꿈을 이루게 해 줄 것이라 말한다. 그 이데올로기가 견고한 사회적 합의로 자리 잡았고, 그것이 교육 현장에서 철학을 밀어냈다. 아이들의 순수함과 영민함은 표준화된 시험을 준비하면서 싹이 말랐다. 내면이 빈곤해지고, 꿈을 잃어버렸다.
자연 속에서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도록 돕는 것이 부모로서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이런 가치들이 우리나라의 환경과 문화의 특수성을 넘어 국가와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가치로서 의미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 가족에게 그린스쿨은 이런 의미였다.
1년에 세 번씩 풍성한 소출을 내는 발리의 논은 내면의 풍성함을 묘사하는 강력한 상징이 되었다. 기업과 단체, 심지어 나라에서도 강조하는 '지속가능성'의 원리를 발리의 농부들은 논농사에 깃든 완벽한 순환의 구조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적 자양분을 공급할 것인가. 그것이 아이들의 내면에서 어떻게 비전과 역량을 형성해 가는가.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이웃과 지역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을까.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그들의 언어로 묻는다. 이곳에서 계획한 1년이 그 답을 찾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다. 그린스쿨에서 경험한 생각과 활동의 자유로움이 아이들에게 어떤 환경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훈련이 되길 바란다. 다시 한국의 학교로 돌아가더라도 이곳에서 경험한 자유롭고 창의적인 학교 생활을 지속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외적인 환경보다 내면의 풍요로움이 그 자유와 창의의 원천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