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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안후라이안 Nov 11. 2020

남녀 간에 얼마간 함께해야 부부간이 될까

'간'의 띄어쓰기

"이 댁 따님이 제 꿈에 나왔어요."


할머니는 엄마네에 찾아가 이런 얘기를 대뜸 꺼내며 혼사를 제안하셨다고 합니다. 맞선 다음 날이었습니다. 진짜 꿈에 나왔는지, 그저 우리 엄마가 며느릿감으로 마음에 드셔서 한 말일지는 모르겠어요. 그런 건 중요치 않았겠지요. 저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운명을 믿어요. 운명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히 엮이던 날.  할머니의 한마디 말씀으로 엄마와 아빠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그 뒤에도 여러 일들이 있었겠지요. 결혼이 번갯불에 콩 굽듯 성사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고, 부모님의 결혼은 꽃 피는 봄에 치러졌습니다. 남녀 간이 부부간이 되기로 결정하는 데는 모두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남녀 간'은 띄어 쓰고 '부부간'과 '얼마간'은 붙여 쓸까요?




10(間)

「의존 명사」

「1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까지의 사이.

「2」 ((일부 명사 뒤에 쓰여)) ‘관계’의 뜻을 나타내는 말.

「3」 ((‘-고 -고 간에’, ‘-거나 -거나 간에’, ‘-든지 -든지 간에’ 구성으로 쓰여)) 앞에 나열된 말 가운데 어느 쪽인지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


-간16(間)

「접사」

「1」 ((기간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동안’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2」 ((몇몇 명사 뒤에 붙어)) ‘장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간10'은 의존명사입니다. 혼자서는 쓰이지 못한다는 뜻인데요, 줏대가 없달까요. 그래도 꿋꿋하게 다른 단어에 딱 붙지 않고 거리를 두는 녀석입니다. 


'-간16'은 접사, 그중에서도 단어의 끝에 붙는 접미사입니다. 접미사를 사전에서 찾으면, 단어 앞에 '-' 표시가 있는 것으로 곧장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녀석은 훨씬 더 의존적인 편이므로 앞 단어와 붙여 쓰도록 합니다.


사물과 사물, 인물과 인물의 '사이'나 '관계'를 나타내는 '간'은 띄어 씁니다.

예) 남녀 간, 기업 간, 서울과 부산 간, 부모 자식 간 등


언제부터 언제까지, 즉 시간의 '사이'나 '동안'을 뜻하는 '간'은 붙여 씁니다.

예) 얼마간, 그간, 한 달간, 삼십 일간


예외도 있는 법. 사물과 사물, 인물과 인물에 쓰이지만 이 단어는 붙여 씁니다.

예) 형제간, 부부간, 모자간, 부녀간


왜 예외냐고요? 이 단어들은 자주 쓰여 굳어진 말로 본 것입니다. 표준어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아냐고요? 국립국어원에서 펴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됐는지 아닌지로 구별합니다. 맙소사! 매번 사전을 펼치지 않으려면 이걸 다 외워야 하는 겁니다. 이런 식이라면 '설레임'이 더 좋다고 하신 분들은 후대에 국어 공부하는 친구들을 괴롭히자는 말과 살짝 다를 바 없을 수도 있음을 유념해주세요, 히히.


'-간16' 2는 예외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외양간', '대장간'처럼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짧은 만남으로 결혼하신 저희 엄마와 아빠는 취향이 정반대입니다. 엄마는 팝송과 클래식을, 아빠는 트로트를 들으시거든요. 녹색을 좋아하시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무채색 계열 위주로 입으십니다. 신기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가치관은 비슷하십니다. 무엇보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함께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옛날부터 엄마를 위해 빌보드 팝 카세트테이프 세트를 사들고 오시던 아빠와, 노래방에 가면 아빠를 위해 트로트를 예약하고 함께 불러주시는 엄마거든요.


그래서 저는 사람을 만날 때 취향이 비슷하다거나 말이 통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들지 않습니다. 배려하려는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알아버렸거든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취향이 비슷한 사람보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 찾기가 더 어려우니, 그게 걱정이긴 합니다만.... 이게 다 제 내공이 아직 부족한 탓이겠지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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