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로 인한 죽음은 애도 과정도 비슷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3년 뒤 즈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슬픔이 기억난다. 동시에 내 마음에 솟구쳤던 생각도 기억한다. 뭔가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될 혼자 간직해야 하는 생각 같았다.
'아빠도 친척 어른들도 이제는 날 이해하지 않을까? 이제는 괜찮은 척을 덜해도 되겠다.'
그 마음이 스스로에게도 무섭고 가혹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많이 나지 않았다. 엄마보다 할아버지와 함께 산 기간이 훨씬 더 긴데도 그런 기분을 느낀다는 게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의 장례식에서 나는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건지 제대로 모르는 생에 처음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이하는 중학생이었다. 할아버지 장례식에서는 나보다 더 크게 우는 가족들이 있었다. 둘 다 갑작스러웠고 둘 다 내게 지나치게 가까운 사람이었고, 나는 어렸다. 그래도 슬픔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죽음은 이렇게 장례를 치르는구나. 엄마처럼 하루만 향을 피우고 사람들한테 알리지도 않은 채 끝나는 게 아니구나. 주변 지인들에게 알리고, 미리 가입해둔 상조회사에서 많은 것들을 챙기는구나.' 이런 생각은 1년에 한 번 꼴로 제사 때마다 다시 되찾아왔다. '원래는 이런 거고 우리 엄마의 죽음은 원래 있어서는 안 되는 그런 거였구나.'
장례식은 너무 급하게 이루어졌고, 하루 향을 피우고 다음날 발인할 만큼 너무 간소화되었고, 49제도 없었다. 학교에도 알리지 않았고, 아주 가까운 어른들이 아는 손에 꼽는 몇 명 외에는 방문객도 없었다. 찾아보니 대체로 많은 경우에 이렇게 이뤄지더라고. 장례식을 이유를 밝히면서 하는 것도 아닌데 자살로 죽은 경우 급하게 소문 없이 치러진다.
안 그래도 갑작스러운데, 슬퍼하고 보내줄 수 있는 기간조차 어느 누가 강하게 주장한 것도 아닌데 당연하다는 듯이 간소화되고 생략된다. 가까운 이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건 갑작스럽고, 또 폭력적이고, 상세한 이유는 생략되어있다. 아무리 흔적을 되짚어도 명확하지 않고 답은 영원히 생략이다.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를 위해서 한다는 장례식 절차도 그랬다.
2008년에 비하면 사정이 많이 나아진 것 같다. 실제로도 많이 변했을까? 2008년은 유명 연예인이 죽은 해다. 베르테르 효과가 정말 심했다고 수많은 연구가 나왔다. 이후 언론보도 방식도, 예방센터의 업무 범위도 변했다. 그때는 아주 상세히 많은 걸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짐작만 가능하고, 그때는 어느 누구 하나 자조모임이나 상담 센터 같은 걸 알려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하긴 하는 것 같다. 실제 유가족들의 겪는 과정도 많이 변했을까? 그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