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을 소재로 이야기가 오가던 중이었다. 이웃 회사에서 임금삭감 없이 2시간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도입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별생각 없이 부럽다고 하자 옆에 있던 선배직원이 저렇게 말했다. 공격적인 어투에 불쾌감을 느끼기 전에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왜 저런 반응을 하는 거지?
저출산 극복이 국가적 과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지만, 조직 안에선 오히려 출산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강해지고 있다. 비혼자의 목소리가 높아져서다.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직원을 보며 “이기적”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이제 부장님이 아니다. 비혼을 선택한 옆자리 직원이다.
육아휴직은 물론 출산할 때 지급하는 경조금과 임신기 단축근로 제도 역시 역차별이라는 의견이 블라인드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 탓에 우리 회사엔 올해 난임휴가를 쓴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분명 옆 팀 과장님이 2년째 자연임신에 실패해 시험관시술을 했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난임휴가는 사용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왜 난임휴가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조심스레 물어보니 아이에게 미안해서라고 한다. 난임휴가를 쓰면 동료 직원들이 불만을 가질 것이고, 소중한 아이를 갖기 위한 노력이 마치 잘못을 저지르는 것처럼 여겨지는 게 싫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느니 연차휴가를 쓰는 게 마음 편했다고 한다.
분위기가 이렇지만 그렇다고 비혼자들을 비난할 순 없다. 회사의 복지제도나 국가 정책이 아이를 가진 기혼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같은 월급을 받고 일하는데 정작 복지제도에서 소외되는 박탈감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른다. 출산과 육아가 자연스러운 생애주기가 아닌 선택의 문제가 되었지만, 비혼을 이기적이라 손가락질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여전하다.
무엇보다 비혼을 선택하기까지 어떤 고민을 했을지 나 역시 너무나 잘 안다. 살인적인 집값과 사교육비용, 경력단절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조직문화는 우리 부부가 출산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계속 따라다니던 이슈였다. 출산을 위해 우리가 포기한 게 큰 만큼, 비혼을 위해 선배직원이 포기한 것도 클 것이었다.
부조리한 상황 때문에 비혼을 택했지만, 부조리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에 반대하게 된 모순은 개인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니다. 기혼자와 비혼자 모두에게 득이 되는 정책을 제시하고, 그게 힘들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생산적인 담론을 만들어야 할 사회의 몫이다. 생산연령인구 감소는 세수 부족과 국민연금 등 복지지출 부담 증가로 이어지므로 저출산 극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설득은 아무런 울림이 없다.
우리 부부는 4개월째 자연임신을 시도하고 있다. 만약 임신 준비기간이 길어져 시험관시술을 하게 되면 난 난임휴가를 쓸 수 있을까? 그때라고 지금과 사내문화가 다르진 않겠지만, 난 용기를 내보려 한다. 이기적이라 눈치 주는 타인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해서 내 행동까지 맞춰줄 필요는 없다.
처음이 가장 힘든 법이다. 내가 시작하면 다른 누군가 이어서 사용할 거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제도로 자리 잡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