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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Jun 16. 2018

168. 새하얗게, 새까맣게. 우유니

2017년 10월 30일~11월 3일, 여행 404~408일 차, 우유니

염증이 가득한 상태로 향했던 다음 여행지는 우유니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꿈의 여행지로 가득한 그곳. 사실 나는 여행을 계획할 때에만 해도 우유니에 대한 큰 감흥이 없던 사람이다. ‘남미 여행의 목적은 역시 파타고니아’라고 말하곤 했으니까. 그래서 우유니로 향하는 긴 이동이 그렇게도 지루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유니에서 보낸 그 5일은 내 남미 여행 중에서도 손꼽히게 좋은 순간으로 기억되었다. 그때의 기억을 다시 곱씹어 본다.


새하얗게 – 거울이 사라진 우유니

우유니를 잘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볼리비아에 거대한 소금사막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외국에선 소금 평원 (Salt Flat)으로 더 잘 알려진 우유니의 소금 사막은 해발 고도 3000m에 있는 소금 광산 지대이다. 이 곳이 유명한 이유는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하늘이 땅에 판박이로 비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 그렇게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 모습은 우기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인데, 내가 방문했던 시기는 아직 우기를 맞이하지 않던 때였다. 기대감이 없는 건 그런 이유도 한몫했을 것 같다. 새벽에 도착한 우유니에서 힘들게 숙소를 체크인했다. 몇몇 한국분들이 추천해준 싱글룸(공용숙소와 싱글룸의 가격이 차이가 없었다)에서 편안하게 쉰 뒤, 한국분들이 많이 이용하는 여행사를 이용해 투어를 예약했다. 유명한 세 개의 투어사가 있지만 사실 위치정보나 사진 찍는 방법들을 모두 공유하기 때문에 어떤 업체가 더 좋고 나쁘고를 언급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어쨌든 몇의 한국 분들과 함께 팀을 꾸려 투어를 출발하게 되었다.


코스의 첫 도착지는 기차 무덤이었다. 사실 현재도 볼리비아에서는 철도가 운행되고 있다. 다만 과거에 운행되던 구형 철도들을 정부가 이 넓디넓은 평야 한 곳에 버려두고 있는데 그곳을 사람들이 기차 무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목적지가 없는 외길 철도에 기차들이 서있는 모습을 보면 황량하기 그지없었으며, 쓰임을 다한 기차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 나도 동력을 잃고 저렇게 멈추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뭐, 곧바로는 ‘그 멈춰버린 기차가 사람들과 함께 사진으로 남아 가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쓰임이 없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어버린다. “버려짐이 주는 새로운 가치”랄까.

기차 무덤을 뒤로하고는 소금 호텔이 위치한 지점으로 이동했다. 소금 호텔이라고 해서 대단한 거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소금 평원 위에 지어진 소금으로 된 작은 건물일 분이다. 한 켠에는 다카르라 적혀있는 거대한 소금상이 있는데, 남미에서 펼쳐지는 다카르 랠리를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라고. 최근 남미에서 레이싱이 이루어지고 있어 코스가 이쪽을 향한다고! 다카르 랠리 시즌에는 정말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된다고 하니 신기하다. 한 편에는 그러한 각국 여행자들이 꽂고 간 국기들이 나부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금 호텔에서 점심을 해결하고는 원래 어떤 목적지에 가야 했는데, 우리와 함께 가던 투어 팀의 차량의 휠이 주행 중에 빠져 버리는 일이 발생해 버렸다! 뭔가 다카르 랠리의 모습을 라이브로 보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다행히 어떤 사고도, 부상자도 없었지만 그 투어 팀의 복구를 돕는다고 우리 드라이버가 가버리는 바람에 한 시간 이상을 길에서 쏟아부어버렸다. 덕분에 우리 투어 팀은 이유도 없이 그 시간을 날려야 했고 예정 목적지였던 물고기 섬을 지나쳐야 했다. 순박하게 미안하다며 연신 Sorry를 말하던 드라이버에게 뭐라고 더 따지기도 힘들어 그냥 말았다. 속상한 마음을 한 껏 안고 간 목적지는 바로 투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우유니 소금 평원의 물 찬 포인트였다. 우기에는 물이 있는 곳이 별로 없기에 우유니에 있는 모든 가이드들이 물 있는 곳을 찾아 서로 좌표를 공유한다고 했다. 덕분에 투어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기대하는 풍경을 어느 정도는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기 철엔 우유니 소금 평원 전체가 거대한 거울이 되지만 건기가 되면 그 커다란 거울이 사라지고 소금 평원에 약간의 거울이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함께 투어를 갔던 사람들은 마른자리에선 원근법을 활용한 재미있는 사진을 찍고, 물이 비치는 곳에서는 반영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늘이 그득 담긴 우유니를 다들 보고 싶었지만 작은 거울에 담긴 하늘을 보는 것으로 우리는 만족해야 해서 아쉬워하던 찰나,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노을이야 워낙 자주 보니 나 같은 여행 장게 큰 감흥이 없겠지 싶었는데, 눈이 뒤덮인 것 같은 소금 평원과 약간의 물, 그리고 붉은빛부터 보라색까지 다양한 색을 보여주며 저물어 가는 우유니에서의 노을은 또 다른 감동적인 한 순간이었다.



새까맣게 – 하늘이 사라진 우유니

보통은 우유니 소금 평원의 낮 사진들을 많이 보고 기대하고 온다. 그런데 재밌는 건 막상 와있는 사람들은 낮의 우유니보다 밤의 우유니를 보기 위해 모여든다는 것. 해가 저문 뒤 밤에 소금 평원을 찾아가면,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청정 구역인 데다가 물에 비치는 밤하늘이 위아래로 동시에 존재하니 꿈같은 시간이라고 밖엔 할 수 없기 때문. 하지만 밤의 소금 평원은 굉장히 춥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사리 가려고 하지는 않는 것도 사실이다. 어렵게 어렵게 중국인 친구들 2명과 나를 포함한 한국인 4명이 모여 함께 밤하늘 별을 보러 가는 투어에 참가할 수 있었다. 내가 갔을 때에는 사실 보름달로 달의 위상이 변화하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정확하게 맞춰야만 별을 볼 수 있었기에 다소 걱정이 많이 되었다. 게다가 삼각대가 없었던 나였던 터라 투어사에 준비된 삼각대를 요청해 놨었는데, 이 드라이버가 차에다 삼각대를 가져다 놓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상기된 상태로 투어를 출발해야 했기에 시작이 영 불안했다. 차로 또 한참을 달려 이동한 곳에서 우리는 사진 속에서나 보던 거울 같은 우유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낮 투어로 갔을 때에는 물이 있었어도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물에 비치는 사람이나 차 같은 것들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 밤에는 상대적으로 바람이 덜해 물에 반사되는 밤하늘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해도 달도 없는 밤하늘에는 한껏 우유를 머금은 은하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빛이 사라진 하늘에 자리 잡은 은하수와 수많은 별, 그리고 그 별들이 다시 땅에 비추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프리카에서도 그렇게 간절히 은하수를 보고 싶어 했건만, 막상 은하수를 만난 건 탄자니아에서 아주 연하게 볼 수 있던 은하수 한 번과 시나이 산에서 개고생 하다가 고개 들었을 때 문득 보게 된 짙은 은하수였다. 만월인 데다가 해/달이 없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사진을 몇 장 남겼다. 지금 돌이 켜보면 조금 노출을 과하게 줘서 은하수를 더 멋들어지게 찍었어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

별 투어는 한 번의 투어로 다 보기에 시간이 너무너무 부족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야간에, 그것도 별 사진을 촬영하려면 준비하는 데만 한참이 걸리고 촬영하는데만 20~30초, 그리고 사진이 촬영되고 나서 이미지를 저장하는 데만도 몇십 초가 들어가니 한 장에 거진 5분이 소요된다. 뭔가 구상했던 사진들을 다 찍지 못했던 나는 한 번 더 별 투어를 가기로 했다. 어제 함께 했던 한국인들과 함께! 이때가 핼러윈 즈음이라 다른 여행자들에게 핼러윈 랜턴도 빌려서 이런저런 재밌는 사진도 찍고 여유롭게 별을 더 구경했다. 두 번째로 출발했던 별 투어에서는 물이 차있는 소금 평원뿐 아니라 기차 무덤에도 갔다. 낮에 보는 기차 무덤과 밤에 보는 그곳의 풍경은 조금 색다르다. 멈춰있는 기차, 그리고 그 기차 위로 피어오르는 은하수를 보고 있노라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라는 책 제목이 괜시레 떠오른다. 몇 장의 사진을 찍다 문득 생각이 나 어딘가 적어둔 글귀도 남겼다.


기차 무덤의 기차들은 쓰임을 다해 버려진 곳이다.
그런데 밤에 다시 찾아온 그곳의 기차들은 멈춰 있지 않았다.
은하수를 내뿜으며 힘차게 달려가는 것 같았다.
아, 그래. 버려지는 것은 없구나. 보기에 따라, 하기에 따라, 다시 달려가고 있구나

새까맣던 우유니의 밤에서, 지금 나는 버려진 기차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은 버려져서 떠돌아다니고, 또 돌아가서도 한동안은 떠돌아다녀도 언젠간 힘차게 달리는 저 기차 같아질 날이 있을 거라고.

새하얀, 새까만 순간을 함께

우유니 여행에 대한 질문을 받다 보면 '어떤 여행사가 좋은가' '어떤 시간대가 좋은가' '어떤 가이드가 좋은가' 등의 다양한 질문을 받는다. 다들 우유니의 멋진 장관을 보러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질문이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어떤 풍경을 위한 시간이나 가이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함께하는 사람! 두세 번의 투어를 함께 했던 친구들이 너무너무 좋은 친구들이었다. 부산에서 와서 나랑은 거진 남매처럼 하하호호 지내며 영화도 보고 우유니에서의 유유자적한 시간들을 함께 보낸 유림이와 다해, 일본에서 온 아키, 서울에서 일 때려치우고 갑자기 날아온 스페인어 능력자 아영 누나, 칠레에서 근무 중인 중국 친구 아델리나... 함께 했던 사람들이 좋았어서 풍경이 어땠다는 것만큼이나 그때 그 사람들과 나눈 대화나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영 누나와는 서울에서, 유림이와 다해와는 다음 도시인 수크레에서, 아키는 언젠가 한국에서, 아델리나와는 칠레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보기로 약조했다. 함께 보낸 여러 시간들을 생각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던 우유니에서의 추억은 잊지 못할 것 같다 :-0 풍경만큼이나 사람들 때문에 인생 여행지가 된, 우유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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