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의 가사를 지키는 것에 대해
전구를 갈았다. 어느날 화장실이 캄캄해졌기 때문이다. 외출할 때도 신경쓰지 않고 켜놓았기에 어쩌면 예상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귀찮음은 만성인지라 간이 조명으로, 때로는 휴대폰 불빛으로 화장실을 비췄다. 하지만 도시형 생활주택의 깔끔한 화장실을 푸세식 똥간처럼 드나드는 건 예의가 아니다. 오늘 나는 전구를 갈았다.
달라진 건 없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것 뿐. 집안일이라는 게 그렇다. 전구를 갈고 빨래와 설거지를 하고 청소와 정리를 하는 일. 가사는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리는 일련의 과정이다. 하지만 그토록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고 반복해야 하며, 아무리 잘해도 티가 안나는 일이 또 있을까. 아마 나는 금세 전구를 갈았다는 것을 잊게 될 것이다. 제자리에 놓여있는 수건을 보며 빨래를 했다는 것을 상기하지 않을 것이다. 깨끗한 싱크대를 보며 설거지를 했다는 것도 까먹을 것이다.
원래 그런 상태가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 땅의 수많은 여자들에게 단순 반복 노동인 집안일을 당연하게 부과하고 있다. 또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임에도 여자의 일로 당연시 여긴다. 심지어 현재를 살아가는 뭇 젊은 여성들조차도. 가사 노동. 가사에는 댓가가 없다. 키스는 댓가가 아니다. 우리는 그 당연한 상태를 불편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여자 일은 티가 안나" 어머니가 언젠가 명절 때 내게 한 말씀이었다. 남녀의 일이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 그 굴레의 불행함을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 댓가 없는 노동은 함께 해야한다. 어느 누구도 태어나면서 가사의 의무를 지고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이 하는 게 당연하다. 달라질 건 없다.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는 것 뿐이다. 오늘 나는 전구를 갈았다. 앞으로도 내 몫의 가사가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