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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훈 Feb 24. 2020

인플루언서라 말하지 말아요

어떤 언어는 타자의 입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여행에 대한 키워드를 검색하다가 어떤 블로그를 우연히 보게 됐다. 유용한 게 더 있을까. 블로그를 둘러보니 ‘여행 인플루언서’라는 글귀가 프로필 란에 쓰여 있다. 그 옆 귀퉁이에는 문의를 바라는 이메일 주소가 있다. 이 블로거가 일을 의뢰받는 창구다. 게시물을 나중에 보기 위해 즐겨찾기를 해 두었고 창을 닫았다. 블로그는 유용했다. 나는 필요한 정보를 취했다. 그게 다 였다. 여행 인플루언서라는 이 분의 영향력은 느끼지 못했다. 약간의 기이함만을 느꼈을 뿐이다.

 업무 특성상 인플루언서를 접하게 될 일이 많지만 ‘저는 인플루언서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어떤 언어는 타자가 얘기해 줄 때에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어떤 사람이 영향력 있다는 것은 타자들 사이에서만 회자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영향력은 외부 지향성을 지니고 있기에 타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발휘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칭 인플루언서는 ‘인플루언서’라는 뜻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 하나를 빠뜨린 것이다.

 인플루언서는 정체성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되려 정체성을 수식하는 수식어, 본질과 합쳐진 함축어에 가깝다. 가령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영향력 있는 영화감독’을 줄여서 “맞아, 그 사람은 인플루언서지”라고 칭할 수 있다. 스스로를 지칭하며 똑똑이, 멋쟁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듯이 자칭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딘지 어색한 감정을 자아내게 한다. 누군가 인플루언서를 자칭한다면 껍데기가 아닌 정체가 무엇인지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인플루언서는 사람의 본질을 수식하는 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인플루언스, 즉 영향력은 무엇인가. 영향력의 형태는 말, 행동, 게시물, 이미지, 영상 등 이 사람이 생산한 결과물로 나타난다. 대체로 일관적인 콘셉트를 갖고 있을 때 영향력이 발휘되기 쉽다. 그 결과물 안에는 내용적으로는 영감을 주는 대단한 생각이거나 타고난 재능, 굉장한 비주얼, 빠르고 유용한 정보 혹은 후천적 노력 같이 다양한 것들이 담길 수 있다. 그것을 전시하는 기술 또한 세련되어야 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가장 창의적인 것일 수 있지만 신줏단지에 모셔둔다면 아무 소용없다. 매체에 맞는 방식으로 적당히 잘 전시되어야 하고, 소비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고차원적인 인플루언스는 그 사람의 삶의 태도가 앞선 세 가지를 일관되게 관통할 때 발휘된다.

 영향력의 양상은 진화하고 있다. 초창기 영향력은 인스타그램을 필두로 한 비주얼 위주의 것이다. 이미지를 단정히 잘 찍거나 인물의 비주얼이 강력하다. 그 옷 어디 거예요, 거기 어디예요, 질문이 쇄도한다. 그렇게 맛집, 패션, 뷰티 인플루언서들이 생겨난다. 물론 비주얼적인 영향력은 아직도 유효하다. 다음 세대는 유튜브를 필두로 유용한 정보 위주의 영향력이다. 정보를 기반으로 한 영향력은 한계가 명확하다. (나처럼) 본인에게 가치있는 정보만을 취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러 떠난다. 앞선 두 가지 영향력은 제품을 구매하거나 특정 전문 분야의 지식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진정한 영향력은 삶의 태도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 영향력은 인플루언서의 본질로부터 온다. 비주얼을 판매하거나 특별한 주제나 지식을 설파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사람의 삶의 태도와 지향점이 명료해 보이는 것이다. 그 사람의 성정에서 시작된 영향력은 신뢰도가 높다. 성정에서는 취향이 묻어난다. 그 취향을 보고 배우고 싶어 지는 게 가장 강한 영향력이다. 대부분의 신뢰할만한 멋진 사람들은 인플루언서를 자청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은 그랬다. 그저 자기 자신이기를 자청할 뿐이다.

 인플루언서 전성시대다. 수식어가 주인공으로 변했다. 이제 인플루언서의 정의는 협찬이나 돈을 받아서 콘텐츠 만드는 크리에이터를 퉁치는 말로 전락했다. 돈으로 팔로워를 구매하거나 광고를 돌리는 일은 이제 놀랍지 않다. 너도나도 MBC, KBS, SBS를 모두 출연’해보고’ 싶은 맛집이 된다. 여기저기서 인플루언서를 찾는다. 비즈니스 아래로 자칭 타칭 인플루언서들이 모여든다. 우리는 그 속에서 진짜 영향력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물론 진정성 있는 이들도 많겠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토끼’ 이름표를 달고 있다고 토끼가 되는 게 아니듯이, 인플루언서라는 이름표를 붙인다고 영향력이 생기지 않는다. 본질이 보이지 않는다면 공허한 외침이다. 진짜 영향력 있는 사람은 가만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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