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탁
버리지 못할 사연 있거든
여기 적어 놓고 가세요
꿈에도 만나지 못하는 얼굴 있거든
여기 그려 놓고 가세요
고단하고 지쳐 힘든 삶 있거든
여기 내려놓고 가세요
여기는
맨드라미 붉어진 마음
청보리밭 가로질러 머무는 고즈넉한
간이역
언제든 떠나고 돌아오는
이별도 하고 만나기도 하는
여기는
철길 한 자락 끌어안고
따뜻한 가슴 내밀며 포옹 내어 주는
간이역
적어 낼 수 없는 속 저린 사연이라면
지나치는 빈 역마다 조금씩 버리고 가세요
그려 낼 수 없는 아련한 얼굴이라면
조금만 물러 서서 눈물 씻고 돌아보세요
내려놓을 수 없는 역경살이라면
기적 소리 우렁우렁한 고동 채워 내세요
완행열차 별빛 소리 흔들며 들어오고
그리움 차창 열고 달빛 뿌리며 떠나가는
마지막 열차
역사 안 가득 나들락 붐비고 있다
정작 떠날 수 없어 눈 감아 버리는
간이역
마을 등 돌리고 텅 비어서
외등 하나 끌어안고 시름 보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