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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은 Oct 12. 2020

목격자를 찾습니다

토요일 늦은 밤이었다. 작업실에서 친구와 책상을 옮기다가 컴퓨터 본체가 내 엄지발가락 위로 떨어졌다. 순간 모든 사고가 멈췄다. 두발로 서있기가 갑자기 힘에 부쳐 아무 말도 못 하고 뒷걸음질만 쳤다. 놀란 친구가 사색이 돼 미안하다며 자책했다. 괜찮다고 친구를 안심시키고 친구가 다시 책상을 옮기기 시작할 때 뒤돌아 소리 없이 울었다.


걸을 때의 통증 탓에 평소보다 늦게 집에 도착했다. 그사이 발톱 절반이 검은색으로 물들고 나머지 네 발가락도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자정이 가까웠다. 식구들은 모두 잠들었고 달리 손쓸 방법이 없어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 몸과 마음은 축축 처지는데 눈꺼풀은 가벼웠다. 겨우 눈을 감았다가 그보다 오래 떠있기를 반복했다.


인기척을 느끼고 거실로 나갔을 땐 창밖이 훤했다. 나는 진통제를 핑계로 아빠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얼마나 무거운 게 내 발 위로 떨어졌는지 그래서 내가 지금 얼마나 아픈지 잠은 또 몇 시간이나 못 잤는지. 아빠는 나보다 더 크게 다친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이구, 문지방에 발가락을 살짝만 찧어도 아픈데 그 무거운 게 떨어졌으니 얼마나 아플까. 그 말을 더 오래 듣고 싶어 나는 아까보다 심하게 절뚝거렸다.


아빠는 진통제와 얼음팩을 건네주고 한동안 내 주위를 맴돌다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마저 보았다. 그제서야 나도 내 방으로 들어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내 발부터 이마까지 훑고 축축해진 침대보와 베갯잇을 말렸다. 이번에는 금세 잠이 들었다.


의사는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지만 상처가 아물려면 한두 달은 걸릴 거라고 했다. 그때까지 최대한 걸을 일을 줄이라고도 했다. 나는 그 발로 작업실에 갔다가 학교에 갔다가 인쇄소에 갔다. 중요한 행사가 코앞에 있었고 잘 마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용실에 갔다.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 미용실 예약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담당 미용사와 그의 보조 미용사만이 황량한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커트 머리를 하고 간 손님이 장발이 되어 온다며, 검은 머리카락이 관자놀이까지 자랐는데 뿌리 염색을 요구한다며,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너스레를 놓던 미용사가 오늘은 별말이 없었다.


나는 아빠처럼 위로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힘내시라고 곧 좋아질 거라고 다 잘 될 거라고 말해도 좋을지, 아니면 나는 코로나 때문에 실직했다고 말하는 게 좋을지 고민만 하다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미용실을 나왔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은 막무가내로 찾아온다. 그때마다 나는 어떤 게 좋은 위로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다. 위로란 무엇일까 하는 상념에 잠겼다가 깨어나면 어느새 다른 곳에 와 있었다.


<슬픔의 위로>를 쓴 메건 더바인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의 역할은 아름답고도 끔찍한 상황에 대한 증인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바로잡거나 해결하려는 인간적인 충동을 참아내는 것이다.” 위로를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이의 섣부른 말과 몸짓은 “마치 엄청난 고통을 짤막한 문장으로 축소하는 카드 문구와 같은 모멸감”으로 당사자를 위협할 뿐이다.


그녀 말대로 위로는 치어리더가 되는 일이 아니고 단지 목격자가 되는 일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런데 걱정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슬픔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우려 하지 말고 그저 그게 있음을 알아주고 보이는 대로 진술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발가락에 붕대를 감은 것을 보고 동생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 대신 아빠가 말했다. 컴퓨터가 떨어져서 피멍이 들고 아주 많이 아프다고, 나으려면 꽤 걸릴 거라고. 나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왔다. 한동안 주말 약속도 취소하고 산책도 나가지 않았다. 때가 되면 알아서 잘 하던 일들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대신 청소며 빨래며 집안일을 도맡았다. 아빠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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