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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은 Oct 17. 2020

토요일 오후의 구독자

친구와 함께 백현동에서 핫하다는 인테리어 소품샵에 갔다. 우주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디자인 제품들이 가득했다. 곳곳에 잘 알려진 LP 판이나 현대미술 작품 미니어처도 있었다. 감각 있는 디자이너의 작업실 같기도, 청담동에 있을 법한 LP 바 같기도 했다. 앤디 워홀을 닮은 중년의 사장님이 어디선가 나타나 제품들을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았는지 그는 우리에게 테이블과 얼그레이를 내주며 일단 앉으라고 했다.


그는 현대미술 지식이 엄청났다. 점점 그가 사장님이 아닌 선생님처럼 보였다. 그러나 친구는 그가 약간 부담스럽다고 했는데 그가 친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가 가진 긴장감이 재밌다고 했다. 친구를 대신해 내가 적절히 호응하고 질문했다.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한 시간 가까이 얘기를 듣고 반응했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나는 그가 보이는데 그는 내가 보이지 않는 걸까.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다.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기분 탓인가 싶었지만 나중엔 친구도 알아채고 되레 나를 걱정했다. 최근에 현대미술에 관심이 생겨 생각이 많아진 것뿐이라고 둘러댔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건 한 사람의 무관심의 영역에 갇힌 탓이었다.


내 말을 듣는 사람이 없고 내 행동을 보는 사람이 없으면 나는 무슨 힘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구독자가 0명인 유튜버의 마음이 이러할까. 인생은 인터넷 방송처럼 쉽게 접을 수도 없고 애초에 내 의지로 시작한 것도 아닌데. 과연 나라는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은 몇 명일까. 또 나는 몇 명의 채널을 구독하고 있는 걸까.


듣는 행위, 보는 행위는 자칫 아무 의미 없어 보이지만 누군가에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사회운동 단체들이나 현대미술 작품들이 종종 있는지조차 몰랐던 인물과 사건들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그 때문일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지금 회사의 대표는 나를 포함한 직원들에게 관심이 많다. 직원들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반응해준 덕분에 우리도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직원들끼리도 서로의 말을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관심 있고 내게 관심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구독하면서 서로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는 관계. 디자인학교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골동품 집인지 전당포인지 하여튼 그 음산한 곳을 나오면서 우리는 선물을 하나씩 갖게 됐다. 백현동 앤디 워홀의 말로는 빈티지하고 알록달록한 캔디 케이스와 모던하고 위트 있는 조미료 용기다. 그냥 사탕통이랑 소금통이라는 말이다. 집에 와서 볼 때마다 무관심의 영역이 떠올라 온몸이 긴장된다. 이게 과연 선물일까. 친구는 사장님에게 감사하다며 답례를 하자고 했다. 글쎄, 우울한 날씨의 토요일 오후에 구독자 두 명이 제 발로 찾아왔으니 감사해할 건 우리가 아니라 그 사장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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