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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혁 Jun 21. 2016

제주에서 일하면서 한 달 살기

디지털 노마드 인 제주

회사를 다닐 때는 재택근무를 부러워했었다. N사나 S사에서 자율 출근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집에서 일하면 능률이 200배는 오를 텐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집에서 일하는 생활을 하다 보면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다.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 그것도 앞이 딱 막혀 있는 아파트에 일하다 보면 답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디지털 노마드

트위터를 하다가 '디지털 노마드' 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노마드=유목민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앞에 붙은 디지털은 무슨 뜻인가? 자세한 내용은 http://digitalnomaddocumentary.com 이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마침 위의 사이트를 만드신 도유진님이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계셨고 공개된 동영상을 보고 디지털 노마드가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몇 달 동안은 일을 정말 많이 하려고 노력을 했다. 일을 안 하고 쉬고 있으면 내가 왠지 뒤쳐지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 하루빨리 안정적인 매출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적으로 많은 일을 하다 보면 양적인 측면에서는 내가 만들고 있는 앱에 많은 기능이 추가되고, 많은 기능이 추가된 만큼 사용자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고민을 많이 하고 생각을 깊게 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기능이 많진 않아도 필요한 기능이 있고 그것을 사용하기 쉬울 때 사용자들은 그제야 만족하고 입소문을 내주기 시작한다. (필요한 기능이 있더라도 한 번에 찾지 못한다면 바로 삭제해 버리겠지..)


이런 생각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고 다시 한번 디지털 노마드 생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씨름하고 있을게 아니라, 좀 더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고 생활을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장소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하였고, 첫 디지털 노마드 장소를 제주로 정하게 되었다. 제주는 매년 찾아갈 정도로 좋아하는 곳이기도 했고 제주로의 이주도 고민했던 적이 있기에 부담이 적었다.



한 달 살기 준비

한 달 동안 머무를 숙소를 찾기 시작해서야 알았지만, 제주는 지금 '한 달 살기' 열풍이 불고 있었다. 엄마와 아이가 잠깐 동안 자연 친화적인 생활을 하거나 잠시 동안 초등학교를 다니는 목적으로 머무르기도 하고 은퇴한 노부부가 장기 여행으로 와서 지낸다고 한다. 그만큼 한 달 살기를 제공하는 숙소는 정말 많지만 좋은 숙소는 연초에 1년 치가 모두 예약된다고 한다. 와이프와 내가 숙소를 구하기 시작한 것이 2월이었는데도 이미 좋은 숙소는 모두 예약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관광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생활을 해보려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숙소를 구하기가 더 힘들었다. 일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하는데 제주 시내에 있는 단기 임대 사무실은 가격의 부담으로 잡지 못하였고 그렇다고 관광객들로 시끄러울 수도 있는 카페를 전전하면서 생활하려니 효율적인 측면에서 많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일할 수 있는 4인용 테이블이 있는 숙소이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제주시에 있는 유일한(?) 코워킹 스페이스(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장소)인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갈 수 있는 거리에 숙소를 잡았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 차를 가져 갈까도 생각했었지만 세월호 사고 이후로는 제주로 차를 이동시키는 것이 많이 번거로워졌다. 1달 동안 렌트하는 비용과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렌터카를 예약하였다. 숙소에서 일하기 위한 푹씬한 방석을 챙기고 초보 디지털 노마드 티를 내면서 이것저것 많이도 챙겼다. 하지막 정작 필요했던 것은 챙기지 않았던 노트북 거치대와 무선공유기였다. 



여행하며 일하며 

숙소는 제주 시내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애월 하귀 바닷가 앞에 있었다. 2층짜리 가정집 이었는데 1층에는 숙소를 운영하는 주인 부부와 아이가 살고 있고 완전히 독립된 공간으로 2층과 옥상을 사용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제주에 도착하고 난 뒤에 1주일 정도는 날씨가 정말 좋아서 옥상에 자주 올라가서 바다와 한라산을 자주 보았다. 큰 듀얼 모니터를 사용하다가 작은 노트북을 사용하니 능률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금방 적응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딱딱한 의자 덕분에 일하면서 한 시간에 한 번씩은 꼭 일어나게 되었고 집에서 일할 때는 답답해서 거실로 나오면 딱 막힌 아파트가 있었는데 여기는 뻥 뚫린 바다와 하늘이 있어서 기분 전환이 빠르게 되었다. 하지만 1주일이 지나니 날씨는 점점 변화무쌍하게 바뀌었다. 제주도 미세먼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였고 바닷가 앞에 숙소가 있기 때문에 짙은 해무(안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숙소의 무선 인터넷도 이따금 접속이 안 되는 경우(또는 너무 속도가 느려서)가 잦아져서 일하는데 방해 요소가 되었다. 



우리의 방문 목적은 관광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해보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일하는 데 사용하였다. 간간히 아주 좋은 날씨 일 때는 조용한 카페를 찾아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일을 하였다. 집에서와 같은 시간 동안 일을 하였고 쉬는 날도 따로 정해 두었다. 그런데 막상 쉬는 날에 날씨가 안 좋은 경우가 있었기에 날씨가 정말 좋은 날에는 쉬는 날과 상관없이 일도 하고 관광도 하였다. (정말 화창한 날씨가 많이 없었다.) 가끔 쉬는 날에는 긴 걷기 코스가 있는 사려니 숲길이나 거문 오름을 관광하며 와이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만들고 있는 앱들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생활을 해 나갈지에 대해서 긴 코스를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쉬는 날을 주로 평일로 잡았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 인파에서 벗어 날 수 있었고 지금까지 부족했던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제주에서의 생활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 앞에서 사는 것에 대해 로망을 가지고 있다. 한 달 동안 바닷가 앞에서 살면서 바닷가 산책도 자주 하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뻥 뚫린 바다를 통해 기분 전환을 했지만, 한 달 동안 생활하면서 바닷가에 대한 나의 로망은 없어졌다. 제일 불편했던 점은 빨래가 안 마르는 것이었다. 제습기를 켜서 습도 수치를 보면 숫자는 안 나오고 HI라고 측정할 수 없다는 표시가 나온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데 눅눅함과 함께 나는 빨래 썩은 냄새(빨래가 잘 마르지 않아서 나는 냄새)는 바닷가 집에 대한 로망을 날려 버리기 충분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바닷가 바로 앞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3주 차가 되니 살짝 집이 그리워졌지만, 그리움도 잠시 아쉬움이 밀려왔다. 내가 여기서 생활하는 기간이 1주일밖에 남지 않다니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동안 했던 일들을 정리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마지막 2~3일은 관광객으로 돌아가서 그동안 못 가본 곳을 둘러보며 제주 생활을 마무리했다.



첫 디지털 노마드 후기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마음먹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걸리는 것은 비용 문제였다. 집에서 한 달 동안 생활한다면 생활비만 있으면 되겠지만 타지에서의 한 달은 비용적인 측면에서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딱딱한 의자와 느린 인터넷, 그리고 작은 모니터는 업무의 효율을 떨어뜨리기 충분한 요소이다. 


그러나 추가적인 주거비와 생활비 그리고 조금은 비효율적인 업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제주에서의 일하면서 한 달을 사는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새로운 환경과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었다. 특히 그냥 관광을 하려 여행을 했을 때와는 다른 기분 전환이 되었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하는데 집에서는 일을 많이 하려고 애를 썼다면 제주에서는 긴장을 풀고 좀 더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달 새로운 나라로 이동하는 생활을 하진 않더라도 가끔 여행하며 일하는 생활을 하러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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