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롤링핀 Sep 26. 2017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 일이 있었지.


처음으로 같이 여행을 갔던 대구.

너의 친구의 결혼식 겸 갔던 그곳에서 넌 친구의 부탁으로 축사를 준비했었고 너무나 많이 떨려했어.

그렇게 축사하며 손을 부들부들 떨던 너,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던 너.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대구에 왔으니 막창은 먹어봐야 한다며 맛집을 찾아갔어.

넌 알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대구라고 특별하게 맛있는 건 아니었더라.


막창을 먹고 카페가 많던 큰 호수로 갔어, 꽤나 유명한 곳이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거기서 사진을 참 많이 찍었던 것 같아, 너도 결혼식이라 예쁘게 차려입었고 나도 그랬으니까.

호수는 정말 컸고 분수도 있었고 사람도 참 많았지.

그 밤거리는 기억에 잊기 힘들 만큼 참 예뻤어.


다음은 야시장.

주말이라 그랬던 건지 휴가철이라 그랬던 건지 몰라도 역시나 사람이 정말 많았고 거기 음식도 그렇게 썩 맛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


야시장에서 버릇없이 굴었던 나에게 넌 토라져 있었어.

그곳을 나와 숙소로 들어갔을 때 네가 솔직히 말해주었지.

여행경비를 모두 가지고 있던 너에게 야시장에서 자꾸 돈 달라고 보채는 내 모습이 넌 맘에 들지 않았다고 했어.

이번 여행이 기분만 상하고 안 좋게 끝나버릴까 겁이 나서 내가 한참을 미안하다고 달래고 달랬던 것 같아.


숙소에서 같이 봤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개봉한 지는 꽤 된 영화지만 명작 영화라고 소문이 자자했기에 보긴 했는데 생각만큼 재밌지 않아서 약간 실망했던 것 같아.

치킨을 시켜서 한참 유행하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도 봤지.

우리 둘 다 한참 그 프로그램에 빠져있었을 때였잖아.


첫날은 생각보다 실망했던 것도 많았고 다툼도 있었지만 그저 같이 이렇게 오래 시간을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어.


다음 날 아침에 했던 대구 스탬프 투어.

정말 더운 여름이었지만 정말 고맙게도 넌 힘든 티 없이 나와 함께 그 더운 날 오랜 시간 동안 대구를 휘젓고 다녔어.


투어 막바지쯤 들렀던 카페, 건강차를 판다는 그 카페.

더운 날 이여서 그런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어.


그리고 대구시내에서 찾았던 마약 옥수수빵.

난 정말 맛있었는데 넌 어땠을까.

최근에 대구 사는 아는 형 통해 다시 먹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난 맛있더라.


백종원이 추천하던 떡볶이 집도 갔었는데 그게 정말 맛있었어, 잊기 힘들 만큼 정말.


그리고 우리가 공원에서 썼던 느린 편지.

그때는 한 여름이었고 크리스마스 전에 배송해준다고 해서 서로 비밀로 하고 글을 써 내려갔지.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 우리 사이는 끝났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그 편지는 오지 않더라.

넌 그 편지에 뭐라고 써내려 갔을까.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아득한 일이지만 궁금하다.


저녁쯤이 돼서 기차를 타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


너와의 첫 여행이고 내가 만났던 사람과의 첫 여행이라서 즐거웠고 행복했어.

여름이라 덥고 대구라서 더웠기 때문이었는지 당시에 능력 없던 나 자신이 너에게 많이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 흔한 차 하나 있었더라면 돈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네가 조금 덜 고생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아.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흐르고 차도, 돈도 생겼지만 너는 없으니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기도 하다.


지금 다시 되돌아보니 그런 일이 있었어.

처음엔 유일했지만 끝은 다를 거 없었던 우리가 있었고.

그때의 그랬던 때가 있었지.

작가의 이전글 특별한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