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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글이드 May 10. 2018

그럴듯한 구직

브런치 첫 글, 그리고 그럴듯한 시리즈의 시작점이 되었던 <그럴듯한 실패>를 쓴 지 딱 일 년이다. 발행 글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굵직한 경험을 아카이브 하며 얻은 점이 크다. 오랜만에 그럴듯한 시리즈를 다시 읽었다. 잠시 잊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돌이켜보니 크고 작은 경험은 또 다른 경험으로 연결되었다. 신기했다. 모든 상황에 그냥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일단 시작해야 또 새로운 시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자연과 작은 나

올초 말레이시아에서 인턴 생활을 끝마치고, 잠시 호주 여행을 다녀왔다. 벌써 4개월이 지났다. 그럼에도 생생한 장면 하나가 있다. 대자연에 둘러싸인 순간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과 숲, 그리고 바다에 압도되었다. 만약 여기서 내가 죽는다면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죽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허무감이 들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았다. 그러니까 앞으로 남들과 비교하며 아등바등 살지 말자고,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굳건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여전히 지키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성숙해진 준비생

귀국 후 구직 준비를 시작했다. 취준생의 생활은 낯설지 않았다. 작년 한 해 동안 한국, 미국, 말레이시아에서 계속 준비했기 때문이다. 준비생의 신분은 이질감이 없었다. 포커스가 국내 취업으로 좁혀졌을 뿐이다. 물론 취업 준비도 처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합격이라는 세 글자를 마주할 때면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이는 자괴감으로 이어졌다. 사람이니까. 나는 사람이라서. 머리로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마음이 본능적으로 앞섰다. 그러나 전처럼 그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준비도 지속되니 조금은 성숙해진 준비생이 되었다.


이번 취업을 준비하면서 전과 달라진 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입사 지원을 많이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동안 당연시하지 않았던 것이 있다. 바로 지원 공고다. 대체 무슨 근자감에서 주요 내용을 흘겨봤는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지원 공고를 신중하게 읽었다. 눈뜨고 다시 보니 정제된 글 안에서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내용을 바탕으로 당장의 좋은 곳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움이 되는 곳을 찾았다. 결이 맞는 곳을 찾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부터 알아야했다. 지원 공고를 통해 나에게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무래도 여러 경험을 했던 것이 적합성을 판단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곳이 필터링됐다. 마음만 앞섰던 지난번과 달리 준비 방향도 잘 그려졌다.


다른 하나는 자기 확신이다. 나에 대한 확신을 갖고 버티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스스로 확신이 없는데 타인은 어떻게 나를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때로는 자기 확신을 지키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1년 전 텍사스에 있던 나를 떠올렸다. 매일 밤 트랙을 달리며 마음을 정리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남산을 걸었다. 책도 많이 읽었다. 여전히 주위 사람들도 큰 힘이 되었다. 밥도 참 많이 얻어먹었다. 식사 한 끼에 배도 마음도 불렀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자고 늘 다짐한다.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버티는 것은 결국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에 대한 확신은 필수였다. 그래야만 주어진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사실 자기 확신은 취업 준비를 넘어 평상시에도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는 부분 같다.



그럴듯한 구직

지난 3개월 간의 취업 준비를 마쳤다. 이후 내용은 그럴듯한 시리즈 발행 주기(?)에 맞춰 3개월 뒤에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구직 과정에서도 예상치 못한 여러 일들이 있었다.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성장의 폭은 더 넓어지는 것 같다. 취업 준비는 우울감이 깃든 채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안에서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1년 전의 실패가 실패가 아니었던 것처럼 구직도 마찬가지다. 불합격과 합격을 떠나 구직이라는 행위를 통해 무언가를 배웠다. 그럴듯한 구직이다. 나는 내가 많다. 그래서 내가 더 궁금하다. 끝없이 내가 나를 알아가야 한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여전히 나는 부족하다. 그러나 처음 브런치를 썼던 날처럼 오늘도 부족함을 조금씩 채워가며 그럴듯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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