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순간을 즐겁게 만들기
최근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연 초에 세 달에 걸쳐 집필한 글이 흥행에 처참히 실패했다. 내 손에 남겨진 건 약간의 긍정적인 평가와 시급에 한참 못 미치는 얼마간의 돈 뿐이었다. 동시에 새롭게 집필해서 출판사에 투고한 글 몇 개가 연이어 출간을 거절 당했다. 이건 그래도 될 줄 알았는데, 기존에 작업했던 출판사 마저 고개를 내저었다. 담당자의 차가운 반응에 속이 상하던 차에 몇 가지 개인적인 불운이 겹치기까지 했다.
어떻게든 내 작품이 잘 되지 않았던 이유를 찾고자 익명의 작가들이 모인 공간에 찾아가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물어보니 그들이 답했다. '네 작품을 돌아봐라. 잘쓰면 어떻게든 다 되게 되어 있다.' 결국 내 글이 문제였을 거라는 말에 반항심이 일었다. 너희가 뭘 알아. 내가 쓴 글을 읽어 본 적도 없잖아. 배우자에게 담당자의 태도나 내 작품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홍보해주지 않은 마케팅팀을 향한 서운함을 내비쳤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못파는 작가가 서러운 건 어쩔 수 없다.' 남보다 못한 소리를 지껄이는 그는 소위 말하는 쌉T였다.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고, 힘든 일이 있어도 금새 기운을 차리는 나지만 이정도로 실패가 겹치니 의기소침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멀쩡하게 일상을 살다가도 내가 겪은 실패가 떠오르면 날카로운 것에 가슴을 찔린 듯 몸이 웅크러들고 찔끔 눈물이 났다. 요 몇 주간 내 모닝 페이지에는 '그래도 힘내자'라는 글귀가 빼곡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차를 마시고 일기를 쓰고 헬스장에서 쇠질을 하고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곤 했지만 이렇게 산더미 같은 스트레스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멍하니 서 있다가 너무 오랜 시간 차를 우려버리기 일쑤였고, 쇠질하다가 자세가 흐트러졌으며, 공이 자꾸만 빗맞았다. 그나마 멀쩡하게 할 수 있는 건 일기쓰기 정도였다.
나는 정말로, 정말로 재능이 없나? 7년 넘게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르며 글을 써왔고 벌써 세상에 내 이름으로 내놓은 글의 수가 스무 종이 넘는데 어떻게 매번 이렇게 힘겨울 수가 있나. 어떻게 나아지는 것이 없나. 나와 함께 글을 쓰던 작가들은 저만치 달려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번듯한 종이책을 내서 서점 매대에 자신의 글을 전시했고, 누군가는 내가 지난 7년간 번 것의 수 배, 수십 배가 넘는 돈을 벌고, 누군가에게는 그의 글을 열렬히 사랑하며 기다려주는 독자가 있는데 나만, 오로지 나만 맨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순간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내 생각이 비약임을 알고 있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였다. 지금 내가 머무는 자리는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는 자리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동생인 A는 나를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단 한 순간이라도 언니처럼 써서 언니처럼 팔아보고 언니처럼 대우 받아봤으면 좋겠어.' 내게는 한 없이 부족해보이는 내 자리도 누군가에게는 닿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별빛 같은 자리였다.
알면서도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나는 어차피 우주의 먼지일 뿐, 좋아서 쓴 글이었고 그걸로 약간이나마 돈을 벌었으니 되었지. 출판사가 이번 글을 좋아하지 않으면 또 새 글을 쓰면 되는 것 아니겠나. 여기서 그만 둘 것도 아닌데 이럴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읽고 쓰는 게 낫지 않겠나.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한 없이 어두운 수렁에 빠진 것처럼 잠을 잤고, 그러면서도 수도 없이 깨어났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건 진짜로, 정말로,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출판사의 투고가 거절 당한 순간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야했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내게 말한 것처럼 내가 정말 글을 잘 쓰지 못했고, 어쩌면 이보다 더 잘 쓸 능력이 없더라도 나는 계속 하고 싶었다. 미련퉁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른 일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요새는 AI 덕에 코딩이 쉽다던데 나도 한 번 해볼까 싶어서 도전했다가 홧병 나기 직전에 때려치웠다. 술자리에서 코딩과 글쓰기는 상당히 유사한 활동이라고 말하던 L작가님의 머리통에 박치기를 날려주고 싶었다. 왕년에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 유튜브나 릴스를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나는 편집에는 재주가 있어도 영상을 기획하는 재주는 영 없었다. SNS를 키우기에는 내가 너무 아웃사이더였다. 취직이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이상 집에서 글이나 쓸 팔자인 모양이었다. 그래, 그렇지. 토끼가 고양이를 아무리 부러워 해봐야 고양이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 나는 토끼처럼 풀이나 뜯어 먹을 팔자인 것 같았다.
결국 천지가 개벽해서 내 글쓰기 실력이 일취월장하거나 출판사와 마케팅 담당자 등등이 최면에 걸려서 갑자기 나만을 사랑하게 되지 않는 이상,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내내 실패와 함께일 수 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실패했다고 혼자 궁상 맞게 깡소주를 들이켜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실컷 퍼마시고 숙취로 괴로워하는 건 스무 살 때 졸업했으니까. 낡아버린 육신도 문제였다. 어릴 때처럼 마시기에는 내 췌장과 간이 그 때처럼 건강하지 않았다. 근손실과 체지방 증가가 두렵기도 했다. 너무 많은 돈을 쓰거나 너무 많은 시간을 쓸 수 없는 것도 한 몫했다. 내게는 먹이고 돌봐야 할 식구가 여럿이었다.
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겪을 수 밖에 없는 실패이고 남들처럼 실컷 분위기 잡으며 울적하기도 어렵다면 아예 즐겁게 만들어버려야겠다. 나는 실패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실패할 때마다 손톱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장식 파츠를 붙였다.
후보가 여럿 있었다. 실패할 때마다 귀여운 양말 사기, 스티커 모으기, 도장 모아서 나 자신에게 선물하기, 꽃 한 송이 심기 같은 아이디어들을 떠올렸지만 대부분 즉각적이지 않거나 돈이 많이 들었다. 수십 번 실패하면 양말이 수십 켤레가 될 테고 도장은 찍다가 종이를 잃어버릴 게 분명했다!
반면 장식 파츠는 실패를 인지하는 순간 간편하게 붙일 수 있었고 심지어 저렴했다. 실패할 때마다 손끝에 반짝이는 훈장이 늘었다.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반짝이는 모양이 꽤 마음에 들었다. 어떤 파츠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손톱에서 떨어져 나갔고, 어떤 파츠는 좀 더 끈질기게 달라붙는다는 점도 좋았다. 파츠가 슬픔의 기억과 함께 하는 것 같았다. 낭만적이었다. 내 번쩍이는 파츠를 발견한 사람들에게 최근 내가 겪은 상처가 이만큼이나 된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실패를 아주 기꺼워 하거나 실패하기를 기다리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실패를 조금쯤 즐거운 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숨막히게 나를 끌어 당기는 물 속에서 한 번쯤 숨 쉴 구멍을 찾아낸 셈이었다. 이보다 더 거센 실패가 오면, 자그마한 숨 쉴 구멍 정도로는 견딜 수 없는 상처가 오면 그땐 또 그때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오늘의 상처는 이걸로 되었다. 이제 다시 힘내서 글을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