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
살기 위해 사랑하는 이들
오랜만에 시사회 초대받아서 다녀왔다. 올해 들어서 처음 간 용산 CGV다. 올해 갔던 극장들이 어디였는지 떠올려보고, 올해 본 영화들이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생각해보았다. 봤던 작품들 대부분 탈출이나 생존에 대한 것이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영화들.
그런데 오늘 볼 영화는 포스터나 제목만 봐도 서정적인 게 느껴진다. 치정극 정도로 생각하고 상영관에 들어간다.
보고 나서 느낀다. 사랑에 대해 말하는 이 영화도 결국 생존에 대한 영화라고. 살기 위해 사랑을 하는 이의 이야기라고.
올해의 오프닝
<킬링 오브 투 러버스>를 보기 전날에 <007 노 타임 투 다이>를 보았다. 007 시리즈 중 최고의 오프닝이 아닐까 싶을 만큼 멋진 오프닝이었다.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완전 다른 질감의 영화이기 때문에 과연 어떤 오프닝을 보여줄까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킬링 오브 투 러버스>의 오프닝은 올해의 오프닝이라고 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데이빗은 총을 들고 침실에 서 있다. 그의 앞에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남녀가 있다. 총으로 차례로 남자와 여자를 번갈아가며 겨눈다. 관객들은 데이빗에 대해 아는 게 없지만, 데이빗이 사랑 때문에 총을 들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사랑 때문에 누군가 죽기를 바랐던 적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말.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데이빗은 밖으로 나온다.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데이빗은 눈이 덮인 유타주의 시골 마을을 걷는다. 멀리 설산이 보인다. 눈 덮인 산 위로 오를 기세로, 데이빗은 계속해서 걷는다. 엔딩에 나올 법한 장면으로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시작한다.
감정을 요약 가능한가요
데이빗과 니키는 네 명의 남매를 함께 기르는 부부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갈등으로 인해 떨어져 지내고 있다. 이들은 떨어져 지내는 동안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도 괜찮다고 합의를 한다. 이 합의가 정말 서로의 마음을 위한 것인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는 알 수 없다.
니키는 직장 동료인 데렉과 만나고 있다. 데이빗은 여전히 니키를 바라보며 재결합을 바라고 있다. 사춘기를 맞은 첫째 딸은 데이빗에게 왜 이렇게 지내냐 하는지 묻는다. 데이빗은 이러한 모든 상황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표면적인 줄거리는 위와 같지만, 사실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감정으로 진행되는 작품이다. 러닝타임 내내 움직이는 감정들을 요약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감정을 요약해서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이 유발하는 이명 현상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스릴러에 가까운 전개를 보여준다. 오프닝부터 마지막까지 데이빗은 계속해서 총을 지니고 있다. 특히나 사운드의 사용이 <킬링 오브 투 러버스>를 스릴러로 보이게 만든다.
관객들은 계속해서 데이빗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문을 닫고, 총을 장전하는 등의 사운드를 반복적으로 듣는다. 아마도 데이빗이 이명 현상처럼 겪게 되는 소리. 혹은 데이빗의 무의식을 채우는 소리.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전적으로 데이빗의 영화다. 관객은 데이빗의 입장으로 영화를 체험한다. 어떤 마음으로 니키와 떨어지게 되었는지, 니키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상황에 대해서 영화는 결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오로지 데이빗이 보여주는 감정을 통해서만 추측할 뿐이다. 데이빗의 상황보다 감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품이기에, 실생활에서든 영화에서든 상황보다 감정에 집중하는 건 오랜만에 경험하는 일이다.
넓은 세상에서 단 하나의 사랑에 집중하는 일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마치 서부극을 보는 심정으로 보게 된다. 배경이 되는 설산과 끝이 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길이 그 이유다. 총성이 들리지는 않고, 말 대신 차를 타지만 데이빗은 마치 복수를 꿈꾸는 서부극 주인공처럼 계속해서 총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간다.
데이빗은 어디든 갈 수 있다. 그가 밟고 있는 넓은 땅덩어리처럼, 그가 사랑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지 또한 무수히 많다. 총을 꺼낼 수도 있고, 니키와 완전한 이별을 할 수도 있고, 멀리 도망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많은 길 안에서도 그는 니키만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그게 사랑의 속성일 테니까. 수많은 사람들 중에 단 한 명의 사람과 사랑을 하는 것. 그 한 사람이 나의 세상이 되는 것.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킬링 오브 투 러버스>가 보여준 감정과 상황이 내게 묻는다. 나라면 사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