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LA 공항 도착까지 1시간 30분 남짓 남았을 때였던가, 맛있게 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안대를 낀 채로 잠시 눈을 붙이려는데 이름 모를 불안감이 밀물처럼 나를 덮쳤다. 익숙하던 곳으로부터 이렇게나 멀리 떠나왔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이 난 것이다. 잘 쌓아오던 커리어와 안정된 삶을 전부 뒤로하고 지금 여기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아니 이게 정말 잘하는 짓이기는 한가? 나는 32살인데...?
아이러니하게도 32살이기 때문에 비행기 자리에 앉아 청승맞게 우는 것이 새삼 창피하다. 소라게처럼 안대 뒤에서 눈물을 참고 참다가 결국 뛰쳐 들어간 화장실에서 나는 주저앉아 32개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불안함과 외로움과 막막함 속에서 공항에서 헤어진 가족들의 얼굴이 영상처럼 스쳐 지나간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내내 말을 아끼다가 내가 탑승동으로 들어가기 직전 조용히 눈시울이 발개진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여기서 같이 울어버린다면 아빠는 분명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속상해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씩씩한 척 굴겠다며 곧장 탑승구로 신나게 뛰어들어갔고 이내 후회했다. 한 번만 더 안아주고 올 걸.
몇 분을 그렇게 앉아있었을까, 허무하게도 슬픈 감정은 결국 지나가더라. 머쓱하게 일어나 손을 씻고 눈을 씻었더니 거울 속 내가 보였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멀뚱히 서있는 내가 안쓰럽고 또 대견했다. 그래 여기까지 와서 뭐 어쩌겠어, 해보자, 할 수 있을 거다, 못 할 게 뭐가 있어, 실패하더라도 뭐 어때, 이렇게 예쁜데 어디 가서 먹고 살 방도는 찾을 수 있겠지(?). 생각의 꼬리가 여기까지 길어지니 오히려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난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자주 부서지고 주저앉아 울 것이며, 이렇게 나 스스로를 예뻐해 주면서 다시 일어나야 할까.
27F 좌석으로 돌아와 남은 시간을 무얼 할지 고민하며 비행기 모니터를 뒤지다 처음 보는 시즌의 비긴어게인을 발견했다. 1화를 재생하자 첫 곡으로 임재범이 비상이 나온다. 별로 좋아하던 가수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3분이 넘는 시간 동안 노래를 무작정 들었다.
https://youtu.be/lA2yNzojHEk?si=9umcicgrMw1E3B3B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 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이제 세상에 나갈 수 있다니! 이제 청승은 그만 떨고 어깨 펴고 힘내라고 얘기해 주는 듯한 가사를 보며, 마치 짠 것 같은 우연에 웃음이 나온다. 그래, 나도 더 넓은 세상으로 간다. 실컷 부딪히고 주저 않겠지만, 결국 세상은 마치 짠 것처럼 내 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