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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항의하는 방법

감정적 변곡점을 지나며

by 썸머

사람의 타고난 성정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에 깊게 공감한다. 내가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오만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어느 시점에 나를 변화시키는 몇 번의 변곡점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첫 번째 순간은 석사를 시작한 2018년이었다. 활발하지만 기꺼이 나서지는 않았고, 궁금하지만 구태여 지적하지 않았던 나는 그 2년을 지나는 동안 많이도 변했다. 설명하고 지적받고 설득하고 알아내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오히려 '공부'라는 것을 제대로 시작한 이후에서야, 나는 책상에만 앉아서 하는 그간의 '공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졸업 후 연구원에서 일한 6년 동안 나는 새로운 공부법을 요긴하게도 써먹었다. 그러나 어느 날인가, 일로써 인연을 맺은 어떤 교수님께서 하루라도 빨리 더 공부하러 가라고 나를 재촉했다. 당신은 앞으로 더 많이 일하고 또 말하고 싶을 텐데, 아는 것은 금방 동나기 마련이라고.


그리고 2025년 봄, 또 한 번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음을 강하게 체감한다. 나는 잘 울지 않는 사람이다. 말 그대로 웬만한 일에는 애초에 눈물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조금 슬픈 감정이 들더라도,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몰라 당황스러운 나머지 울음을 참곤 했다. 지난 열흘짜리 봄 방학 동안 폭싹 속았수다를 하루에 두 편씩 보았다. 슬프고 감동적인 순간은 많았지만 10화까지는 여느 때처럼 언제 울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유학 간 '금명'과 '관식'에 나와 아빠를 이입해버린 순간 단단하다고 믿었던 마음의 둑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니 알았다. 지금까지 울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은 내가 구태여 울지 않아도 누군가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슬프게도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나조차도 나의 마음을 모른다. 그 사실이 나를 병들게 하려는 것 같아서 요즘은 슬플 때면 억지로라도 울어보려고 한다. 나 지금 힘들고 지친다고 나한테 항의하려고.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역만리 타국에서 울보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어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다. 서른둘이라는 나이가 머쓱한 나머지 이런저런 사족을 덧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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