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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맘 Nov 23. 2024

아가는 누구보다 눈치가 빠르구나

26개월: 내 마음의 먹구름이 아가의 세상에도 드리우지 않기를

요새 나는 엄마로서도, 사회인으로서도 아주 엉망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밖에서 보면 뭐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다고 평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내가 느끼는 내 삶은 아주 엉망진창이다.


제법 연차가 차올랐음에도 회사에서는 연일 실수에 꾸지람을 듣는 통에 하루의 10시간을 갇혀있는 회사가 지옥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겨우 퇴근하고 돌아온 집에서는 여전히 낮 동안의 실수들이 떠올라 마음을 옭아매고, 그 때문에 아기가 보는 집에서의 엄마는 언제나 무기력 그 자체이다.


아기의 세상에는 어느새 엄마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분을 차지하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의 세상에서 엄마가 차지하는 지분이 얼마나 클지 잘 알고 있는 나는 그저 항상 미안하다. 내 세상이 흐리면, 아가의 세상도 어느새 흐려진다. 아가는 또 얼마나 눈치가 빠른지, 최대한 밝은 얼굴로 이야기하려고 해도 어느새 그 뒤에 숨은 그림자를 알아채고 내 얼굴을 걱정스레 쓰다듬어 준다. 내 세상의 먹구름이 아가의 세상에까지는 옮겨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가와 엄마의 관계는 그것마저 쉽지가 않다.


엄마가 아가를 사랑하는 것만큼, 아가도 엄마를 사랑하는게 분명하다. 최대한 티내고 싶지 않아서 애써 밝은척을 하는데도 유일하게 그 뒤에 꾹 참고 있는 눈물을 알아채주는 건 내 아가뿐이다. 엄마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주면서 "괜찮아, 여울이가 있잖아. 엄마 쉬어." 이렇게 말해주는데 그 어떤 엄마가 울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아가만큼 내 눈을 가만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세상에 또 없겠다 싶다.


육아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에도 그걸 달래주었던건 결국 아가의 손길이었다. 아가때문에 울고 웃는 날이 반복되는 지금, 그래도 유일하게 잘했다 싶은 건 지금의 아기를 만난 거다. 아직 아기를 가질 용기가 없었던 엄마에게 먼저 손 내밀고 다가와준 아가에게 고맙고, 지금도 부모가 될 자신이 부족한 엄마를 먼저 토닥여주며 위로해주는 아가가 너무나 소중하다.


고마운 아가를 위해서 엄마도 덜 부끄러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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