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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de Dec 26. 2021

휴무가 필요하다.

100일 정도가 지났다면,

모든 노동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말해 무얼 하겠나 싶을 정도로 당연히 육아는 노동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그렇고, 또 큰 기업에 비해 비해 영세한 기업체가 더 그러하듯, 처음 해보는 큰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담당자가 된다면 업무시간이나 복지나 사정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일을 무사히 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면 무리를 해버리게 된다. 번아웃을 느낀 후에나 내가 지금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을 죽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일을 장기적으로 잘하기 위해서는 갑자기 몸을 못쓰게 될 정도로 망가뜨리며 내달려서는 안 된다. 눈앞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응급 상황이 지나갔다면 (그러니까, 앞서 이야기한 출산 후 약 100일이 지나갔다면) 잠깐 정신을 좀 차려보자.(찰싹찰싹) 우리 모두 일의 효율은 적당한 휴식과 회복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을 하는 사람이 업무를 일정한 퀄리티로 지속하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휴무가 필요하다.


육아에도 휴무가 필요하다.

노동의 피로로 지쳐서 정신을 잃고 기절하는 것 말고, 맨 정신으로 업무에서 멀어져 객관화 할 수 있는 휴무.


나의 경우는 200일을 좀 넘겼을까? 호르몬 때문인지, 지속되는 과로와 수면부족 때문인지, 아이를 살피기 위한 예민함 때문인지, 피로는 우울과 번아웃으로 진화하여 나를 공격해왔다. 그 때야 깨달았다. 나에겐 휴무가 없었다.... 어쩐지 되게 힘들더라ㅎㅎ;;


평일 동안은 직장을 나가는 남편과 드디어 셋이서 보내는 주말도 소중했지만, 그 시간을 나누어 매주 토요일 오전 나절은 휴무로 정했다. 처음엔 이 시간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도 알지 못했다. '자부 타임'이라는 용어가 있던데, 양육자에게 필수적인 그 시간을 마치 비정상적인 탈출처럼 표현하는 그런 용어는 사용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도 아이를 돌보지 않는 시간도 모두 부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이상한 말이다.


그 정도의 휴식으로 충분하냐고 한다면 당연히 충분하진 않다. 하지만 다시 해도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하려면 아이가 없어야 되는데, 이 아이가 없는 것은 싫지 않은가.

(어차피 진짜 쉬려면 죽는 거밖에 없댔어...)


나는 평소에 좋아하던 주차가 불편한  카페에 가서 욕심을 부려 커피와 스콘 2개를 먹었고, 크게 생각하지 않고 가장 가까운 유료 주차공간에 체류한 시간만큼 주차비를 결제했고, 여유가 충만한  숨을 쉬었고...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아이가 그리웠다.  여유로운 시간 동안 무얼 할까 얼마간은 그냥 낭비하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육아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소중하고, 아이와의 시간이 특별했지만 차분히 기록하고 곱씹을 시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육아가 메인 업무인 직장인에게 그림일기는 정말 즐거운 딴짓이 되어주었다.


휴무라면서 아이와의 일상을 떠올리며 그리고 있는 것도 다소 웃기고, 끝나가는 이 사치스러운 시간은 너무 짧고, 또 200일이 지났는데도 어렵고 잘 모르겠는 아이 돌봄의 현장으로 다시 투입되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어쨌든 쉼은 후우~그래 한 번 또 해보지 뭐~라는 정도의 힘은 주었다.


양육자가 아이를 그리워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휴무는 뭐랄까... 사랑 증폭기, 앰프 같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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