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16 작성
믿고 보는 A24라는 말이 있습니다. A24는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배급하는 배급사로서 대형 블록버스터 스튜디오의 작품 이외에 어딘가에서 하입(hype)을 모으는 작품들의 배급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미드소마 같은 작품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미나리까지 최근 인디(라고 하기엔 규모가 큰지도 모르겠네요) 미디어 열풍을 몰고 있는 배급사 입니다.
Beef(성난 사람들)의 예고편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매싱 펌킨스의 Today의 기타리프(한국 사람들에게는 일본 힙합 그룹 드래곤 애쉬가 샘플링한 Grateful Days로 유명한)로 시작합니다. 앨리 웡과 스티븐 연이 나오고 느닷없이 자동차 추격 액션이 펼쳐집니다. 뭔가 화에 가득차 있는 거 같은 1-2분 남짓한 시간동안 도대체 이게 어떤 것인지, 이를 테명 이게 영화인지 TV시리즈인지 모호해 집니다. A24라는 배급사 안내를 보고 나면 그 의문점이 기대로 바뀌게 됩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일어날 거 같은 기대감을요. 그 순간 Beef에 대한 모든 검색을 멈추고 공개 날짜만을 기억안 채 기다리게 됩니다.
Beef(성난 사람들)는 이민 2세의 아시아인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시리즈입니다. 자살을 시도하려고 샀던 캠핑 그릴을 반품하러 포스터스라는 마트에 갔던 대니는 영수증을 찾지 못해 그 마저도 반품하지 못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후진을 하던 중 흰색 SUV와 시비가 붙게 되고 분노의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흰색 SUV를 운전하던 에이미는 자신의 사업을 포스터스에 ㅂ매각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지만, 이렇다할 성과가 없이 좌절하고 분노한 상태입니다. 주자창에서의 이런 시비는 결국 그런 추격전이 왜 일어나는 지에 대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키게 됩니다.
이 이후로는 그 둘 사이의 충돌로 시작된 아시아계 이민 2세대의 사회적인 속내가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살을 붙여 나가기 시작합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의 캐릭터와 이야기들의 얽힘이 놀랄만큼 두텁게 펼쳐집니다. 특히, 저와 같은 세대의 미국 이민 2세대들의 갈등같은 것을 평행적 시각에서 바라볼때의 느낌도 새로웠습니다.
한 시즌의 이야기는 정말 그 방향을 알 수 없이 폭풍우처럼 펼쳐 집니다. 이 안에서는 미국 사회에서 곪아있던 아시아계 사람들의 갈등과 응어리 같은것이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터질듯한 긴장감을 타고 어느덧 분노로 터져나오게 되면서 이야기는 겉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내용을 스포일러 하지 않으려는게 아니라, 그 만큼 이 드라마는 계속해서 보는 것 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그 충격의 도가니에 관객들을 남겨놓고 조용히 언제올지 모를 다음 시즌을 기다리게끔 합니다.
스티븐연, 앨리 웡, 애슐리박 같은 넷플릭스나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아시아계 스타들이 나옵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여러 방면에서 활동중인 데이빗 최의 열연도 돋보입니다. 주요 역할을 아시아인으로 채우며 매우 강렬한 극을 이끌어 나가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합니다. 미국 사회에 발생한 아시아계 후손들의 한의 정서 같은것은 먼 타국의 한국의 동세대들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며, 어떻게 도움의 손길을 내 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그러햔 한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한 것 같습니다.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90-00년대의 얼터너티브/그런지 음악들을 듣는 것 또한 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입니다. Hoobastank의 Reason이나 대니가 극중에서 직접 부르면서 원곡으로 절묘하게 이어지는 Incubus의 Drive같은 것을 듣게 되면, 극의 등장인물들과 엇비슷한 세대의 관객들은 추억인지 모를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니까요.
A24에서 또 한번 걸작을 내놓았습니다. 캐릭터, 이야기, 화면, 음악 등 정말 어느 하나 허투루 준비하지 않았고, 미국에서의 아시안의 이야기에 새로운 단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구독중이라면 정말 기꺼이 볼만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