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ktail Blues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오래전부터 백 년쯤 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 그 생각이 들었던 때, 하늘이 시리도록 파랬는지 찢어진 목화솜 같은 구름 사이로 실 같은 바람이 드나들었는지 아득한 기억이지만 내 안의 내가 말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 이렇게나 오래 살았는데도 아직 더 살아야 하다니, 너무 무거워, 시간이라는 거. 밀대로 민 밀가루 반죽 위에 밀가루를 뿌리고 접어 또 밀고, 밀가루를 뿌리고 접어 또 밀기를 반복하고 반복해서 몇 번이나 접고 밀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의 '겹'이 쌓인 기분이었다. 그때로부터 십몇 년이 지났지만 시간은 여전히 무겁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루는 툭하면 한여름 엿가락마냥 늘어지기만 하고, 늘어진 시간을 주섬주섬 주워 담다 보면 양손은 온통 끈적거리고, 까만 밤에 기대 끈적이는 손을 소주로 씻곤 했다. 기댈 곳이라고는 밤과 술, 적당히 가려주고 덮어주는 밤과 쌉싸름하게 심장을 데워주는 술. 밤이니 술이니 하는 것은 그러나 핑계일 뿐, 기댈 곳은 나뿐이어서 또 나를 다그치고 몰아세우다 투정 부리며 을러댔다. 그러니 나는 겁을 집어 먹고, 겁(劫) 안을 맴돌며 밀가루 반죽 위에 밀가루를 뿌리고 접어 밀고, 밀가루를 뿌리고 접어 또 밀기를 반복할 수밖에. 그렇게 겹 사이사이에 어둑시니 같은 감정들을 뿌리고 접어 민다. 어둑어둑한 것들이 겹 속에 끼어 눌려 화석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