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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Sep 24. 2024

유린기와 소주를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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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이라면 그래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 생각했다. 참된 것은 둘째 치고라도 정성은, 과하면 과했지 모자라진 않았다. 그러나 성실히 사는 것과 성실히 쓰는 것은 다르다. 성실히 살았으나 성실히 쓰지 못했다. 수백, 수천, 수만의 핑계는 '밥상 차리는 일'로 수렴되고 끝내 욕 한 마디를 뱉어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성실하면서도 불성실하게 지내던 중 돈 벌어다 밥상 차리는 오른손만큼이나 글 쓰는 왼손도 제법 성실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공모에 내려고, 굳이 내보려고.

주변에 쓴 글을 보이면 주류(主流)가 아니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쓸 때도, 퇴고할 때도 주류(酒類)를 조졌다. 안타깝게도 내 취향은, 내 지향은 고전이다. 아예 조선이나 고려나 혹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으면 차라리 힙했을 텐데 어중간하게 1930~70년대라는 고전이다. 고전은 유행을 타지 않으니까, 혹은 유행은 돌고 돌게 마련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으나 유행을 안 타기는 개뿔. 소주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사카린 빠지고 설탕도 빠지고 도수도 낮아졌다. 유행이 돌고 돌기는 개뿔. 모르긴 몰라도 안(못) 돌아오는 것이 더 많다. 하물며 사랑도 아닌 것이 때맞춰 돌아오는 것도 희한한 일일 게다. 아무튼,

술 마시고 혹은 술 끼얹어가며 유명 작가가 썼다는 산문집이 드문드문 눈에 띄면서 그보다 훨씬 먼저 쓰기 시작한 내 글은 왜 때문에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인가 고민하며 술을 마시다가 '에라 모르겠다'며 묵혀 두었던 글을 꺼내 먼지 털고, 새로 쓰고 뭐 그러는 중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성실치 못했던 왼손을 어르고 달래는 데는 술이 최고라 퇴근길 동네 술집에 들렀다. 우리 동네 1순위 술집과는 공연히 내외 중이고, 2순위 술집은 쉬는 날이 아닌데 문을 닫아서 3순위 술집으로 갔다. 모기가 자꾸 달려들었지만 술은 한 방울도 뺏기지 않았다(뿌듯).



꽤 오래 묵혀두었던 글이라 걷어 낼 곳이 잘 보였다. 다시 보아도 괜찮은 곳도 보였다. 시간 지나 다시 보아도 후회하지 않을 글만 쓰랬다. 다산 형님이 그랬고, 또 누군가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딴에는 성실하고 혹독하게 훈련했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 여전히 내 글은 주류가 아닌 것 같아서 주류를 조진다기 보다 주류에 기대어 고치고 다듬는 동안 유린기가 말없이 먹을, 아니 뇌를 갈아주었다. 부업의 폐해로 오른손이고 왼손이고 삐걱대기 일쑤였지만 기꺼이 집중했다. 주류든 주류가 아니든 주류를 자처하는 나는 그냥 나대로 쓸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게 뭐, 잘못은, 아니잖아? 그저 가슴에 칼을 품고 -정확하게는 펜 같은 칼이고 칼 같은 펜을 가슴에 새겨 두었다는 말이다- 사는 애가, 벌써 몇십 년째 칼을 벼리고 벼려온 애가 칼을 함부로 휘두르겠냐고. 행여라도 빠질까 싶어 애지중지인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겠냐고. 그냥 언젠가 한 번쯤은 뽑아 든 칼로 큼직큼직하게 고기 썰어 차린 술상에 애정하는 사람들 앉혀 놓고 주거니 받거니 술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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