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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윤 Oct 12. 2021

일층 이층 삼층

점(1)-선(2)-면(3)으로 구축된 프로이트적 가족 방정식


 스포일러 없는  리뷰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이자 사회인 ‘가족’은, 구성원이라는 유일무이 변수가 모여 다이내믹한 관계와 소통의 방정식을 구동하는데, 때로 이 방정식이 산출하는 문제 중 어떤 것은 너무 어렵고 까다로워 그걸 푸는 데 5년, 10년이 걸리고 어떤 것은 영영 풀리지 못한 채 수수께끼로 남는다. <일층 이층 삼층>(2021)은 한 건물의 일층, 이층, 삼층에 사는 세 가정에 던져진 관계와 소통의 역학이 10년이란 시간 동안 어떻게 펼쳐지는지 보여주는 가족 심리 드라마이며, 각자의 정답과 오답을 향하여 나아가는 세 가지 풀이 과정이다.


  주인공이 무려 세 가족인데, 상호 교류도 많지 않은 세 가정의 사건을 매끄럽게 교차하며 발단-전개-절정 시키는 난니 모레티 감독의 재봉 솜씨는 역시 이탈리아 거장답다. ‘5년 후’라는 시간 점프 치트키가 두 번 사용되지만, 이는 중심 감정과 서사를 군더더기 없이 진행시키고, 121분으로 응축된 10년의 본질적 장면만을 골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개인적으로, 이 시간의 암막이 세 가족을 둘러싸고 그간 고조된 강박과 갈등이 폭발되는 클라이맥스의 진입로에서 관객의 눈을 가로막아 각 가정의 적나라한 절망과 고통을 짐작 가능한 공백으로 남긴 점도 좋았다. 최소한의 사적 영역과 기본 품위를 위한 (외부 시선으로부터의) 안전거리가, 인생을 공유하는 ‘가족’이란 가장 내밀한 세계에 꼭 필요한 것 같아서.

   <일층 이층 삼층>의 이탈리아 원제 ‘Tre piani(=Three floors)’는 우리말 제목보다 숫자 3의 상징성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숫자 3이 이 영화의 구조적 중심축임은 자명하다). 3층으로 지어진 건물에 세 명으로 이루어진 세 가족이 살고 있고, 카메라는 점차 내부로 접근하며 가족의 삼각형을 구성하는 어느 꼭짓점 혹은 밑변이 흔들리는 문제적 상황을 포착하기 시작한다. 하나의 꼭짓점은 가족 구성원을, 두 점 사이의 선(밑변)은 ‘관계’를 상징한다고 보면, 점 A-B, B-C, C-A의 관계가 연합될 때 가족의 삼각형은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중 어느 한 점이나 선의 이탈이 발생해도 도형의 테두리는 무너지고 개별적인 점과 선만 남게 된다. 세 밑변의 둘레로 형성된 면(영역)―외부 세계를 막아주는 내부의 장(場)―이 깨어지는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 세 개의 꼭짓점은 세 가정을 뜻하기도 해서, 그들은 이따금 일정 거리에서 서로 삶의 특정 장면을 스치듯 지켜보는 목격자가 되기도 한다. 이들 중엔 ‘3’의 구도에 무의식적으로 집착하는 인물도 있다―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갓난아기를 출산하여 삼각 구도를 완성하는 3층 거주인 모니카(Alba Rohrwacher). 그녀의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먼 타지에 떠나 있어 모니카는 대부분 시간을 아기와 둘이 보내며 “인생이 비현실적인 느낌”에 휩싸일 만큼 깊은 외로움에 시달린다. 하지만 내부의 공간을 품은 도형은 얼마간 폐쇄적 속성이 있고, 꼭짓점의 위치와 간격을 바탕으로 균형 잡힌 밑변 길이와 형체를 갖출 수도 있겠지만 때로 꽤나 기형적인 각도와 모양을 그려낼 수도 있다.


   불완전한 점들이 만나 서로의 인생을 엮고 맺는 ‘가족’이란 방정식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실로 다양한 답과 길이 존재하겠고, 정답이라 여기고 달렸으나 결국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는 좌절의 여정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해 노련한 난니 모레티는 영화 속에 의미심장한 힌트를 슬쩍 넣어 두었다. 어느 날 우연히 같은 시각에 각자의 볼일로 집 밖을 나온 세 가족의 눈 앞에서 펼쳐지는 기적 같은 장면이다. <일층 이층 삼층>이 연출하는 풍부한 무의식적 상징과 암시 중, 극장을 나선 후 곱씹어볼수록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 말로 형용하기에 앞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느껴보면 좋은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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