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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주 Nov 08. 2019

너는 다만 존중하겠지. 나는 이해하고 싶어.

너는 다만 존중하겠지. 나는 이해하고 싶어.

인간을 관찰하는 것은 내 취미이자 내 삶에서 최고의 유희이다. 전혀 이해되지 않고, 그래서 또 예측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삶 속에서 많이 만나게 된다. 나는 그럴 때 마다 어떠한 짜릿함을 느낀다. 완전히 낯선 여행지에 도착한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오랜 시간 지켜보고 하나씩 행동 양식, 습관, 말투를 알아가다 보면 그에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정보와 지식들이 흩뿌리듯 날리다가 점차 퇴적된다. 결국 어느 새 하나의 인생을 온전히 알게 된다. 내가 아닌 너의 삶에 날아드는 것이다. 


나는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다. 아마 그렇기에 쉽게 다른 이에게 몰입해서 그들의 삶을 파고들지도 모른다. 고유의 내 것을 쥐고 단단하게 서있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다. 사실 계속 타인의 것을 관찰하고 판단하여 가장 최적의 것을 내 것으로 선택하고 싶다. 위험하고 싶지 않고, 불안하고도 싶지 않다. 내 신경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해 예민하여 쉽게 각성된다. 2잔 이상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너무 뛰어 하루 끝에는 완전히 지쳐버리고, 조금 변해버린 내 연인의 기분에 내 하루의 톤이 달라지니 말이다. 


꿈꾸며 비행하는 사람들이 우스워 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공상에 빠져 현실을 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그들이 땅에 발딛는 착륙 순간을 보지 못한 것일 수 있다. 계산기 위에서 숫자를 보고 사는 사람은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치열한 삶에 대한 열정을 보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의 삶에 방식에 대한 극단적인 내 사고는 누군가를 관찰하고 또 받아들여가며 유연해지고 중심을 찾는 방향으로 변해갔다. 땅에 발딛고 사는 사람은 뛰어오르는 순간 태생적 한계를 극복한 경탄스러움이 있다. 하늘에 사는 사람이 두 발을 땅에 붙히고 지루한 일상을 견고하게 살아내는 것을 보면 같은 종류의 경탄이 생기더라. 


내가 아는 누군가는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다. 눕자마자 자고, 일어나자 마자 하루를 시작하는 그런 사람. 커피를 두 잔이상은 마셔야 삶에 활기가 돈다. 타인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는 그냥 본능적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 타인의 입장과 상황, 슬픔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들지는 않지만 다만 멀리서 존중한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나는 이 사람이 가장 알기 어렵다. 내 안에는 타인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는 관념틀들이 겹겹히 쌓여있다.  이 사람은 내 공감틀이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냥 그사람은 내가 알 수 없는 오롯히 타인인 그런 사람이다.  나는 내가 파악하고 이해했던 사람들의 특성으로 그들을 다시 이해해보려 하지만 다시 또 실패한다. 무언가 정리되고 기술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사람을 설명하고, 또 기술하고 싶은 내 욕망에 반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 인생에 깊숙히 들어와있다. 기술될 수 없는 사람이기에 나의 탐구욕은 끝을 모르고 그를 알고자하고, 우리의 관계는 지속되는 것일 수 있다. 세상에는 내가 아무리 이해하고 알아가려고 해도 끝끝내 모르겠는 사람이 존재할까. 아니면 아무리 나랑 유전적, 신경계적, 행동적 특성의 결이 달라도 오랜 시간을 겹쳐 살아가면 결국에는 깊은 이해에 도달하게 될까. 나는 이사람을 이해하고 싶다. 그는 나를 다만 존중할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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