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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Apr 25. 2023

에세이를 배우러 갔는데?!

집단상담을 다녀온 것 같아 남겨보는 기록 :)


에세이 쓰기를 배우러 갔는데, 언젠가부터 집단상담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쓰고, 공유하고, 퇴고하는 과정에 느낀 막연하게 '좋다'를 넘어선 기분들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번 곱씹어 돌아보니 '쓰는 법 배우기' 이상의 '치유'를 얻고 있었다. 정지우 작가의 '에세이 쓰기 모임' 에서 9주간 보고, 듣고, 느꼈던 감정과 따라온 여운이 사라지기 전, 그 순간의 기억들을 나의 직업적 관점에서 기록하고 나눠 보고자 한다.


1. 에세이를 ‘쓴다’는 것


에세이 '쓰기'는 줌 인(zoom In)과 줌 아웃(Zoom out)을 반복하며 나를 관찰하는 과정이었다. 여럿이 모여 글에 대해 비평하는 ‘합평’ 수업에 참여하려면 나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 한편을 써야만 했다. '지금 떠오르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꺼내 놓아도 괜찮을까?' 솔직함과 안전함 사이를 저울질 하며 한참 시간을 끌었지만, 제출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노트북을 열었다. 눈은 하얀 모니터를 바라보고, 손은 타자를 치면서 과거의 나에게 찾아 갔다. 기억이 하나 둘 떠오르자, 그 순간에 울고 웃던 감정과 표정이 되살아났고 마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나의 과거를 지금의 눈으로 '줌 인' 하며 세밀하게 바라보았다. 모아지는 기억을 단어, 문장, 문단으로 하나씩 늘려갔다. 한편의 '글'같이 보이는 모양새가 갖춰지자 완성했다는 뿌듯함과 무엇인가 털어 놓았다는 개운함이 올라왔다.  


글쓰기는 한번에 휘리릭 쓰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초고를 들고 합평이 시작되었다. 열 명의 학우가 줌(zoom)이라는 공간에서 다른 이가 쓴 글에 대한 소감을 말하면 그 뒤로 작가의 첨삭 과정이 이어졌다. 혼자 썼을 때 보이지 않던 고쳐야 할 부분들이 계속 생겨났다. 작가는 거리두기를 강조했다. 과거의 감정에 매몰되어 쏟아져 낸 감정을 써내려 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한 발 물러나 거리를 두고 그 순간의 나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줌 아웃의 시각으로 한발 뒤로 물러나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했던 것이다.


 퇴고의 시간이 오자 조금 뒤로 물러나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감정에 매몰되어 뒤죽박죽 엉킨 마음으로 울고 있는 과거의 나를 만났다. 뒤로 한발 떨어져 나를 바라보니 그때의 나는 단순히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 슬프기도, 부끄럽기도, 친구들, 학교 선생님의 시선에 부담감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여기(Here and now)’에서 과거의 나를 바라보았다. 삼십대의 언니가 “괜찮아” 말하며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 아이가 미처 하지 못했던 말, 듣고 싶었던 말을 하얀 모니터에 한자 한자 글로 대신 써 주었다. 과거에 풀지 못했던 ‘미해결 과제’는 완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그 순간을 인정하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완벽한 글은 아니었지만 한 편의 완성된 글이 마무리 되자 꽉 막힌 게 뻥 뚫린 것과 같은 시원함이 따라왔다.


* 글쓰기의 치유적 효과를 연구한 제임스 페니베이커 박사는 트라우마 또는 불안 경험을 쓰는 글쓰기 과정을 통해 개인의 정신적 안녕감을 개선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일상적인 경험을 글로 쓰는 것만 아니라, 힘들었던 경험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실 관계를 기록하고 당시 느꼈던 감정을 상세히 적을 때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글을 쓰면서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풀어지며 속이 시원해 지는 느낌인 감정의 정화(Catharsis: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기억을 글로 정리해 보는 과정에서 과거의 아쉬움, 상처를 객관적으로 차분히 생각하게 된다. 추가로 그 당시 느끼지 못했던 좋았던, 감사했던 기억 또한 떠올릴 수 있다.  


<참고: 정서적 경험에 관한 글쓰기의 치료적 효과, 표현적 글쓰기_ 제임스 W. 페니베이커>


결국, 나의 삶을 가까이 혹은 멀리서 바라보며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마음 속에 쌓아 놓은 것을 하나씩 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2. ‘안전한’ 이들 속에서


안전한 집단에서는 솔직해 져도 괜찮았다. 처음에는 나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꺼내 공유해야 하는 합평의 시간이 부담스러웠다. 글 속에 담긴 손톱을 뜯던 불안한 소녀의 이야기, 실종 아닌 진짜 가출했던 이야기 들은 꺼내 놓기 부끄럽기도 했다. 나의 글을 읽고 '누가 나를 평가하면 어떡하지?' 합평과 첨삭의 순간에도 의구심은 따라왔다. 하지만, 에세이 두 편을 써 낸 후 나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알아챘다. 솔직하게 써 내려간 글에는 "그 기분을 나도 느꼈어요"라는 자기개방(Self-disclosure)과  "아무렇지 않은데요? 이 글이 세상에 나오면 더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을 것 같아요"라는 꺼내어 줘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오히려 부끄러운 기억을 모호하게 써 낸 글에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을 안하고 있어요.”와 “솔직해 져도 괜찮아요”라는 의견을 들었다. 숨겨놓은 보물같은 이야기를 꺼내 주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을 받고 안정감을 얻었다. 나 혼자만 꼭꼭 감춰둘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의 이야기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나만의 이야기가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삶의 보편성을 느끼고 있었다.  


안전함이 느껴진 그때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스로 만든 기준선 밖으로 한발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음 속 꼭꼭 깊이 숨겨놓아 쉽사리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소설 속에 나올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만났다. 목소리가 아닌 하얀 종이 위 글로 만난 그들의 이야기 앞에서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개인의 내밀한 과거 이야기를 꺼내도 편견 없는 피드백이 따라왔다. 누구 한명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 없이 "괜찮다"라는 의견이 먼저였다. 숨기지 않고 그려낸 이야기에는 공감을 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가슴 깊이 숨겨둔 기억을 꺼내 놓아도 괜찮았다. 학우들은 안전한 공간 안에서 수치심 대신 공감, 안정감을 얻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한달 쯤 시간이 흘렀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이곳은 제가 겪은 집단 중에 '상담 혹은 집단상담'을 제외하고 굉장히 안전하다고 느낀 공간 인 것 같아요."라는 말을 단체 카톡방에 적어 보았다. 곧이어 답글이 하나 둘 올라왔다. 나만의 경험이 아니었다며 동의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났고 어디에선가 올라오는 끈끈함이 더해졌다. 안전한 공유와 피드백이 있는 유의성(1)이 있는 집단에서 매주 상호작용(2)이 일어났고 '우리' 라는 끈끈한 결속력과 함께 '괜찮구나'라는 마음이 더해져 매주 월요일 밤 아홉시에 시작한 글쓰기 수업은 새벽 한 두시 까지 뜨겁게 무르익었다. 과거의 나와 너를 만나 서로 안아주는 시간을 쌓아가며 그렇게 치유의 힘은 점점 커져갔다.


(1) 유의성(Psychological significance): 집단이 집단 구성원들에게 심리적으로 의미 있는 특성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


(2) 유의한 상호작용(Significant interaction):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된 정체감, 즉 '우리(We-ness)' 집단의식이 있어서 구성원들이 어떤 구분된 전체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만 형성됨


3. 중심을 지킨 리더


글을 쓰고, 나누고, 치유했던 과정이 물 흐르듯 흘러간 이유는 ‘중심’을 지켜 그룹을 이끌어간 정지우 작가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시선을 가진 그는 밤 늦은 시간까지 글쓰기만 가르쳐준 사람이 아니었다. 제출한 글의 첫 문장부터 마지막 마침표가 찍힐 때까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담긴 개인의 독특한 개성과 장점을 알려주었고, 보완해야 할 부분은 세심하게 짚어주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 혼자서는 절대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명 한명의 에세이를 열과 성을 다해 읽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을 찾아내는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티내지 않지만 우리 모두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숨겨둔 이야기를 솔직하게 적어 냈을 때 오히려 더 좋았다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쓰고 싶은 이야기들은 계속 떠올랐다. 그의 따뜻한 관심이 있어서일까, 초고를 수정하고 퇴고를 마무리 할 때 까지 대충은 없었다. 글쓰기 수업이 아니었다면, 나는 글을 써 낼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나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효능감까지 얻고 있었다. 


더해서 안전한 글쓰기 집단을 운영해 준, 집단상담 리더의 자질을 충분히 지닌 정지우 작가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표현한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매주 월요일, 온라인에서 만난 학우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떠오른다.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새벽까지 집중하는 이들이 있어서 행복했고, 그 에너지 덕분에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전국 각지에서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그 시간이 단순한 글쓰기 수업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 저는 한국상담심리학회 2급 상담사이며, 위 글은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한 내용입니다. 감안하여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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