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험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
공부의 결과는 설계사 시험 합격이었다. 설계사 자격증의 과정은(손해, 생명, 제3보험 시험 + 보험 연수원 인강 40시간 이수) 생각보다 수월했다. 시험공부와 교육을 들으며 당최 이해 안 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설계사 시험 합격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물론 세 과목 모두 커트라인에 걸쳐서 통과)
출판 영업을 하면서 상대했던 사람들은 대형 온, 오프라인 서점의 MD들 소매 서점의 대표들, 간혹 오프라인 행사에서 만나는 독자들이었다. 우리의 신간, 구간 도서들을 열심히 홍보해서 어떻게든 좋은 자리에 진열되고, 온라인 서점의 좋은 자리에 배치되도록 애쓰고 직접 만나는 독자들에게 열심히 책 설명을 해왔다. 상품을 설명하는 일은 12년간 매일 같이 해왔던 돈벌이 루틴이었다. 물론 출판일을 단순히 돈벌이로 생각한 적은 없다.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그 자부심은 나만의 것만도 아니고 우리 가족의 것이었을 만큼 우리는 출판에 진심이었다.
사양산업. 출판사에서 일하는 것은 종이책이 사라져 간다는 대명제와 싸우는 일이기도 했다. 순응할 수밖에 없는 디지털화에 콘텐츠의 특성상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없는 책 시장은 매년 하향 곡선을 그렸다. 특히 기독교 출판 쪽은 그 하향곡선이 더 가파랐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성인이 되는 20년 후를 상상했을 때 출판 영업의 복판에서 여전히 금전적인 부분에 구애받지 않고 꽃꽂이 서 있는 내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먼저 보험업으로 이직하고, 빠른 시간에 자리를 잡은 동생의 권유는 틈틈이 있었다. 와서 직접 우리 딸의 보험을 설계해보고 새로 가입하라는 동생의 권유를 점점 가벼이 흘려듣지 않게 되었다. 출판사에 퇴사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지금의 지점장님과 첫 만남을 가졌다.
보험에 대한 내 인식도 편협했던 것이, 당연히 보험회사 지점장이라고 하면 기름기 좔좔 흐르는 '양아치가 나와야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명품 시계에 금팔찌를 차고 고급 넥타이를 매고 나타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대면한 지점잠님의 첫인상은 자그마치 '순한 교회 오빠' 마냥 기대(우려)와 정반대였다.
기대를 저버린(?) 지점장님 덕분에 가뿐하게 보험업으로 이직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이 사람이라면 믿고 시작해도 되겠다는 막연한 안정감이 어느새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까. 물론 이직을 결정하기까지 여러 난관이 있었다. 다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도 교차했고, 편협하게 내 안에 존재했던 보험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내와 대화하며 이 일이 어느 가정의 너무 귀한 새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때때로 안도했고, 누군가에게 좋은 책을 읽히는 일만큼 누군가의 삶에 지워진 위험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이 일의 유익함에 대해서도 점차 확신을 갖게 됐다. 그렇게 보험업으로의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