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이 내게도
남들 다 운다는 조리원에서도, 잠 한숨 못 자던 신생아 육아 때도 안 울던 내가 새벽에 아주 서럽게 울어버렸다. 남편이 식재료 택배를 냉장고에 정리하지 않아서였다.
고작 그걸로?
이직하자마자 출산휴가에 각종 저녁자리를 마다한 남편이기에, 어제는 저녁 식사자리에 다녀오라고 했다. 어차피 저녁시간은 일단의 육아가 마무리되어 크게 남편이 할 것도 없다.
하지만 2차를 간다는 연락을 받은 순간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참다가 결국 카톡을 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너무 짜증이 난다. 나만 몸 망가지고 나만 일 쉬고 나만 자기계발 미루고 나만 하루종일 아기보고 나만 육아서 읽고 공부하고 나만 아무도 못 만나고… 앞으로도 계속 짜증 날 것 같다 “
오늘 밤에 마켓컬리 배송이 오니 챙겨달라 말을 하고 아기와 함께 자고 있으니 남편이 돌아와 미안해하며 안아줬다.
새벽 1시에 수유를 마치고 아기를 뉘이려는데 현관에 떡하니 놓인 식재료 박스.. 내가 챙겨달라고 한건 박스 속 식재료를 냉장고에 정리하라는 거였는데..!!!! 그냥 집 밖에 있던걸 집 안에 넣어두다니…
남편은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 식재료를 정리하려는데 정말 머리끝까지 짜증이 나며 엉엉 울음이 났다.
묵직하게 쌓여온 서러움이 박스가 열림과 함께 쉬지 않고 쏟아져내렸다.
다시 남편을 깨워 왜 컬리 박스를 저렇게 뒀냐며 서럽게 울었다. 잠결에 당황했던 그는 곧 엉엉 우는 나를 달래주었다.
우리는 알았다. 문제는 이 박스가 아니었음을.
최근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인터뷰가 생각났다. ‘버스가 저를 두고 떠났을 때 견딜 수 없게 화가 나서 주저앉아 엉엉 우는 저를 보고 병원에 가기로 결심했어요 ‘.
그게 딱 나였다.
인생에 욕심 많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던 나는 임신기간부터 비자발적 은거생활을 해왔다. 근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요즘 내가 대화하는 유일한 성인은 남편 1명밖에 없다.
나도 안다. 생물학적, 사회구조적, 제도적 여건이 복잡하게 얽혀 내가 아기를 잉태하고 낳고 키우게 된 것이고, ‘모유수유’라는 큰 산도 내가 결정한 것이다.
적당히 놓고 지내야 하면서도 놓지도 못한 채 스트레스 받으면서 버틴 건 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나고 서러웠다.
(아기의 성장발달을 위해 시간표에 맞춰 생활하는 것, 원더윅스를 맞아 요 근래 아기가 더 칭얼대는 것, 산후도우미&남편 휴가도 끝나 독박하는 것 등도 원인 중 하나겠지)
물론 난지 2개월도 안된 5kg의 생명체는 하루가 다르게 더 사랑스럽고 예쁘다. 엄마를 알아보고 웃어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이 상투적 표현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다!)
더 잘 키우고 싶어서 매일 공부하고 노력한다. 아니 어쩌면 날 위해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또 생산적 결과를 내는 일 중 지금 할 수 있는 게 그거라서.
(물론 육아가 얼마나 생산적인지는 알고 있지만 느낌이 다르다)
남편은 모유수유 안 해도 된다고, 설 연휴에 밖에 나가라고. 본인이 분유 먹이고 돌볼 테니 나가서 친구들도 만나라고 했다.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내게 이렇게 말해왔다.
나가지 않았던 건 무엇 인갈 놓지 못했던 나이다.
설 연휴에 친구를 만나볼까 한다. 한텀 정도는 남편에게 분유를 맡겨도 괜찮겠지. 가슴엔 젖이 차겠지만 마음엔 앞으로를 살아갈 여유를 찾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