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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Feb 11. 2022

나는 '거의 제주 사람'입니다.

10년 차 제주도민이 되었다.

"제주에 왜 왔어요?"


제주도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는 "일 때문에 온 거예요?"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태생이 제주인 사람에게 제주란 '직장 문제가 아니라면 굳이 이사 올 이유가 없는 섬'인 것일까. 내 대답은 언제나 "그냥 좋아서요."다. 뭔가 그럴싸한 대답을 하고 싶지만, 사실 별 대단한 이유가 없으니 별 수 없다. 대답하고 난 후 상대의 애매한 표정을 보는 일은 아직도 가끔은 어색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은 보통 "온 지 몇 년이나 됐어요?"다. 처음 이사 왔을 땐 잠깐의 틈도 없이 답이 생각났는데, 요즘은 한 번씩 고민하기도 한다. "음... 2013년에 왔으니까... 올해가...." 가끔은 손가락도 동원한다. 그렇게 한 손으로는 셀 수 없는 만큼의 시간을 살고 난 후로는 제법 자주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이제 거의 제주 사람이네요."




왜 왔냐는 질문만큼 많이 하는 질문은 이거다.


"언제까지 제주에 살 거예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제주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면서 목표한 기간이  2년이었다. ' 계절    번씩만 살아보자. 만약 너무 외로워서 2년을  살지 못하겠다면, 그럼 그냥 돌아오면 되지. 가라고  떠민 사람이 없으니, 다시 돌아온다고 막을 사람도 없는데' 대강 그런 마음이었다. 이미 목표의  배를 넘게 살았다. 목표치를 넘긴 후로는 새롭게 목표를 잡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까지 살게 될지는 사실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아직은 돌아갈 마음은 없다는 .  


그래서일까, 이런 질문을 듣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나는 제주에선 이방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 허무한 마음도 든다. 언제까지 살겠냐는 질문의 전제는 '언젠가 다시 돌아갈 사람'이라는 뜻일 테니. 10년 가까이 살았어도, 그리고 내가 결국 새로운 목표를 세우지 못한 채 평생을 제주에 산다고 해도 나는 결국 '거의 제주 사람'이지, 제주 사람일 수는 없겠다는 걸 실감하게 된달까.


제주는 섬이고, 이렇듯 섬 특유의 고립성이 있다는 걸 나도 살면서 곧잘 느끼게 된다. 일례로, 제주에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 그런 말을 했었다. 일기예보에서 "내일은 전국에 비가 오겠습니다." 해도 제주도에는 비가 오지 않을 수 있다고. 요는, 제주는 전국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전국 바깥에 있는 제주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게 이주민들은 오랫동안 '결국 떠나갈 사람'으로 여겨져 왔을 터다. 그렇다면 '거의 제주 사람'이라는 말은 어쩌면 이주민이 제주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찬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제주에 오게 된 단 하나의 이유를 말하라면 아마 바다가 아닐까


하지만 사실 우습게도, 내가 육지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왜 왔냐'는 질문보다 더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정말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은 덤이다. 내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면 "어릴 때 이사 온 거죠?", "학교는 여기서 나온 거죠?"라는 질문도 곧잘 따라온다. 별로 세련되거나 화려하지 못한 외모 덕분인지 나는 제주도에 이사 온 지 1주일 됐을 때부터 '제주 토박이 같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더랬다. 초면의 사람을 만나면 옆에서 친구들이 장난친다고 '로사는 구좌 종달따이'라고 소개하는데,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른바 촌스럽게 생겼다는 말이기는 한데 (하지만 사실 제주의 젊은이들은 서울 사람 못지않게 예쁘고, 잘 꾸민다), 나쁘지 않다. 제주는 내가 사랑하는 섬이고, 그런 제주를 닮았다는 말일 테니.




로망이었던 제주로 떠나와서, 현실이 된 제주를 살고 있는 제주살이 10년 차. 제주 사람처럼 생긴, 거의 제주 사람이 제주에서 살게 된, 제주에서 살아온, 제주를 살아가는, 제주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당신이 꿈꾸었던 제주살이와는 어쩌면 많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조금 더 용기 내 볼만한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산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제주는 사랑해마지 않는 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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