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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Aug 24. 2017

인적성 검사,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그만!”


정적을 가르는 구령이 울림과 동시에 고요했던 시험장은 분주해진다. 펜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본다. 차마 펜을 내려놓지 못하고 허탈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고, 깊은숨을 내쉬며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짓는 사람도 있다. 깊이 눌러쓴 모자를 고쳐 쓰며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그 사이로 감독관들이 분주히 시험지와 OMR카드를 걷어간다. 긴장이 풀리며 갈증과 허기가 덮쳐온다. 나의 첫 인적성 검사의 기억. 준비되지 않았던 시험 끝에 맛보았던 그 씁쓸한 기억은 아직도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다.


뼛속까지 인문학의 세례를 받은 내게 적성검사는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독일군 앞에 펼쳐진 
시베리아 동토 같은 존재였다.


누군가 내게 취업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일말의 주저함 없이 “인적성검사!”라고 외칠 것이다. 뼛속까지 인문학의 세례를 받은 내게, 적성검사는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독일군 앞에 펼쳐진 시베리아 동토 같은 존재였다.  


몇 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인적성 검사를 통과하고, 원하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특별히 인적성 시험 준비에 투자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남들도 다 풀어보는 문제집을 한 번 풀어본 정도였고, 그마저도 시험 준비를 시작하던 때와 실제 시험을 보았을 때의 실력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인적성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내게는 세계 7대 불가사의보다 더 신기한 일이었더랬다.


궁금증은 오래지 않아 풀리게 되었다. 회사에 들어가 인사팀에 배치되어 채용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내가 보았던 인적성 검사의 데이터를 볼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판도라의 상자 같은 엑셀 파일을 열자, 놀라운 시험 결과가 눈앞에 펼쳐졌다. 예상했던 대로 나의 적성검사 결과는 겨우 과락을 면한 채 바닥에 눌어붙은 껌딱지 마냥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낮은 점수에도 불구하고 면접 대상자로 선정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비밀은 단순한 곳에 있었다. 바로 ‘인성검사’ 항목이었다. 


비밀은 단순한 곳에 있었다.
바로 ‘인성검사’ 항목이었다.


인적성 시험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성검사 항목은 특별히 대비하기가 애매한 분야다. 고도의 집중력과 순발력을 발휘해야 하는 적성검사를 마친 후 찾아오는 인성검사. 인터넷에 떠도는 심리테스트처럼 느슨한 질문들에 긴장이 풀리기도 쉽다. 이런 인성검사가 인적성 시험에 큰 영향을 끼칠까?


그렇다. 적성검사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적성검사보다 더 치명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 인성검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시험을 볼 당시 인성검사 부적격자가 많았던 탓이었다. 적성검사 점수로만 따지자면, 나의 점수는 위에서 세는 것보다 밑에서 세는 것이 월등히 빠를 정도로 바닥을 기는 점수였다.


인성검사는 적성검사와 달리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적성검사는 철저하게 성적순이다. 영역별로 몇 점을 맞았는지, 몇 문제를 맞히고 몇 문제를 틀렸는지에 따라 점수가 매겨진다. 그리고 간혹 기준점 이하의 점수를 받은 경우에는 과락이 되고, 과락 과목수가 기준 수를 넘어서면 인적성검사 탈락이 된다. 수능시험처럼 매우 간단한 줄 세우기 식 시험인 것이다. 이 때문에 수능 문제집처럼 회사별 인적성 시험 기출문제가 서점에서 팔리고 있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익숙한 방식으로 준비하기 편한, 그리고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고득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접근성 좋은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성검사는 적성검사와 달리 점수화하지 않고, 또 순위를 매기지도 않는다. 인성검사는 통과냐 탈락이냐의 문제이고, 그 중간에 ‘주의’나 ‘의심’과 같은 경고문구가 따라붙는 정도였다. 적성검사에서 아무리 점수가 높아도, 인성검사 결과가 탈락이나 주의 단계로 나타나면 그 지원자는 면접장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된다. 애써 공부한 적성검사 결과가 허공으로 증발하는 가슴 아픈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내가 몸 담았던 회사에서도 그룹사 차원에서 가이드가 존재했는데, 주요 내용 중 하나가 인성검사 불합격자는 인적성 시험 탈락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었다. 


인성검사 불합격은
“너 거짓말했지?”라고
따져 묻는 것에 가깝다.


인성검사 불합격은 “당신의 인성은 영 못 봐줄 정도입니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너 거짓말했지?”라고 따져 묻는 것에 가깝다. 당신이 정말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인성검사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인성검사를 보면, “왜 물어본걸 또 물어봐?” 라거나, “어, 이 문항 아까 앞에 있지 않았나? 조금 다른가?” 싶은 비슷한 질문들이 눈에 띌 것이다. 당신의 착각이 아니다. 실제로 인성검사에는 동일한 질문이나 유사한 질문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바로 인성검사에서 회사가 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신뢰도 측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복되는 질문에 지원자가 다르게 답변을 할 경우, 이 지원자의 인성검사 결과는 신뢰하기 어려운 데이터가 된다. 즉, 회사가 선호할만한 모습으로 자신을 꾸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매우 극단적인 질문도 등장한다. “당신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까?” 라거나, “당신은 한 번도 부모님에게 화를 낸 적이 없습니까?”와 같은 질문들이 그 주인공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과연 20년을 넘게 살면서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만약 정말 존재한다면 성인의 반열에 올라야 하지 않을까? 그런 사람은 회사원이 아닌 종교 지도자가 되어야 마땅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종교지도자가 된다면 그 종교를 믿어볼 의향도 있다. 존경을 담아서.


이런 극단적인 질문들에 아주 자신 있게 “단 한 번도 없다.”라고 답변한다면, 확률적으로 이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런 답변들이 많이 쌓인다면, 결국 그 지원자의 인성검사 결과는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가 된다. 즉, 불합격이 된다는 의미이다. 입사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포장하는 것이 과해지면 이런 부작용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인성검사의 덕목은 첫째도 솔직함,
그리고 둘째도 솔직함이다.


솔직해야 한다. 인성검사의 덕목은 첫째도 솔직함, 그리고 둘째도 솔직함이다. 회사가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자신에게 덧씌워 연기를 할 경우, 반드시 빈틈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상반되는 답변이 나오는 순간 데이터의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이는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서, 정말 회사가 꾸며진 나의 이미지를 선호할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회사가 정말로 선호하는 인성 타입이 어떠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채용 담당자인 나도 그룹사 차원의 인성검사 결과 분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들여다보지 못했다. 즉, 정말 극소수만이 비밀리에 공유하는 철저한 비공식 데이터라는 말이다. 꾸며진 이미지도 도박, 진짜 내 모습도 도박이 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기왕 도박을 할 거라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도박을 거는 게 낫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좀 더 자신감을 가지자.


회사가 성인군자에 가까운 인성을 가진 인재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와 호흡을 맞춰 함께 잘 일을 끌어갈 수 있는 인성의 소유자라면 그걸로 족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차분하게, 솔직한 내 모습을 그대로 인성검사에 적어 넣기를 바란다. 힘들게 준비한 적성검사 점수가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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