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툰남편 김광석 Mar 04. 2021

GOP 싸지방에서 메일로교육봉사를 했던 건에 대하여

서툰 남편의 자서전 2021. 03. 04


20대 초반에 한 학생에게 글쓰기를 알려주는 봉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국문학 전공, 교직이수 수료, 각종 글쓰기 공모전 1위 경력 다수 등 화려한 커리어(?)로 글쓰기와 글쓰기 교육에 열이 올라 있었던 터라,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웬만큼 실력을 향상시켜 주는데는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 학생과 첫 수업을 시작했던 시기가 하필이면 내가 동부전선 GOP에서 초임장교로 복무하기 시작한 지 1주일도 되지 않았던 시기라는 점이다.

GOP 동부전선의 일출과는 1도 상관 없는 서울근교 리조트의 일출뷰.JPG

아마 초임장교의 일상을 아는 사람이라면 생각할 것이다. "최소한의 수면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업무를 배우고, 임무를 수행하는데 써야 하는 주제에 무슨 봉사활동에 지원했냐"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나는 조금 억울하다.

분명 내가 봉사활동에 지원했던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였고, 봉사활동 시스템은 대학생이 수업을 열면 그걸 필요로 하는 중. 고등학생이 수강신청을 하면서 수업이 전개되는 방식이었다. 다만 2년 6개월 동안 나를 필요로 하는 학생이 없어서 방치되어 있던 나의 수업이, 하필이면 내 생에 가장 정신없이 바빴던 시기에 강제로 개강되었을뿐...

나는 수업이 열리게 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내 상황을 봉사자들의 리더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리더는 내 수업을 취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박수를 치며 고마워했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 헌신하다니... 역시 장교는 달라요!"라면서...

!? 

분명 뭔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애써 리더에게 다시 나의 상황을 설명했고 수업 진행이 매우 어려운 상황임을 어필했다. 하지만 나의 완곡한 거절 메시지를 초긍정의 수락 메시지로 해석하는 리더의 응답엔 변함이 없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그의 입장도 한편으론 이해가 됐다. 글쓰기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이 2년 6개월 만에 딱 한 명 나왔던 만큼, 글쓰기를 가르쳐주겠다는 교사도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까. 리더의 입장에선 내가 아니면 그 학생을 그냥 돌려보내야 했던 것이다.

회피하려는 나와 어떻게든 연결시키려는 리더의 메일이 2~3번 정도 오고 갔을 즈음. 나는 학생으로부터 직접 발송된 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메일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선생님은 군인이라면서요? 저는 장교가 뭔지는 모르지만 소위는 알아요. 멋있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쓰신 글을 읽어봤는데 너무 멋있어요. 선생님에게 꼭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요"

당시 내 심정이랄까....JPG

도대체 리더가 나를 뭐라고 소개했길래... 아이는 나를 글 잘쓰는 전쟁영웅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현실의 나는 그저 매일 반지하 OP에 갇혀서 탈탈 털리며 눈물을 훔치는 찌질이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어쨌든 나는 녀석의 아첨에 혹해서 그 수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녀석이 생각하는 소위는 서든어택에서 멋지게 작전을 수행하는 특전사였다. 그래서 내가 나는 그런 군인이 아니라고, 컴퓨터가 10대 가까이 들어 있는 반지하 사무실에서 맨날 컴퓨터만 한다고 말하니까 살짝 실망하는 눈치였다)

아무튼 다행히도(?) 우리가 서로 가르치고, 배우려는 글쓰기는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교육이 가능했다. 특히 이론이나 설명보다는 실습 후 피드백 형식을 좋아하는 나의 교육 스타일 덕분에 우리는 메일을 통한 수업을 매끄럽게 이어갈 수 있었다.


수업은 3개월가량 지속되었는데, 아이가 메일을 통해 글을 보내면 나는 싸지방에서 그 글을 읽고, 첨삭을 해주거나 피드백을 반영한 수정본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는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는 흡수력을 발휘했는데, 메일을 열 번을 채 주고받기 전에 이미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다 알려줘버리고 마는 사태가 발생했고, 결국 이제는 내가 알려줄 것이 없다. 그러니 지금까지 배운 것을 스스로 점검하면서 계속 글쓰기를 지속하길 바란다.라는 메일을 보내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놀라운 것은 그 해 말, 그 아이가 전해온 소식이었다. 아이는 나와의 수업을 마친뒤로 국어교과인 담임선생님에게 계속 글을 제출했고, 선생님은 나처럼 피드백을 해주시는 방식으로 아이를 도왔다고 했다. 그리고 해당 선생님이 살짝 귀찮아하는 것 같으면 또 다른 선생님을 찾아가서 강제로 수업을 청했고, 그렇게 1년 동안 수 십 편의 글을 쓰고 첨삭받고, 다시 쓰는 활동을 이어갔다.


왜 그렇게 했냐는 나의 질문에 아이는 "어떻게 배우면 되는지 알게 되니, 누구에게 배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졌다"라고 대답했는데, 나는 이런 생각이 이 아이가 보여준 놀라운 흡수력의 근원이라 생각했다. 


일단 오르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끝까지 가게 된다.JPG

그리고 다음 해 아이는 학교 대내외에서 여는 백일장이란 백일장은 모조리 휩쓸면서 수상 소식을 전해왔었다.

이후로는 점점 뜸해지는 연락 속에서 녀석이 글쓰기는 직업이 아닌 취미로 남겨두겠다는 생각과 글쓰기와는 관계없는 학과로 진학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끝으로 우리는 더 이상 메일을 주고받지 않게 됐다.

구름이 너무 크면 그 위로 날면 그만이다.JPG

가끔 아이를 생각하면 갑작스레 연락을 끊은 녀석이 야속하고 서운하지만, 나 없이도 어딘가에서 글쓰기를 지속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떠오르면 어느새 가슴 한 켠의 자랑스러움이 솟아난다. 내가 녀석의 실력 향상에, 글쓰기 습관에 어떤 큰 영향을 끼쳤다는 듯 적어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녀석은 내가 아니었어도 스스로 글쓰기를 익혔을 것이고, 스스로 익히는 방법을 배웠을 것이며, 그렇게 자신의 실력을 쌓아갔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다시 그때와 같은 봉사를 하고 싶다.


사실 언제나 이런 마음이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봉사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다시 들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녀석과 연락이 끊긴 직후 사회에 복귀하면서 동부전선보다 무서운 취업전선에서 싸워야 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봉사활동을 일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예배 시간에 듣게 된 말씀을 시작으로 다시금 봉사활동에 대한 의지가 끌어 오르기 시작했다. 상황이 취업전선 당시보다 좋아졌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다. 다만, 며칠 전 예배 시간에 '가진 것 가운데서 나눔을 실천해야, 넘치는 가운데서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을 뿐이다.

나중에, 상황이 더 나아지면, 내 삶부터 챙기고, 더 안정을 찾으면 실천하겠다는 봉사는 절대로 제 기회를 찾을 수 없다. 내가 조금 힘들어도, 내가 조금 더 바빠지더라도, 내가 조금 더 노력하더라도. 지금, 당장.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했을 때에도 분명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크고 작은 봉사의 기회에서 배웠고, 특히 이 글의 주인공이 되는 제자에게 배웠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 때처럼 당장 실천해야겠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떠밀지 않으니, 내가 나를 밀어야 하고. 누군가 나를 찾지 않으니 내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야 하고. 아직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무엇을 나눌 것인지 정하지 못했기에 그것부터 정해야 하지만.

어떻게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무엇이든 나눠보고 싶다.



Q. 당신은 무엇을 나누었을 때 행복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