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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남편 김광석 Mar 13. 2021

꼰대가 꼰대짓을 하는 이유

서툰 남편의 자서전 2021. 03. 13

오늘 좀 부끄럽지만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한 사람을 만는데, 몇 년 전 내가 했던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A)이었다. 비슷한 경험을 하며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으로서 A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내 A는 묻지도 않았던 나의 경험과 생각을 쏟아냈다. 그리고 잠시 후 낯이 뜨거워지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A의 눈빛 속에서 과거의 내가 했던 생각이 비쳤기 때문이다.

이 순간 손에 소화기가 있었다면 내 얼굴에 뿌렸을듯...


내가 그와 비슷한 상황일 때 내 주변에도 오늘의 나처럼 조언을 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조언은 나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냥 귀찮기만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나와 비슷한 상황과 경험을 했다며 조언을 건넸지만, 사실 그들과 나 사이엔 어떠한 공통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의 말을 듣던 A는 당시 내가 지었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차 싶어서 생각해보니 A는 과거의 나와 전혀 다른 상황과 여건에서 완전히 다른 경험을 쌓으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부끄러웠다.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꼰대짓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그를 돕는다는 명분을 빌려 던진 조언은 그저 그의 시간을 빼앗으며, 스트레스를 선물하는 짓에 불과했다. 이를 깨달았을 즈음. 옆에서 듣고 있던 B가 말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한 것 같아요.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겁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본인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겁니다."

B의 굵지만 간결하고, 강력한 결론 앞에서 나는 부끄러움을 수습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이미 나의 말들이 A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B의 말이 맞아요. 선택은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지는 것이죠. 그러니까 바쁘다는 핑계로 고민을 미루면 안 돼요.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성장해서 어떤 결정이든 당당하게 내리고, 당당하게 책임져야죠."

말을 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와 나 진짜 꼰대인데?'

그제야 나는 과거의 나에게 조언을 해주던 사람들의 진심을 알게 됐다. 그들은 나를 위해 조언을 해주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이었다. 왜? 재미있으니까. 만족스러우니까. 보람차니까.

오늘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조언은 재미있다. 하는 사람만.

조언은 보람차다. 하는 사람만.

조언은 유익하다. 하는 사람에게만!

정말 부끄럽지만 재미있고 짜릿했던 경험. 또 하고 싶지만, 그동안 내가 입으로 싸고 다녔을 똥을 생각하면 이제는 그만 해야 할 것 같다. 한 번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일이니까, 아예 시작 자체를 하지 말아야겠다. 쉽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 입을 틀어막아야겠다. 꼭!




PS.

꼰대는 자신의 행동이 꼰대짓인 줄 몰라서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꼰대가 되어보니 알겠다.

꼰대는 자신의 언행이 꼰대짓인 것을 알면서 하는 것이었다...


다짐한다.

참을 수 없는 유혹 앞에서 비롯된 너무나도 가벼운 행동.

절대로 되풀이하지 않으리!



Q1. 여기까지 읽는 사람 없겠지만 읽었다면 왜 읽었나요?
 
Q2. 살면서 가장 어이없었던 조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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