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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빈 Mar 26. 2022

고향과 엄마를 벗어나고 싶었던 어떤 딸


고향과 엄마를 벗어나고 싶었던 어떤 딸


부산 집에 다녀왔다. 다음 달 영어 학원이 개강하므로 여유로운 지금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3월 투두 리스트에 가장 먼저 쓰여진 것도 ‘부산에서 엄마와 행복하기’. 고작 5일이었지만 생각해보니 근 10년 동안 내가 부산에서 가장 오래 머무른 시간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더 매정한 딸이었다.

 

집에 내려가기 전날,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작년 결혼기념일에 아빠와 갔던 기장의 한 호텔이 너무 좋았다며 나를 꼭 데려가 주고 싶다고 했다. 평소의 나라면 ‘1박에 얼만데? 조식 포함할 거야? 내가 제일 싼 예약 사이트 찾아서 할게’라고 쉴 틈 없이 말했겠지만 이번에는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몇 년 만에 딸과의 데이트를 준비하는 엄마가 퍽 들떠 보였기에. 엄마는 그렇게 혼자 호텔을 예약하고 오후 산책 코스, 저녁 식당까지 계획했다.  


기장 앞바다를 넓게 두른 호텔은 근사했다. 바다가 보이는 욕조가 있었고, 지하에는 잘 꾸며진 대형 서점이 있었다. 체크인 후, 엄마는 곧장 서점에 나를 데려가서 말했다. “처음 여기 왔을 때 너무 네 취향이라서 네 생각만 났어. 바다 보면서 책 읽는 거 좋아하잖아.” 서점 구경 후 우리는 바다를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걸었다. 예쁜 바다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 그땐 그랬지~로 끝나는 시시한 얘기들, 아빠 뒷담화, 내가 요즘 겪은 일 이야기로 시간을 채웠다. 밤에는 엄마와 술을 마시며 딸의 역할을 했다. 엄마의 고민, 슬픔, 억울함… 그녀의 감정을 듣다 잠이 들었다.  


10대 때 내 목표는 ‘탈부산’이었다. 부디 이곳을 벗어나 혼자 살고 싶었다. 부모님의 싸움을 관전하는 게 지긋지긋했고, 부산의 작은 동네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게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서울의 대학에 진학해 자취를 시작한 후, 나는 이 대도시에 집착했다. 방학에도 부산에 잘 내려가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와 대외활동만으로도 나의 방학은 매진이었으니까. 그때의 내게 부산은 언제나 ‘나를 뒤처지게 만드는 곳’이었다. 길게 쉬다 오면 조금이라도 느려질까 겁이 났다. 엄마는, 가족은… 부산이라는 단어 안에 너무나도 쉽게 욱여넣어졌다.


오랜 집착 끝에 서울에 자리를 잡고 나서 찾은 부산은 다른 모습이었다. 차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멋진 바다와 고요한 강, 동네를 촘촘하게 둘러싼 숲과 산. 그리고 그 풍경 속의 엄마. 사랑하는 나의 엄마.  


호텔에서 부산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더욱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함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밥을 차려 먹고, 드라마를 봤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엄마 아빠와 셋이 뒷산에 올라 국수를 먹었다. 어떤 밤에는 엄마 친구를 만나 셋이 술을 마시고 취한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귀가했다. 5일 동안 가족과 누린 일상은 그 어떤 호화로운 여행보다 행복했다.  


스물세  즈음이었나. 부산에 잠깐 내려온 내게 엄마는 장난스레 말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끼고 살고 싶어.” 주말이면 딸과 함께 노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했다. 그때는  말을 들은    흘려보냈는데, 지금은 내가 얘기한다. “엄마 끼고 살고 싶어.” 이런 날들이 내게 영원히 주어지지 않으리 알기에 서울로 돌아와 조금 울었다.


부산에서 꽃이 피지 않은 쓸쓸한 낙동강을 엄마와 산책했던 날을 요즘 자주 생각한다. 엄마는 내게 ‘서울에서 살더니 걸음이 빨라졌다 말했다. 아차 싶어서 엄마와 걷는 속도를 맞췄다.  속도를, 느린 걸음을 이곳에서도 잊지 않고 열심히 떠올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종종 엄마와 느리게 걷기 위해 부산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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