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무런 연고 없이 (또 직장 없이) 미국에 오다보니, 나는 주로 남편 친구 부부를 통해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 중국계 캐나다인인 남편 친구와 베트남계 미국인인 그의 아내의 친구들은 대다수가 아시안계 미국인으로 전형적인 tech 업계에 엔지니어/디자이너들이 많았다. 정말 신기한건 모두가 부모님의 모국어도 못하는 미국인인데, 조금만 더 알게되면 이들 역시 아시안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을 지녔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아시아에 있는 아시아 사람들 보다도 더 그 성향이 짙음을 느낄 때도 많았다. 아마도 40-50년 전에 이민 온 부모님들의 영향이 크겠지.
내 남편도 그렇다. 결혼 전에는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바나나 남편과 데이트하면서 그가 중국인임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또 이민자 2세인 관계로 중국말도 못하고, 얼굴도 까매서 중국인 보다는 오히려 동남아 사람이나, 캐리비안이나, 남미인나 어쨌든 알 수 없는 인종으로 느껴졌었다. 심지어 한국 결혼식 때는 엄마 친구들로부터 오바마 닮았단 말까지 듣는 등 흑인 혼혈로 오해받은 적도 있었다. (시엄마 미안 ㅡㅜ) 나에게 그는 중국인도, 캐나다인도 아닌 그냥 착한 남자 친구였다.
하지만 점차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의 가족들이 내 인생에 깊숙히 들어오면서 난 남편은 결국 중국인임을 알았다. 해맑게 웃으면서 생선 눈알 빼먹거나 새우 머리를 쪽쪽 빨아먹을 때, 남의 말을 절대 순순이 믿지 않을 때, 마누라 동의 없이는 종이컵 하나 혼자 사지 않을 때, 6촌 이상의 먼 친척과도 가족이라는 명분 하에 똘똘 뭉칠 때, 체면 깎이는 걸 죽도록 싫어할 때 등등 그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는 베리베리 중국인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중국 남자가 남편감으로 최고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집안일도 잘하고, 가족이 언제나 우선 순위이고, 전통적으로 강요되는 '아내의 역할'에 대해 기대치도 정말 낮아서 나같이 기 센(?) 여자한테는 딱이다. 하지만 여느 국제 결혼이 그렇듯 정말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많다. 정말 사소하지만 자주 부딪히는 부분으로는, 그들이 정의하는 '체면'이다.
어느 나라의 국민이건, 중국계 사람들도 그들만의 룰이 있어 자기가 남을 대접할 때 체면이 제대로 서길 바라는 것 같다. 그 체면의 기본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시키고 상대방이 배가 터지도록 먹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남들한테 신세지는 것도 정말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인데, 누가 돈 낼지 뻔히 아는 시점에서 이런 대접을 받으면 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다. 비록 남은 음식은 싸간다고 하지만 그냥 적당히 먹을 만큼만 시키고 적정한 계산서에 사인하면 그 체면은 안서는 것일까? 대접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꼭 그런 부담을 져야하는 걸까?
그러나 어쩌겠는가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이 있는 것을. 설거지와 청소를 도맡아하는 중국인 남편이 좋다면, 본인들이 원하는 체면을 지켜주는 것에 대한 인고도 함께 오는 것이겠지. 늘 받기만하고 갚지는 못해 좌불안석인 내게, 시엄마는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이게 우리 문화야. 이건 바꿀 수 없는 부분이니까 존중해줘.'
시부모님과 두번째 여행을 하며 난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잘하는 것보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을 이해해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건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똑같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