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에서 온 엽서에 대한 답장
보내지 못한 편지가 있었다.
마음에 써 둔 편지
네가 페루에서 엽서를 보냈을 때부터 쓰기 시작한 편지
다시 너에게 그 편지를 쓴다.
작년, 내 인생은 갈라질 대로 갈라졌고 다시 그 벌어진 조각들을 붙일 수 없을 것 같아 겁이 났다.
그치지 않는 비가 오래 내렸고 차가운 비를 맞으며 나는 축축하게 젖었다.
내가 힘들 때 나를 살리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때 분명 너도 있었다. 마음이 너무 힘들 때 신기하게도 한국에 있는 너에게서 택배가 왔고, 그 날은 몸도 마음도 말릴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경애에게'로 시작하는 두 번째 엽서를 읽으면서
너의 힘듦이 고스란히 느껴져 지구 반대편에서 꺼이꺼이 우는 내가 있다.
네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가서 네 방을 깨끗하게 치워 주고 싶고, 정리해 주고 싶고, 오동통한 너구리 한 마리 맛있게 끓여 주고 싶은 내가 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지금은 좀 쉬어.
마음껏 게을러도 돼.
그래도 괜찮아.
페루에서 네가 보내온 사진들과 영상들을 보며 나도 마치 거기 있는 것 같았던, 설렜던 그 순간들에
세계에서 배로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호수 위에 네가 있었고
타이완 아줌마들한테 정말 용감하다는 소리 듣는 네가 있었고
지구의 배꼽 마추픽추에서 날요를 담당한 네가 있었어.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니라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이야기하던 쿠스코 가는 기차 안에서의 네가 있었어.
페루에서 네가 정말 행복했다고
그 행복한 순간들의 증인이 나라고.
네가 할머니 되어서도 말해 주겠다는 약속 지킬 거야.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Ch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