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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Oct 04. 2023

잔잔하게 스며든 기억

소재 기록

 이야기가 있는 곳은 따듯하고 슬프고 뭉클하다. 사람이 주는 힘이랄까.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이럴 때면 이상하게 글이 쓰고 싶다. 막상 어떤 걸 써야 할지 몰라 무의식을 믿는 편이지만. 글감을 찾기 위해 이야기를 보고 듣는 날이 많아졌다.


 길을 걷다가 장례식장 문 틈으로 누군가의 영정사진이 보였다. 평균 연령에 비해 젊어 보이는 사진이었다. 많아도 60대. 그 사진을 보자마자 잊고 있던 한 사람이 생각났다. 영정사진을 들고 있던 한 학생.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잠시 벤치에 앉아있을 때였다. 이제 막 버스에서 내린 학생은 너무 많이 울어서 걷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들고 있던 사진을 보니 엄마인 듯했다. 오래된 사진을 복원한 듯 눈코입이 흐릿해서 얼굴 형태만 보였다. 딸로 보이는 한 학생이 영정사진을 꼭 껴안고 한 걸음 한 걸음 무겁게 화장터로 걸어갔다. 이대로 보내줄 수 없는 듯,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는 듯, 이 상황이 얼얼한 듯. 보는 것만으로도 슬펐다. 오랫동안 엄마를 만나지 못했던 걸까. 흐릿한 영정 사진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준비되지 않은 마음, 준비된 마음이란 게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던 날이었다.


 작은 뇌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기억이 담길까? 물론 뇌에 과부하가 걸려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러다 어떤 에피소드로 인해 떠오를 때도 있고.

 나는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름이 많고 느끼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옆 테이블에서 어설프게 돈가스를 썰고 있는 걸 보고 깨달았다. 내가 돈가스를 싫어했던 진짜 이유.

 어렸을 때 스테이크, 돈가스를 자주 먹지 않았다. 자주 먹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이프를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랑 처음 돈가스를 먹으러 갔을 때였다. 어설프게 나이프를 사용하는 나를 보고 친구가 말했다. ”너 나이프 되게 이상하게 잡는다. “ 부끄러웠다. 그 뒤로 돈가스를 먹으러 가자고 할 때마다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다른 메뉴를 주문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데, 그땐 그게 컸나 보다.


 백수였을 때 침대에 누워있다가 엄마 오는 소리에 거실로 달려갔다. "엄마 왔어?"라고 말하며 엄마가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열었다. 과자와 저녁 재료가 아닌 기계 우동이 들어있었다. 엄마는 '냄새가 좋길래'라고 말했고 나는 바로 젓가락과 숟가락을 가져와서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면은 쫄깃했고 국물은 진했다. 그 뒤로 마음이 공허할 때면 기계우동이 생각난다. 엄마랑 산책할 때마다 기계우동을 먹자고 졸랐다. 엄마는 못 이기는 척 나와 함께 우동을 먹어줬다. “이게 그렇게 맛있냐?”라고 물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상하게 가끔 이날이 그립다. 백수여서 마음이 답답했던 날들뿐이었는데 기계우동을 먹었던 날만큼은 따뜻하고 평화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이야기들을 메모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저장해야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간 좋은 소설 하나쯤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나만의 시각을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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