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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Nov 20. 2023

보이지 않는 사연들

문득 떠오른 생각

 운전하다 신호에 걸렸다. 신호등 앞엔 91년도에 잃어버린 딸을 찾는 현수막이 있었다. 지금은 2023년. 시간이 한참 지났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제 받아들이고 본인 삶을 살라고도,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테니 같이 찾아보자고도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무엇을 하든 지치지 않게 옆에 있어주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인 걸까? 현수막 보고 잠깐 이런 생각을 했지만 신호가 바뀌면 난 저 사연을 잊고 내 삶을 살 거라는 걸 안다. 잊지 않겠다고 해도 잊히는 사연이 너무 많다. 가끔은 이런 사실이 씁쓸하다.


 하루에 한 번씩 꼭 재난문자가 온다. 거기에 사람 찾는 알람도 섞여 있다. 주로 치매 증상 있는 어르신이 많았다. 치매를 검색해 봤다. 치매를 설명하는 수많은 단어와 문장이 있었지만, 그중에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발길 닿는 대로 길을 나섰다가 길 위에 혼자 있는 자신을 인지했을 때 얼마나 무서울까, 어르신을 찾는 가족의 마음은 얼마나 애가 탈까. 링크를 클릭해 보니 CCTV에 찍힌 사진이나 멀리서 찍힌 사진뿐이었다. 마지막 흔적이라 그럴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땐 생김새를 인지하기 힘들었다.


 전봇대에 강아지 찾는 전단지가 있었다. 같은 품종이라도 자세히 보면 다 다르게 생겼다. 아마 이런 건 주인 눈에 더 잘 보이겠지? 그 특징을 살려 전단지엔 강아지가 입은 옷, 습관, 털 길이 등이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지나가는 사람이 순간의 특징을 인지하기엔 쉽지 않았다. 혹시 혼자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발견하더라도 주인을 어떻게 찾아 줘야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고. 물론 어플로 찾는 경우도 많지만 어떤 사연은 이슈 되는데 어떤 사연은 이슈 되지 않는다. 강아지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같을 텐데.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이런 걸 볼 때 주의 깊게 봐도 금방 잊어버린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우리가 늘 관심가지면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한 번을 보더라도 인지하기 쉽게 알리는 게 중요할 것 같다. 1차원적인 사진 공유가 아니라 본인에게만 보이는 특징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한 영상이나 목소리가 들리는 영상 같은 것들 말이다. 핸드폰 가상현실과 연결할 방법은 없을까? 사람마다 사연이 있는데, 한 장의 사진과 한 두줄의 글로 그 사연을 정의하기엔 아쉬움이 많다. 그럼에도 이 서비스를 잘 이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정보의 차이도 생기겠지? 참 어렵다.


누군가는 기적이 있다고 하고 누군가는 기적이 없다 한다. 하지만 결국 절박함의 순간엔 누구나 기적을 기도하고 기다리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기적은 있어야만 한다. 절박한 그 모든 순간들에 의미한 희망이라도 깃들 수 있도록 기적은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기적이란 흔하지 않아서 기적이다. 예상치 못했던 행운보다 생각지 못했던 불행이 훨씬 많은 게 세상이다. 삶이란 기적만을 믿으며 살기엔 매몰차고 혹독하다. 기적은 결국 확률의 문제다. 기적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존재하며 남은 구천구백아흔 아홉 명에게 기적이란 헛소리일 뿐이다. 삶이란 절대적이고도 압도적인 확률로 잔인하다. 그래서 그래서 기적은 필요하다. 단 한 번도 일어날 확률 없는 제로의 절망보다는 그나마 천만 번 중 한 번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실낱의 가능성이 낫다. 그래야만 희망도 있다.

-응답하라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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