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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Mar 25. 2024

하동 구례 2박 3일 여행, 단단해진 나를 만난 순간

 일을 그만두면 국내 혹은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편이다. 고생한 나를 위한 선물이기도 했고 나를 괴롭혔던 것들과 떨어지고 싶기도 했다. 여행지를 선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하동. 먹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을 찜하며 여행 계획을 세웠다.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떠나기 전, 셀레는 마음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는 시간. 하동 구례 여행 검색은 했지만 블로그나 유튜브는 꼼꼼히 보지 않았다. 내 감정 그대로 느끼고 싶으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잘 놀았다. 날씨도 좋았고 축제기간과 겹쳐서 꽃도 원 없이 보고 왔다. 음식은 맛있었고 숙소는 쾌적했으며 밤하늘의 별도 예뻤다. 계획하지 않았던 곳을 가거나 가려고 했던 여행지를 포기하면서 '지금'에 집중했다. 평온했고 평화로웠다. 장롱면허였던 내가 운전하면서 이동하는 것도 좋았고 트인 풍경 보며 답답한 마음이 풀리는 듯한 기분도 좋았다.


하동여행 1일 차

삼성궁 - 금양가든 - 스타웨이하동 - 최참판댁 박경리문학관 - 매암제다원 - 여명가든 - 고양이생존연구소

삼성궁

하동에 가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 삼성궁을 직접 보고 싶었다. 여행사에 근무하면서 알게 된 명소이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비스러운 여행지였다. 올라가는 길은 좀 힘들지만 뒤를 돌아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발길이 멈춰지기도 했다. 어떻게 찍어도 사진에 담기지 않는다. 다른 여행지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첫날 코스로 선택했다.


금양가든

하동 현지인 맛집으로 소문난 금양가든. 재첩 모둠 정식이 정말 맛있었다. 김에 싸 먹는 재첩회무침, 바삭거리는 재첩부침개, 시원하고 깔끔한 재첩국까지. 메인 음식뿐만 아니라 반찬까지 간이 제대로였다. 창가에 앉으면 섬진강 전망도 볼 수 있다. 30년 이상 된 가게라던데 왜 롱런할 수 있었는지 알 것 같다.


스타웨이하동

입장료가 3,000원이라 조금 아쉬웠던 곳이다.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전망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선 입장료를 내야 한다니. 한 바퀴만 돌면 끝이라 더 아쉬웠던 걸 수도. 바람이 많이 불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한 번쯤 방문하기 나쁘지 않지만 굳이스럽기도 하다. 올라가는 길이 조금 가파르다. 차로 이동하긴 해도 꼬불꼬불한 길이 많아서 안전운전은 필수이다.


최참판댁 / 박경리문학관

하동 2박 3일 여행 중 베스트 3위에 드는 최참판댁이다. 책 <토지>를 읽었다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책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좋았던 곳이었다. 전망도 전망이지만 박경리 작가님의 문구와 생각 하나하나를 곱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글'을 대하는 자세, '삶'을 대하는 자세를 좀 더 깊이 있게 되돌아볼 수 있다.


나를 위해 쓰는 글이 많다. '나'라는 사람이 너무 다채로워서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나를 이해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상대를 이해하는 힘도 커졌다. 시작은 나를 위함이지만 나도 언젠간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매암제다원

느긋한 여유를 찾으러 찻집에 갔다. 하동에 오면 꼭 들르는 하동 대표 코스 중 하나인 듯하다. 내부엔 테이블이 많진 않았지만 야외석은 자리가 많았다. 저녁이라 카페인 없는 국화차랑 홍차를 주문했는데 홍차는 생각보다 떫었다. 사진 속에선 녹차 규모가 커 보였는데, 생각보다 작아서 아쉽기도 했다. 그럼에도 잠깐 쉬어가는 타임으로 가기 괜찮았다.


여명가든

현지인 맛집이다. 하동에 녹차밭이 많아서 그런지 녹차 오리고기가 인기가 많았다. 초록색이라 어떻게 찍어도 맛없게 나오지만 맛있었다. 볶음밥 최고. 밥까지 든든하게 먹었지만 야식이 빠질 수 없어서 차로 1분 거리에 있는 장모님 치킨을 포장해서 숙소로 갔다.


고양이생존연구소

늦은 저녁에 숙소에 도착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왔는데 방이 따뜻해서 아늑하게 잘 수 있었다. 층고가 높아서 답답함이 없었다. 취사는 안 되지만 부엌도 깔끔했다. 침구류에서 섬유유연제 향이 나고 허리가 아프지 않을 정도의 매트리스라 꿀잠을 잤던 거 같다. 아침이 되어서야 이 전망을 볼 수 있었다. 섬진강 전망이라 일출은 보이지 않지만 멀리서 해가 뜨고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새가 울었다. 높은 건물이나 회색 건물이 없는 것만으로도 트인 기분이었다. 아침으로 나온 조식. 잘 차려진 식사는 기분까지 든든하게 한다. 과일까지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속이 든든했다.



하동 여행 2일 차

광양 매화축제 - 혜성식당 - 정금다원 - 섬진강대나무 - 수풀림


광양 매화축제

숙소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벚꽃 피는 계절에 오면 예쁠 것 같다. 운이 좋게도 매화축제 기간과 겹쳐서 매화를 볼 수 있었다. 매화는 봄을 알리는 꽃이기도 하다. 만개까지는 아니었지만 너무 예뻤다. 1시간만 보려고 했는데 2시간 넘게 머물렀다.


혜성식당

내가 찾은 구례 맛집 1위인 혜성식당. 참게탕이 메인이다. 처음 먹어봤는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맛있었다.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 공깃밥도 리필했다. 향토음식점을 찾는다면 무조건 추천하고 싶다. 참게탕뿐만 아니라 재첩도 많이 찾곤 한다.


정금다원

시야뿐만 아니라 기분까지 트였던 곳이다. 팔각정에 올라서 제대로 전망을 보고 싶은데 계속 뒤돌게 만들었다. 섬진강, 수많은 산, 높은 하늘. 이 모든 걸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다들 축제에 갔는지 사람도 별로 없어서 조용히 전망을 봤고 사진도 찍었다.


섬진강대나무숲

죽녹원에 갔을 때 기분이 좋았다. 대나무가 우뚝 솟아있어서 시원했고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가 힐링돼서 좋았다. 마음까지 한적해지는 기분이랄까. 섬진강대나무숲은 죽녹원보다 짧아서인지 잠깐 푸른 여름을  만나고 온 듯했다. 벤치가 많지 않지만 잠깐 앉아서 섬진강과 대나무 소리 들으며 쉬는 것도 좋을 거 같다.


수풀림

숙소에서 섬진강 보며 바비큐를 먹으려고 일찍 갔다. 심지어 솥뚜껑 삼겹살! 광양 매화축제에서 산 버섯, 구례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산 고기, 반찬, 햇반 등을 세팅했다. 날이 춥진 않았지만 바람은 제법 불었다. 그래도 불 앞에 있으니 견딜만했다. 오히려 더 낭만 있다고 해야 할까. 방도 따뜻하고 아늑했다. 한 번도 깨지 않을 정도로 푹 잤다.



하동 여행 3일 차

구례산수유꽃축제 - 구레밀밭 - 화엄사 - 사성암 - 집


구례산수유꽃축제

아쉽게도 산수유가 만개하지 않았다. 다만 축제 규모가 커서 산수유가 아니더라도 보고 즐길 거리는 충분했다. 오랜 시간 축제를 운영했는지 꽤나 안정적으로 축제가 진행됐다. 셔틀버스도 운행했고 먹거리도 많았는데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산수유를 볼 수 있는 포인트도 많았고 마을 안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파전도 먹을 수 있었다.


구례밀밭

화엄사 주차장 바로 앞에 있는 수제비 맛집이다. 다슬기 수제비라 그런지 국물이 진하고 구수했다. 비릴 줄 알았는데 하나도 비리지 않았고 수제비도 쫄깃했다. 11시부터 15시까지밖에 운영하지 않아서 뭔가 자부심도 느껴졌다. 주변은 대부분 산채비빔밥을 판매하지만 구례밀밭만 수제비랑 칼국수를 판매해서 더 눈에 띄었던 것도 있다.


화엄사

홍매화를 보려고 온 건데 역시나 피지 않았다. 다만 사찰 자체가 근엄하고 멋있어서 충분히 만족한다. 원래 사찰을 좋아하는 편이다. 바람에 부딪혀서 들리는 종소리, 흙을 밟으면 나는 소리, 잔잔하게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숲과 나무가 많은 곳에 사찰이 있어 더 더 평화롭게 느껴졌던 걸 수도 있다. 셔틀버스가 운행해서 편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여기서 먹은 비건 햄버거가 너무 맛있었다.


사성암

전망이 제일 좋았던 사찰이다. 오산 정산 부근을 깎아 암벽을 활용하여 만든 사찰로 눈으로 보면 웅장함을 만끽할 수 있다. 높은 곳에 있어도 차로 이동할 수 있어서 안심됐다. 소원을 빌면 무조건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소원을 빌기보다 많은 소원을 봤다.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린 마애여래입상도 볼 수 있다.


 인천에서 하동까지 4시간 30분. 차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서 조금 힘들긴 했지만 덕분에 밤낮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백수일 땐 밤낮을 지치는 게 쉽지 않은데. 여행을 잘 보내고 오면 좋은 일만 있었다. 좋은 일이 있기보다 좋은 일이 올 차례라고 하는 게 맞는 건가? 쨋든 여전히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잘 알고 있다. 나를 잘 안다는 게 이렇게 자존감 높은 일인 줄 몰랐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만들면서 보내는 하루가 좋다. 하루를 잘 보냈을 뿐인데 난 어디서든 잘 해낼 거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런 안정적인 삶에 만족하는 나를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 단단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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