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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Apr 14. 2024

물을 무서워하는 나도 스노클링! 세부 여행 3박 5일

퇴사여행으로 간 세부. 3월 취업이 목표라 후다닥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세부 항공권을 예약하자마자 가고 싶었던 기업에서 합격 연락이 왔다. 덕분에 마음 편히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20대 후반엔 취업이 안 될까 봐 조마조마하며 불안한 시간을 보냈었는데 30대 중반이 되니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그렇다고 전혀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난다는 걸 아는 게 괜히 마음 편했다.


나이도 나이인지라 이번에 취업하면 오래 근무할 것 같았다. 물론 다녀봐야 알 수 있는 거지만. 이직하는 것도 지치고 중간에 퇴사하면 경력도 애매해지니 오래 근무해야 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근무하기 전에 제대로 놀고 쉬고 싶었다. (물론 취업한다고 해서 여행을 안 갈 것도 아니지만) 마침 친구가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 했고 혼자서는 자신 없다고 말하던 날이었다.


아침이었다. 창문 밖 날씨가 좋아 보여서 여행이 더 가고 싶어졌다. 결국 세부 항공권을 알아보고 결제까지 완료했다. 즉흥적인 마음에 예약하고 나니 조금 불안했다. 총기 허용 국가인데 치한은 괜찮을까? 나 물 무서워하는데 스노클링 할 수 있을까?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낳았다. 일을 저지르고 걱정하다니 뭔가 나답다. 벌린 일을 하나씩 수습하면서 해결하는 걸 흥미롭게 생각하는 편인 듯하다. 물론 걱정과 다르게 필리핀 사람들은 친절했다. 덕분에 물을 무서워하는 나도 고래상어와 사진을 찍고 바다거북이랑 헤엄도 치고 참치의 수영실력도 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투어 예약은 처음이었다. 3박 5일 동안 매일 투어를 이용했고 하루에 두세 번 마사지를 받았다. 호화스러운 여행이라 조금 낯설었지만 그만큼 잘 쉬고 왔다. 좁은 비행기에서 잠을 설칠 거란 내 생각과 다르게 (불편했지만) 잘 잤고 세부 입국심사도 문제없이 끝났다. 세부 공항에 내리니 미지근한 바람이 솔솔 불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봄과 여름 사이에 있는 바람이랄까. 야자수는 하늘 높이 솟아있고 필리핀 사람들은 "택시?" 하면서 우리 주변을 기웃거렸다. 공기, 생김새, 분위기 모두 낯설게 느껴져서 갑자기 설렜다. "나 진짜 왔구나"


세친구투어에서 오슬롭투어를 예약했다. 고래상어 슈퍼패스로 기다리지 않고 바로 고래상어를 볼 수 있고 아바타 폭포로 불리는 투말록 폭포와 바다거북이를 볼 수 있는 모알보알호핑까지 알찬 투어였다. 아쉽게도 강수량 부족으로 투말록 폭포는 무기한 폐장되어 원숭이 마을로 대체됐지만.


세부 공항에서 새벽 2시에 출발했다. 길이 좋지 않아 차가 많이 흔들렸다. 차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몇 번 깼지만 나름 잘 잤다. 목베개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도착 후 가이드가 우리를 깨웠고 비몽사몽 한 채로 차에서 내렸다. 새벽 시간인데도 고래상어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 많았다. 해가 뜨자마자 배로 이동했다. 영상 속 고래상어를 실제로 본다는 사실에 너무 떨렸다.


수심이 엄청 깊었다. 물이 허리까지 오는 것도 무서워서 튜브를 찾는 나인데, 바닷속은 너무 깊어 끝이 보이지 않았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고 바닷물이 엄청 짜서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수면 위로 떴지만 무서웠다. 가이드는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나를 잡아줬지만 혹시나 나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가이드 손을 꽉 잡았다. 스노클링 호흡법을 숙지했지만 바다에 들어간 순간 호흡법을 잊었다. 가이드는 나를 보고 "릴렉스 릴렉스, 괜찮아요"라고 했고 나는 숨을 참고 바닷속을 들여다봤다. 내 바로 앞에 엄청 큰 고래상어가 있었다. 그것도 입을 크게 벌리며 밥을 먹고 있었다. 아무런 걱정 없이 밥을 먹는 게 그저 귀여웠다.


식사 후 환전을 하고 바다를 보며 쉬고 있었다. 아직 식사하는 여행객이 있어서인지 뒤에서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 한적함이 익숙한 듯 고양이는 배를 내밀며 자고 있었고 강아지는 소시지 하나라도 얻어먹으려고 테이블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이 풍경을 뒤로하고 푸른 바다를 보며 앉아있었다. 너무 평화로웠다.


모자, 선글라스, 가방 등을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원숭이 마을로 들어갔다. 조금만 올라가도 바로 원숭이들이 보였다. 생각보다 귀여웠다. 인터넷으로 보던 원숭이랑 똑같이 생겼달까. 가이드가 바나나를 나눠줬고 우리는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내밀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나나를 가져가더니 맛있으면 먹고 맛없으면 바로 버렸다. 취향이 확실한 원숭이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번엔 모알보알 스노클링! 필리핀 바다가 너무 깨끗해서 넋 놓고 바다만 보게 된다. 생각보다 깊지 않아서 배를 타지 않고 가이드 따라 이동했다. 내가 겁 많은 건가이드 사이에서 소문이 난듯했다. 나를 따라 하며 웃었지만 결국 나를 끝까지 붙잡아주려 했다. 마지막엔 바디타월을 내 머리 위로 씌워주더니 클래식 한 장면을 선보이며 '코리아 로맨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려는 사람들 같았다.


세부시티로 넘어와 마사지받고 호텔에서 마시지 팩 하며 핸드폰 했다. 침대가 푹신해서 핸드폰을 떨어뜨리며 졸았고 그대로 아침이 돼서야 일어났다. 다음날엔 막탄 호핑투어를 이용했다. 현지 가이드가 한국말을 잘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었다.


이번 가이드분도 내 스노클링 장비를 확인하면서 내가 바닷속을 구경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덕분에 스노클링 호흡법을 터득했고 오랜 시간 바닷속을 헤엄쳤다. 우리처럼 호핑투어하는 다른 배에서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자, 여러분 파이팅 하고 또 출발해 볼게요." 그러다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마이크 소리가 작아졌고 고요함만 남았다. 니모가 붙어 다닐 줄 알았는데 한 마리씩 다니는 것도 봤고 세상 새침하고 귀여운 표정으로 헤엄치는 참치도 봤다.


각자의 일을 마치고 가이드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뭔가 자유로워 보였다. 물론 이 속에서도 고충은 있겠지만 호핑투어 하며 본인의 역할을 열심히 하고 투어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쉬는 게 조금 부러웠달까. 팁을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다. 팁을 주면 땡큐고 안 주면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 같았다. 매일 보는 바다겠지만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좋은 걸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도 좋았다. 바다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바다를 지키기 위해 쓰레기를 줍는 행동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잘 안다고 할까? 기분이 따듯해질 차에 푸른 바다, 길게 뻗은 야자수, 파라솔 있는 툭툭이를 타는 현지인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까지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골목을 산책했다. 거리를 거닐며 현지인 생활을 보며 여행을 즐기는 편이라 이 순간이 너무 좋았다. 클락션을 울리며 험하게 운전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속에서도 질서가 있어 보였다. 아침 일찍 나와도 거리엔 사람이 많았다. 책 한 권을 들고 카페에 갔다. 친구는 자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혼자서 세부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커피는 맛있었고 눈앞에 보이는 풍경도 너무 잔잔했다. 동남아 가게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꾸밈이 없다. 담배를 판매하는 곳은 담배만 있으면 됐고 미용실은 미용 의자만 있으면 되는 듯하달까. 보이는 것보다 본질에 집중한 듯한 느낌.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시간 날 때 여행했던 순간들을 끄집어낸다. 아 맞다 이랬었지, 그때 그거 너무 재미있었지. 매일 투어를 받고 겁내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내가 바다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 필리핀 사람들 덕분에 세부여행이 좋게 기억됐다. 친구와 찍은 사진을 공유하며 못생기게 나온 서로의 표정을 보며 배 아프게 웃었다. 함께하는 재미. 혼자라면 이 순간을 혼자 간직했을 텐데,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꽤나 든든하게 느껴졌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세부여행을 (벌써) 추억했다.


여행하면 반드시 전망을 보는 편이다. 한눈에 여행지를 조망하며 여행의 순간을 추억한달까. 탑스 언덕 전망대에 갔다. 처음엔 하늘만 보이다가 전망대에 다 와갈수록 바다가 보였고 마을이 보였다. 트인 전망이 꽤나 시원했다. 바로 옆에 있는 탑 오브 세부도 밥이 엄청 맛있다까지는 아니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요소는 충분했다. 레아신전, 시라오가든, 산토니뇨 성당, 에이에이 비비큐, 카카오트리스파까지 정말 버려지는 시간 없이 알차게 세부 여행을 즐겼다.


퇴사 후 하고 싶었던 공부도 했고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고자 이력서도 열심히 썼다. 세부여행까지 다녀오니 퇴사 후 보냈던 한 달이 너무 애틋했다. 무언가 안정적이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충분히 알기에 내가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하루들을 보냈달까. 조금 더 단단해진 채로 내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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